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KLPGA 대회는 공식 대회가 아닌 이벤트성 대회로서 정규 4 라운딩을 하지 않고 2 라운딩 경기이다. 우리 일행이 도착해서 첫날 라운딩은 프로암 대회로 하고, 둘째 날과 셋째 날은 프로들은 2라운드 경기를 하고, 아마추어들은 조를 짜서 친선 경기를 하는데, 둘째 날에 아마추어 대회를 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평양골프장에서 총 3 라운드의 경기를 한 것이다. 금삿갓은 첫날은 김순희 프로(지금은 KLPGA의 수석부회장이다)와 선문대 북한학과 교수와 라운딩을 했고, 둘째 날은 선문대 교수와 이형배 국회의원과 같은 조로 라운딩을 했다. 마지막 아마추어 대회 날에는 이 행사의 주관회사 사장인 평화자동차 박상권 사장과 모객 및 운송담당인 롯데관광 김기병 회장과 경기를 했다.
<왼쪽부타 롯데돤광 김기병회장, 백진사장, 금삿갓, 평화자동차 박상권사장 라운딩조>
<경기 종료 후 시상식 관람>
<북측 캐디 학생들과 시상식 관람중>
당시 골프장에는 전동 카트가 없기 때문에 손수레를 끌게 되는데, 내 가방을 끄는 캐디는 김주경이고 대외봉사과 3년이며 무남독녀란다. 북측에도 아이를 하나 아니면 둘밖에 놓지 않는단다. 애인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얼굴이 빨게지면서 그런 거 없단다. 북측에는 아직도 부모님들끼리 중매에 의해 결혼을 주로 한단다. 20일간 교육하고 급조된 캐디다 보니 아직 서툴고 어색해서 우왕좌왕이다. 그린에서의 볼의 퍼팅라인을 봐줄 수는 전혀 없고, 코스의 남은 거리나 정확한 방향조차도 잘 모른다. 모두들 처음 도전하는 코스라서 긴장했다. 페어웨이의 잔디는 그런대로 관리가 잘 되고 있었으나 그린의 상태는 정말 엉망이었다. 롤러로 누르지 않아서 그린 스피드는 매우 느리고, 특히나 그린이 다져지지 않아서 물렁물렁한 게 발자국이 났다. 특히 내가 어프로치 한 볼이 3번씩이나 그린에 박혀서 공의 1/3 정도만 밖으로 보일 정도다. 그러니 공이 굴러가는 걸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코스를 조성한 지는 오래되어서 그런지 주변의 조경이나 나무는 매우 크게 자라 경치는 괜찮았다.
<간이매대와 캐디들 모습>
골프 코스를 돌면 매 코스마다 북측의 안내원들이 따라붙고, 매 홀의 볼이 떨어지는 지점쯤에 유도요원들이 배치되어 볼의 낙지점을 찾아주니 마치 황제 골프를 치는 격이었다. 더구나 언덕 쪽의 숲 속에도 안내요원들이 군데군데 배치되어 있었다. 유도 요원들은 오비인지 세이프인지를 수신호로 알려 주고 박수도 쳐주곤 했다. 코스 중간의 그늘 집은 없지만 접대원들이 얼음 통에 시원한 음료나 맥주를 가져다 팔곤 하는데, 맥주나 생수나 음료나 모든 게 2유로란다. 거스름돈도 없고 가격 차이도 없다. 골프 코스 주변에 설치한 간이매점들에는 북한산 물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북한산 주류와 서화 작품, 골동품, 도자기류, 공예품류 등이다.
<간이 매대와 판매원 모습>
<간이 매대>
<북한의 예술 작품>
골프를 끝내고 돌아와서 샤워를 하려고 라커룸에 들어가면서 모든 사람들은 두 번 놀란다.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데 밖으로 난 유리창은 투명해서 다 들여다보이고, 밖에는 안내원, 판매원, 캐디들이 돌아다니고, 그들을 피해 옷장 안쪽으로 안 보이는 곳에서 벗으려는데 라커 룸 안에도 근무하는 여자 봉사원이 둘이나 있고 이들이 목욕 수건 한 아름 안은 채 샤워하러 가는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주는 것이다. 이건 마치 일본 골프장에 온 기분이다. 지난날 오키나와에 있는 골프장에 갔을 때 여직원(거의 50십대)들이 남자 탈의실이나 심지어 욕탕까지 들어와서 아무렇지 않게 물에 젖은 수건을 수거하는 모습을 경험을 했지만 같은 민족끼리 이런 경우를 당하자 모두들 당황해했다. 샤워를 하고 2층의 식당에서 중식을 먹고 다시 올 때 탄 버스를 나누어 타고 평양으로 향했다.
<가운데 북측 안내원과 함께>
나중에 안 일이지만 우리 골프단에 같이 온 아식스 스포츠 회장의 고향집이 바로 이 골프장이 있는 곳이란다. 그분은 17살까지 이곳에 살다가 남으로 와서 50년 만에 고향으로 온 것인데 자기가 살던 마을을 둘러볼 수 없다고 했다. 골프장이 들어서고, 인공 호수가 생기고 해서 마을도 사람도 다 없어지고 어릴 때 다니던 태성소학교만 있다는 말을 듣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분은 그 당시 부모님이 사과 과수원을 하고 있었는데, 그 주변이 인공 호수 건설로 수몰되거나 골프장 건설로 모두 사라진 거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