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은 수나라 말엽의 쇠란하던 시기다. 혼미하게 술을 마심으로 이미 견딜 수 없는 지경인데, 어찌 하물며 오래이겠는가? 바로 그것은 요즘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성품이 가장 신령한데, 술로 능히 혼미하게 해 이미 性靈(성령)을 기를 수 없게 되었으니 또한 어찌 술을 탐닉하는 것이겠는가? 그 까닭은 아래 두 구절에 있으니, ‘⾮關(비관)’ 두 자를 사용하여 말을 일으켰다.
굴원이 말하기를 ‘뭇 사람들이 모두 취해있고 나만 홀로 깨어 있다’고 한 것을 여기에선 도리어 그 말을 뒤집어서 ‘차마 홀로 깨어 있을 수 없다.’라고 하였으니, 구차하게 세속에 동조하려는 것은 아니다. 아마 술로 도피하여 난을 피함으로 그 몸을 온전히 얻고자 한 것일 뿐이니, 이것은 세상을 조롱하는 공손치 못한 말이다. 세상을 근심하고 시대를 걱정하는 탄식을 해소할 곳이 없어서, 술에 붙여서 잊고자 하는 마음일 뿐이다.
* 王績(왕적, 585-644) : 중국 수(隋)-당(唐) 시대의 시인·문신. 자(字)는 무공(无功), 호는 동고자(東皐子), 강주(絳州) 용문인(龍門, 현재 산시성 허진) 문중자(⽂中⼦) 왕통(王通)의 동생. 비서성 정자(秘書省正字)·문하성 대조(⾨下省待詔) 등을 지낸 후 관직을 그만두고 노장(⽼莊)에 심취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