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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맏이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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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자 Sep 18. 2023

맏이 20. 소위 임관

1950.8.15.

   

 이제 전황은 악화일로였다. 대구로 이동한 정부는 낙동강을 최후 보루로 삼고 전열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유엔군도 속속 도착했다. 유엔군의 제트기가 매일 같이 북으로 날아갔고 그 비행기 소리는 신기할 정도로 용맹스러웠다.

우리는 다음날 아침에 대구 경산에 도착했다. 초등학교였다. 우리는 후보생이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다시 나머지 교육을 받기 위해 복잡한 분위기와 환경 속에서 나날을 보냈다. 예정보다 늦게 그 해 1950년 8월 15일에 드디어 소위 임관을 했다. 그동안에 인민군은 대구 이북 지방을 휩쓸고 낙동강을 사이로 쌍방이 일진일퇴의 상황이 계속되었다. 중부 전선은 한때 경북 영천까지 침투해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고 이제 대구도 풍전등화의 지경에 이르렀다. 정부는 또 부산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그리고 낙동강과 팔공산의 공수(攻守)는 운명의 관건이기도 했다. 시시각각 상황은 우리에게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 신임 소위들은 각 부대로 배치 발령을 받고 그날로 임지로 향했는데 나는 동료 세 명과 함께 6사단 공병대대로 가게 되었다. 임지는 경북 신령에 위치하고 있었다.     

미제 작업복에 칼빈 한 자루, 운동화 차림의 간단한 복장이었으나 나는 새로운 기분이었다. 사병 생활은 끝나고 이제부터는 장교로서의 생활이 전개되는 것이다. 고국에 돌아와서도 결국 군인이 되고 만 나의 운명은 전쟁 또 전쟁의 역사 속에 불가피한 귀결이었는지 모른다. 이 길이 아니면 나는 또 무엇을 했을까? 설 땅이 없었던 나에게 나라를 위하는 명분까지 부여된 떳떳한 대한민국 국군 장교로서 오로지 이 길만이 내 인생의 과업으로 자위하게 되었다.

일본 군대에서 불타버린 청춘에 비하면 얼마나 보람이 있고 누구도 눈치 볼 필요도 없는 당당한 조선의 남아가 아닌가. 마음과 육신의 본적을 찾은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이 반병신 같다는 인식은 지워지지 않았다.

대구, 부산으로 압축된 국군은 최후의 일전을 각오하고 방어진을 구축했다. 탱크를 앞세운 인민군도 일진일퇴의 침투 작전을 계속했다. 6.25가 발발하면서 유엔은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로 미국, 영국, 호주, 터키, 캐나다 등 16개국이 우리나라를 지원하기로 했고 일부 나라는 이미 우리 전선에 투입되어 인민군에 대항했다.

특히 공군의 지원은 눈부신 바 있어 초전부터 제공권을 확보했다. ‘쌕쌕이’라 불리는 제트기의 활약은 대단했다. 처음 본 초음속의 이 비행기는 우리 국군의 사기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으나 때로는 피아를 가리지 못해 마구 쏘아붙이는 바람에 아군에게 피해를 주기도 했다.

오늘도 질풍같이 날아가는 제트기가 수없이 하늘을 누볐다. 9월 초까지 후방에 배치되었던 우리 소대는 방어의 일선으로 가게 되었다. 6사단 19연대가 있는 신령 고개의 보병부대에 예속되어 보병 전투에 임하게 된 것이다. 소대원은 모두 22명, 그중 학도병이 10여 명인데 대구 상업고등학교 학생들이다. 신령 고개를 중심으로 배치된 곳은 영천과 안동 간의 중간 지점으로 지금은 주 저항선이 된 곳이다. 얼마 전 영천 대전 때 한때 인민군의 수중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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