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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맏이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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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자 Sep 20. 2023

맏이 22. 북진



9월 27일 아침은 맑고 조용했다. 어젯밤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제트기가 북쪽을 향해 소리도 요란하게 ‘쌕’하고 날아가는 것이 보인다. 전선은 이상할 정도로 소강상태다. 우리는 오전에 19연대 배속에서 해제되어 공병대대로 복귀했다. 본대에 도착하니 부대원이 모두 바쁘게 이동준비를 하고 있었다. 또 어느 전선에 배치될 것인지….그날은 이동을 위한 준비에 하루가 갔다. 이동 내용이 궁금하였으나 말단 소대로서는 알 수 없었고 밤이 되니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여름밤은 짧았다. 날이 새니 주위가 어수선하다.

대대본부로부터 명령이 하달됐다. 목적지는 안동이라 한다. 상황은 자세히 알 수 없었으나 인민군이 모두 퇴각한다는 것이다. 이게 웬일인가! 아침 식사를 일찍 마치고 흥분 속에 출발 준비 사항을 확인했다. 우리는 6사단의 최선두에 배치되었고 임무는 진격하면서 도로상의 장애물 제거와 차량 통과를 위한 긴급 복구라고 한다.

얼마 후 그동안 인천 상륙 작전이 개시되어 서울은 아마 유엔군이 탈환했을 것이라는 신나는 소식을 알게 되어 대원들의 사기는 충천했다.     

※1950. 9. 28 이른바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서울이 재탈환 수복된 날 (인천상륙작전 개시 50. 9. 15)     

우리는 그 무시무시했던 신령 고개를 구비구비 내려가기 시작했다. 중간중간에 매설한 대전차 지뢰와 대인 지뢰를 제거하느라 애먹었다. 길옆으로 위험표시를 하고 대전차 지뢰는 우리 공병들이 매설한 것이었지만 규정대로 되어있지 않고 무질서하게 매설되어 있었고 더구나 개중에는 부비추럽(속임수)까지 한 기억이 있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을 소비했다. 이 작업에서 우리 대원이 2명이나 전사했다. 거의 산 아래까지 왔는데 적의 공격이나 대항은 전혀 없었다.

우리는 일사천리로 북진했다. 이따금 다발총 소리와 장총 소리를 들었으나 이미 전세는 완전히 우리 편이었고 인민군은 모두 산으로 피한 것 같았다. 오는 도중에 수많은 인민군 탱크가 길 위에 그리고 농가를 뚫은 채 혹은 강가 모래사장에서 타버린 잔해를 볼 수 있었다. 그 위력을 자랑한 적의 탱크도 고양이 앞에서는 쥐라더니 처음으로 제트기의 위력에 감탄했다.

안동까지 오는 그 국도상에는 참으로 무인지경의 진격이었다. 세상이 이렇게 조용할 수가 없었다. 소리 없는 세상이다. 우리의 자동차 소리뿐. 그럴 수밖에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안동을 지나면서 손을 들고 투항하는 인민군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투항자를 가지고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고 더욱이 투항자의 대부분은 6.25때 인민군에 의해 강제 징용된 서울과 지방의 의용군이었기 때문에 후속 부대에 맡기기로 하고 우리는 계속 북진을 재촉했다.

그 많던 인민군은 모두 어디에 숨어버린 것인가. 얼마 전의 전투를 생각해보면 그 적들은 모두 산으로, 산으로 피해버린 것 같다. 이 패잔병들을 놔둔 채 북진만 하는 우리는 내심 불안감을 느꼈으나 우리의 임무는 그것과는 관계가 없었고 후발대가 진압할 것이라는 기대로 우리는 시간을 다투어 북진 북진을 계속하였다. 진격하는 자동차 위에 태극기를 단 차가 한 대, 한 대 늘어갔다. 우리는 참으로 신나는 진격을 했다.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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