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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맏이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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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자 Sep 19. 2023

맏이 21. 첫 전투

신령작전(경상북도)

우리는 공병대였기 때문에 최전방에 지뢰매설과 철조망 가설 등을 실시하면서 한편 진지를 지키는 보병 전투 요원이 되기도 했다. 매일 매일 정신없이 그날의 임무에 충실했다. 소대원들도 충실했고 내 말도 잘 들었다.

오늘이 몇 일인지 알 수 없다. 아군의 포 소리는 계속되었고 가끔 쏘아대는 소총, 기관총 소리로 보아 아마 인접해 온 인민군을 발견한 모양이다. 이제는 아군의 총소리와 인민군의 총소리는 분간할 정도로 익숙해졌다.

이곳에 배속된 지 한 1주일 아니 10여 일 되었을까, 하루는 19연대 CP에서 새로운 명령을 받았다. 지도를 펴 놓고 설명하는 작전 장교는 주 저항선을 강화하기 위해 그보다 전방인 전초진지에 우리 소대를 배치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공병이고 또 소대원의 반이 입대한 지 한 달밖에 안 되는 학도병이니 경험도 없고 그 임무는 무리이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더니 작전 장교는 신경질을 내면서 화를 낸다. 지금 상황이 그런 사정을 따질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할 수 없이 대원을 데리고 고개 넘어 거의 고개 밑까지 내려와 이미 파 놓은 개인 호에 들어갔다. 낮의 행동은 근접한 인민군이 없기 때문에 그 부근의 지형지물을 파악하는데 힘들지 않았다. 소대원들은 보병이 있는데 공병을 이런 최전방에 배치했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야간에 있을지도 모를 인민군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진지의 보수에 여념이 없다.

자세히 앞을 살펴보니 콘크리트 다리가 있는 곳이 보인다. 다리는 이미 부서졌고 그 옆에 적의 탱크가 불에 타 있었는데 그것이 도로의 진출을 막는 장애물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적은 공격하기 쉬운 다른 골짜기에 몰려있는지 조용하기만 한 것이 오히려 긴장감을 더했다. 간간이 들리는 포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소대원은 주로 학도병인데도 작전의 중요성을 인식했음인지 너무나 침착하고 눈빛은 결의에 빛나고 있었다. 나는 야간의 행동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켰다. 암호 그리고 사격의 시기, 연락 방법, 이상 유무의 보고 방법과 진지의 무단이탈 등에 대해 지시를 하고 가지고 온 주먹밥을 먹도록 하고 각기 호 속에서 교대로 쉬라고 했다. 나는 CP에 무전 보고를 했다. 배치 완료 보고다. CP에서는 오늘 밤 인민군의 공격이 예상된다고 하면서 이상이 있으면 즉시 보고하라며 내일의 교대 시간은 추후 연락하겠다고 한다.     

 산속의 어둠은 빠르다. 바로 옆 호 속의 사람조차 잘 보이지 않고 안개마저 깔렸다.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안개 속에 오래 있으니 옷이 비를 맞은 것 같다. 얼마나 지났을까. 밤 12시는 지난 것 같다. 너무 긴장한 탓인지 사르르 졸음이 오기 시작한다. 그때다. 북쪽에서 무슨 엔진 소리가 들린다. 자동차 소리인가? 아니다. 탱크 소리다. 점점 그 소리는 가까이 들린다. 두 대인 것 같다. 어두운 밤이라 잘 보이지는 않으나 다리 부근까지 와서 정지하는 것 같다. 우리는 바싹 긴장했다.

한참 후 곡괭이와 삽질을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아마 파괴된 다리 옆에 By pass 작업을 하는 것 같다. 대원들에게 보병들이 탱크 뒤를 따르고 있을지 모르니 경계를 철저히 하도록 지시하고 즉시 CP에 상황을 보고했다. CP에서는 계속 상황을 보고하라면서 그 자리를 절대로 이탈하지 말라고 한다.

