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체류 이틀째는 참가자들의 모두 프로암 대회를 하는 날이다. 6시에 모닝콜이 울리고 6:30분부터 호텔 조찬이란다. 레스토랑에 가서 조반을 먹는데 김치와 계란 스크램블, 숙주나물, 요구르트 그리고 밥과 국이 제공되었다. 밥은 다 식어서 찬밥이고, 국은 쇠고기 뭇국인데 맛이 별로 그랬다. 7시에 차량에 탑승해 골프장으로 향한다. 골프장은 평양골프장이고 위치는 남포시 근처의 태성군에 있는데, 평양에서 40Km가량 떨어져 있다. 일본 조총련계 기업인들이 모금을 하여 1980년대에 골프장을 건설했단다. 평양과 남포 간의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남포 조금 못 미치는 곳에서 샛길로 접어든다. 평양-남포 간 고속도로는 왕복 10차선 도로로서 8차선인 경부고속도로보다 넓다. 그런데 이 도로를 계속 달려도 지나가는 차나 앞서가는 차량은 거의 볼 수 없고 길옆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 걷는 사람들만 간간히 있고, 심지어 고속도로를 무단으로 횡단하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평양골프장 로비>
골프장 메뉴판 : 금액이 달러로 표기되어 있음>
<골프장 바텐더에 앉아서 휴식중>
안내원들이 1989년도에 청년들이 중장비 없이 맨손으로 1년 만에 건설한 도로라고 자랑을 한다. 당시 세계청년학생평양축전을 기념하기 위해서 건설한 듯하다. 차들도 별로 다니지 않는데 이런 큰 도로는 무엇하러 건설한 것이며, 군데군데 수리를 하지 않아서 파손되어 물웅덩이도 있다. 버스는 그런 곳을 피해서 중앙선을 넘어 달리기도 하였다. 길옆으로 보이는 들판에는 벼와 옥수수, 수수들이 익어가고 꾀죄죄한 시골 농부들이 밭에서 느릿느릿 일을 하고 있었다. 마을의 집들은 허름한 모습으로 옹기종기 붙어 있었다. 고속도로에서 골프장까지는 농로 비슷한 시골길을 굽이굽이 돌아 태성호라는 인공 호수를 지나서 도착했다. 호반지역이라서 아침에는 안개가 조금 끼었다.
<같이 라운딩한 김순희 프로와 선문대 교수, 그리고 북한 캐디 학생>
클럽하우스에 당도하니 클럽하우스 정원에는 천막을 치고 매대(賣臺)를 설치한 임시 물품 판매소들이 10여 군데 설치되어 있다. 한복이나 양장을 한 판매원 아가씨들이 물건을 사란다. 일찍 들어온 대회 관계자들은 차출된 여대생 캐디 교육을 시키느라 여념이 없었다. 북측은 이번 대회를 위해 150여 명의 전문대 대외봉사과 학생들을 차출하여 20여 일간 캐디 교육을 시켰단다. 한창 예쁘고 젊은 대학생들에게 유니폼을 입히고 남측의 자본주의 최고의 운동인 골프의 캐디를 맡긴다니 이제 이념도 밥그릇 앞에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클럽 하우스는 그런대로 모양을 갖추고 있었다. 20년 전에 일본 회사에서 설계하고 건설을 한 것이라서 구색을 갖춘 것이다. 회원 명단을 게시한 게시판을 보니까 100여 명 이상의 회원 명단이 걸려 있고 간혹 외국인들도 있지만 대부분 한국식 이름인 걸 보면 아마 재일 동포나 외국 국적의 한국인 것 같다.
<김순희 프로의 스윙모습>
<나의 북한 캐디 모습>
라커룸에 들어가니 우리나라의 70년대 철제 옷장, 다시 말해서 철제 캐비닛 같이 생긴 옷장들이 줄지어 있다. 라커룸의 유리창은 턱이 낮아서 무릎 정도의 높이인데 유리가 투명하여 안과 밖이 서로 잘 보이는 것이다. 골퍼들이 옷을 갈아입는데, 훤히 보이는 밖에는 북측의 캐디나 안내원, 접대원 여자들이 돌아다니면서 보기도 한다. 금삿갓을 비롯한 남측에서 온 골퍼들은 머쓱해서 갈아입기를 주저한다. 호텔에서 운동 복장을 갖춘 사람 이외는 모두들 어이가 없어서 샤워실로 화장실로 가서 대충 갈아입고 나왔다. 사전에 편성된 조별로 나누어 서서 경기 규칙과 방식을 듣고 샷 건(Shot Gun) 방식으로 경기를 시작했다. 나는 16조로서 18번 홀부터 시작이다. 나는 김순희 프로와 이형배 국회의원, 선문대 북한학과 교수와 한 조가 되어 두 명의 캐디의 조력을 받으면서 라운딩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