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걸이의 철학

by 이칸 eKhan

사람마다 걷는 모습은 참 다양하다. 빠르게 걷는 사람, 느릿느릿 걷는 사람, 지그재그로 방향을 바꾸며 걷는 사람, 똑바로 앞만 보고 걷는 사람.


나는 문득, 그 걸음걸이에서 사람들의 ‘모습’이 보일 때가 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좀 해보려 한다. 걸음걸이로 보는 우리들의 자화상.


예로부터 ‘팔자걸음’은 양반의 걸음걸이라 불렸다. 두 발끝이 바깥으로 벌어져 마치 하늘의 권세라도 등에 업은 듯 걷는 모습. 겉모습은 조금 껄끄럽지만, 왠지 저 사람은 ‘뭔가 있는 사람’ 같다는 인상을 풍긴다. 이걸 가지고 나는 오랫동안 농담 반, 관찰 반으로 ‘팔자걸음 각도 이론’을 혼자 만들어왔다.


신입사원일 때는 보통 ‘11자 걸음’이다. 정갈하고 반듯하다. 긴장도 있고, 배우려는 자세도 있다. 그렇게 11자 걸음은 대리, 초봉 과장 때까지 유지된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며 과장 고참쯤 되면 슬슬 두 발의 각도가 벌어진다. 40도에서 45도 정도? 이쯤 되면 ‘나도 이제 좀 한다’는 여유가 생긴다. 차장을 지나 부장이 되고, 팀장이 되면 이 각도는 60도, 70도를 훌쩍 넘긴다. 그리고 걸을 때 허리가 살짝 뒤로 젖는다. 가방 끈도 길어지고, 명함도 묵직해 지면서 그만큼 발끝도 바깥으로 활짝 열린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꽤 많다.) 만약 이 논리가 맞는다면, 임원쯤 되는 사람은 두 발이 180도로 벌어져 있지 않을까? 발뒤꿈치가 스치면서 걷는 모습.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그 정도면 걷는 게 아니라, 발레 동작에 가깝다.


물론 이 모든 건 나만의 아주 개인적인 관찰일 뿐이다. 그저 세상살이의 유쾌한 비유 중 하나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해본다. 걸음걸이는 단지 발의 움직임만은 아닐지 모른다. 그 안에는 그 사람의 ‘태도’가 담겨 있다. 어떤 이는 조심조심 걷고, 어떤 이는 당당하게 걷고, 어떤 이는 주위를 돌아보며 걷는다.


결국, Attitude가 Altitude를 만든다. 자세가 높이를 만든다는 말처럼, 우리의 걷는 모습이 우리가 향하는 방향과 높이를 바꾸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적당한 각도의 11자 걸음으로 천천히, 그러나 똑바로 걸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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