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100원을 거슬러 받아야 하는데 500원을 받았다.
손에 쥔 동전 하나가 유난히 묵직했다.
“야호, 횡재다.”
400원.
하루 피로를 보상하는 작은 보너스쯤은 되지 않을까?
이 정도 행운은 허락해도 되는 것 아닐까?
나는 순식간에 철학자가 되었고, 동시에 계산이 빠른 소비자가 되었다.
사람의 두뇌는 빠르다.
“이거 잘못된 거 아닌가?” 하는 작은 질문이 떠오르기도 전에
“이 정도는 괜찮지”라는 답이 먼저 도착한다.
양심은 계산기보다 느리다.
가게 문을 나서려다 멈췄다.
계산대 앞에 선 주인에게 말했다.
“저… 100원 거슬러 주셔야 하는데 500원을 주셨어요.”
주인은 잠시 놀라더니 웃으며 말했다.
“어머, 내가 또 실수했네. 고마워요.”
내 손에 남은 건 100원짜리 동전 하나.
그런데 머릿속에서는 다시 외침이 울렸다.
“야호.”
아까의 ‘횡재’와는 결이 달랐다.
첫 번째는 주머니가 가벼워지는 기쁨이었고,
두 번째는 마음이 가벼워지는 기쁨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베풀지 않았다.
그저 내 것이 아닌 것을 제자리에 돌려놓았을 뿐이다.
그런데도 살아 있다는 감각이 또렷했다.
만약 그냥 나왔다면 어땠을까?
집으로 가는 길 내내 400원이 따라왔을 것이다.
동전은 주머니에 있어도, 마음은 그 이상을 잃었을지 모른다.
400원을 얻는 대신, 나에 대한 신뢰를 조금씩 깎아 먹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거창한 윤리 앞에 자주 서지 않는다.
대신 이런 순간들 앞에 선다.
계산 착오, 잘못 온 택배, 아무도 모를 것 같은 작은 이익.
그때마다 마음속에서 조용한 싸움이 열린다.
“이 정도는 괜찮다”는 속삭임과 “아니다”라고 말하는 작은 손 하나.
그날은 다행히 그 손이 올라갔다.
400원은 제자리를 찾았고, 나는 나를 잃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인생도 그렇다.
우연히 더 얻는 순간보다 스스로 선택해 지킨 순간이 더 오래 남는다.
첫 번째 “야호”는 순간의 환호였고, 두 번째 “야호”는 안도의 숨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혼자 웃고 있었다.
그날 나는 400원을 잃고, 나를 조금 더 거슬러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