약 1시간이 지났을까. 우리 후방에서 포사격이 시작되고 이곳저곳에서 포탄이 작렬하는 소리가 진동한다. 다리보다 훨씬 후방에 떨어지고 있다. 다시 무전기로 포탄의 탄착점을 보고했다. 한참 후에 또다시 포사격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다리 부근에서 터진다. 우리가 있는 진지에도 사정없이 떨어진다. 폭음과 함께 먼지가 우리를 덮는다. “제기럴” 하면서 진지 속에 엎드렸다. 그리고 급히 보고했다. “우리 진지에 떨어지니 아군을 몰살할 작정인가” 하고. 얼마 후 포사격은 중지됐다.

그때다. 다리 부근에서 “아이고!” 하며 신음하는 소리가 길게 들린다. 포탄에 인민군이 맞은 모양이다. 그 소리는 어두운 골짜기에 길게 메아리쳐 단말마의 비명소리에 전율을 느꼈다. 탱크를 뒤따른 적이 우리 진지 가까이 와 있는지 모른다. 조용하다. 신음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갑자기 탱크의 엔진소리가 커졌다. 이쪽 고개로 올 것인가. 올라오면 일전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탱크는 다시 북쪽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금세 날이 밝기 시작한다.

전방을 주시하니 탱크도 인민군도 보이지 않는다. 그날 밤은 처음 겪어본 방어 경험이었는데 일단은 무사히 끝났고 오전 10시경 우리는 19연대 보병과 교대를 했다. 모두 안도의 숨을 쉬었고 나는 이것이 전쟁인가, 불행한 민족의 앞날과 나도 앞으로의 전투에 전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는 그때 모습을 생각하니 씁쓸한 감정에 휩싸였다. 어차피 사람은 한 번은 죽게 마련인데.     

 전투는 9월 중순까지 계속되었고 인민군의 공격은 집요했다. 이곳저곳에서 침투를 기도했고 우리는 용케도 이것을 막았다. 때로는 인해전술로 한때 진지가 무너진 적이 있었는데 날이 새면서 공군의 지원으로 방어에 성공한 적이 있었다.

이와 같은 전투는 압축된 각 전선에서 치열했다. 당시에는 그런 상황의 내용을 알 수 없었으나 후일 전사(戰史)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대구를 공략하기 위한 인민군의 최후 발악은 극에 달했고 피아의 피해도 상당했다. 이른바 대구 팔공산 방어전투였던 것이다.

9월 25일경 우리는 다시 진지 방어 명령을 받고 주 저항선의 작은 고지에 배치되었다. 사방이 잘 보이고 CP와도 가까운 위치에 있었으나 개인 호는 하나도 없고 남쪽 양지쪽은 묘지가 있었다. 북쪽은 음지로 잣나무가 많이 서 있는 비교적 평탄한 곳이었다.

우리는 19연대의 예비대로 CP부근에 대기 겸 배치된 것이다. 비교적 차분한 기분으로 대원에게 무기 손질을 시키고 각기 적당한 장소에서 쉬도록 지시하고 나도 눈을 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연락병인 학도병이 나를 깨운다. 

“소대장님, 소대장님.” 

작은 소리로 급하게 말한다. 저것이 무엇이냐면서 수상하다는 것이다. 우리 진지 밑 산 아래 밭을 통과하는 수많은 병사가 보인다. 아군 같기도 하고, 인민군 같기도 하다.

그때다. 어느새 올라왔는지 우리 진지 옆의 작은 봉우리에 한 병사가 우리 쪽을 향하여 뛰어오고 있지 않은가. 키가 짤막한 흙투성이가 된 병사다. 나는 순간적으로 소속이 어디냐고 소리쳤다. 그자는 인민군이었다. 기관총을 메고 있는 모습이 틀림없는 적이다. 나는 본능적으로 칼빈총을 겨누었다. 그 동작은 내가 빨랐다. 약 20m 앞까지 왔던 그 자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당황하여 몸을 돌려 그 산봉우리에 되돌아 뛴다. 이때 이 광경을 본 우리 대원들이 일제 사격을 했다. 분명히 인민군은 주 저항선까지 침투한 것이다. 이곳은 CP가 아닌가. 전초진지는 잠을 자고 있었는가 말이다. 인해전술로 최후의 일전을 시도한 인민군은 이제 주 저항선까지 침투해 온 것이다. 이곳이 무너지면 대구는 함락이다.

