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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맏이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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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자 Sep 16. 2023

맏이 18. 수원에서


우리는 급히 수원으로 이동하기 위해 출발했다. 물론 도보로 가는 것이다. 집결지가 수원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는 도중 안양으로 바뀌었다. 안양에 방어진을 친 보병 부대장의 명령이었다. 우리는 부대 체제와 조직력을 갖지 못한 소수 인원이었고 당시만 하더라도 주력 부대장의 ‘즉결 처분권’이 있어 불복하면 총살을 면치 못할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는 가세하기로 하고 그날 안양과 시흥 사이의 낮은 고지에 배치되었다.

서울은 완전 함락됐다고 그 부대원이 말해준다. 서울을 빠져나온 피난민들은 국도 통행이 통제되어 있기 때문에 논길, 산길로 피난 행렬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무기도 없이 이곳까지 왔는데 비로소 이곳 부대원이 소총을 한 자루 준다. 그 총은 일제 구구식 소총으로 내가 일본 군대 있을 때 사용했던 것과 같았는데 실탄이 10여 발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모두에게 주는 것이 아니고 나만이 가질 수 있었다. 나는 소총을 손질하면서 잠시 우리나라의 운명과 우리 고향의 부모님과 형제들을 생각하다 호 속에서 깊은 잠이 들었다.     

아침 일찍 시흥쪽을 바라보니 옛 보병학교가 선명하게 보였다. 부근에 배치된 국군은 양 일개 중대에 불과한 병력이어서 내심 불안하였다. 안양 뒷산에 주력병력이 있겠거니 하고 경계에 임하고 있는데 옆에 있는 후보생이 “저곳 봐!” 한다.

약 2Km쯤 되는 시흥쪽 고개에서 무엇인가 물체가 막 넘어오고 있다. 그 물체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후퇴하는 국군들이 말하던 그 탱크다. 이곳에서 일일이 그 수를 확실히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다. 처음에는 소리도 없이 한 대 두 대 계속되더니 탱크는 벌써 우리 진지 바로 앞까지 도달하니 탱크의 굉음이 요란하다. 시야에서 보이는 탱크만 수십 대가 되는 것 같았다.

무법천지의 진격 모습이다. 우리는 모두 긴장이 절정에 이르렀고 이 광경을 보니 더욱 압도당했다. 우리의 힘으로 도저히 대항할 수 없는 엄청난 수의 탱크들이다. 우리는 숨을 죽여 선두 탱크를 주시하면서 이 자리를 빠져나갈까 하는 생각도 했다.

선두탱크가 드디어 우리 진지 앞까지 와서 멈췄다. 그곳은 경부선 철도가 있고 다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장애물을 이용한 진지였다. 불과 100m도 안 되는 거리인데 우리에겐 무기가 없다. 이럴 때 대전차로 캘포라도 있었으면 했는데 실은 그것도 소용없었다는 보병들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계속 주시하고 있는데 탱크가 한동안 정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더니 선두 탱크에서 인민군이 뚜껑을 열고 밖으로 나오는 것이 아닌가. 불과 100m 앞의 광경이다.     

 그 인민군은 탱크의 통행 여부를 확인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순간 ‘이때다!’ 하고 소총을 겨누었다. 100m 정도면 사격엔 자신이 있는 나였다. 옆에 있는 친구가 나를 쳐다본다. 탱크에 따라오는 보병은 안 보인다. 나는 기슴이 떨리기 시작하고 뭔가 큰일을 저지르는 것 같았다. 인민군은 확인이 끝났는지 탱크에 돌아가 오르려고 한다. 나는 조준을 했다. 조용히 방아쇠를 당겼다. 순간 인민군이 그 자리에 주저앉는 것이 보인다. 나는 다시 제2 탄을 준비하고 또 다시 한 방을 쐈다. 별 변화는 없었으나 그때 그자는 소리쳤다. 동시에 무거운 동작으로 뚜껑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탱크 안에서 또 한 놈이 머리를 내밀고 자기 동료를 잡아당기고 있는데 이때 별안간 우리 진지 부근에 포탄이 터졌다. 상황을 눈치챈 다른 탱크에서 쏜 것이다. 그 사이 그 인민군은 보이지 않고 그 후부터 포격은 인근 국군 진지에 무차별 포격을 했다. 우리는 이 상황에서 싸울 형편은 못 된다고 판단하고 급히 후사면으로 하산하여 서쪽으로 향해 뛰었다. 논이며 밭이며 할 것 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 이제 수원에 가봤자 탱크가 앞지를 것이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무작정 서쪽으로 갔다. 우리에 대한 인민군의 사격은 없었고 이미 사정거리를 벗어난 것이다.

‘그 인민군은 죽었을 거야. 죽지 않으면 중상이라도 입었을 것이 틀림없어.’ 6.25의 첫 개가다. 동료들이 모두 칭찬해 주었다. 그 긴장 때문인지 배고픈 줄도 모르고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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