우리의 사격은 계속되었다. 적은 보이지 않는다. 적은 틀림없이 봉우리 뒤에 있다. 우리의 사격에 보병이 가세했다. 우리 쪽이 조금 낮은 고지라 불리했고 지세도 우리가 적보다 북쪽에 있는 형편이었다. 이때 나는 수류탄을 생각했다. 50m는 던질 수 있는 자신감에 핀을 뽑고 던졌다. 봉우리를 넘었다. 순간 꽝 소리가 났다. 그 후의 일은 확인이 안 된다. 또 한 개를 던졌다. 더 멀리 던진 것이다. “꽝!” 소리는 봉우리 너머에서 메아리쳤다.

나는 대원에게 보이지 않는 적에 사격하지 말라고 했다. 학도병들은 쓸데없이 실탄을 낭비하기 때문이다. 적을 보면 즉시 사격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하고 나는 음지쪽 잣나무에 기대어 무릎 쏴 자세를 취했다. 그쪽 음지에 한 그림자가 넘어오는 것이 보인다. 거기에는 개인 호가 있다. 북쪽을 향해 파놓은 아군의 진지다. 나는 칼빈총을 조준했다. 이미 넘어온 놈은 보이지 않고 이어 넘어오는 놈을 향해서 방아쇠를 당겼다. 앞으로 고꾸라졌다. 명중이다. 그때 먼저 넘어온 놈이 봉우리 쪽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또다시 당겼다. 그놈도 그 자리에 쓰러졌다. 불과 50여 미터밖에 안 되니 안 맞을 수가 있나. 나는 쾌재를 불렀다.     

 그때다. 그쪽에서 함성이 들린다. 하나, 둘, 셋 “와아!”, 하나, 둘, 셋 “와아!”. 병력을 과시하는 함성인가. 나는 연락병에게 수류탄을 뺐다시피 하여 또다시 50m 봉오리 너머에 던졌다. 꽝 소리에 함성은 꺼졌다. 수류탄 싸움에 내가 이겼다. 나는 학교 있을 때 63m 투척의 기록을 갖고 있다. 항공학교에서 체육대회 때 실시했던 필수 과목을 오늘 전투에 써먹을 줄이야. 우리 대원이나 인민군이나 40m도 못 던지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더욱이 인민군은 방망이 수류탄이니 어림도 없다.

이때 19연대의 지원대가 왔다. 그 소대장은 상사였는데 전투 경험이 많은지 용감하게도 이제 소리가 없는 봉우리를 향해 “가자!” 하면서 뛰어간다. 우리도 뒤를 따랐다. 봉우리를 탈환하고 보니 벌써 인민군은 골짜기 저 아래로 뛰어내리고 있다. 산 위에서 우리는 도망가는 인민군을 향해서 신나는 일제 사격을 했다. 이어 만세를 불렀다. 우리는 신령 주 저항선을 지킨 것이다.

나는 음지쪽으로 가보았다. 나의 전과를 확인하고 싶었다. 과연 그 자리에 두 놈이 쓰러져 있었다. 봉오리 너머에도 수십 명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었고 보병의 집중 사격과 수류탄에 당한 모양이었다. 부근에는 어느새 갖다 놓았는지 기관총과 소총, 실탄 등이 50여 점은 넘었다. 전리품도 많았다. 이 전투에서 미처 도망가지 못한 인민 전사 1명을 포로로 잡았다.

죽은 인민군의 호주머니에서 고향에서 찍은 듯한 가족사진이 나왔을 때 묘한 기분이 들어 순간 마음이 우울해졌다. 같은 민족끼리 싸워 이 꼴을 보니 그 부모 형제들은 이렇게 죽어간 것도 모르고 지금, 이 순간에도 안위를 하늘에 빌고 있을지 모른다. 같은 운명이 언제 그렇게 될지 모르는 나 자신을 그와 비교해보니 사람이란 모두 같은 것일 텐데. 그러나 나는 속으로 외쳤다. 나는 죽지 않는다. 절대! 절대!

슬퍼하는 어머니의 환상이 나를 어지럽게 했다. 그것도 그때뿐. 철수 명령(교대)으로 급히 하산했다. 소대원들의 화제는 열띠었고 신임 소대장을 신뢰하는 분위기가 가득 차니 나는 더욱 용감할 것이라 다짐했다. 아침 주먹밥이 꿀맛 같았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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