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나면 개 만 빼고 모두 개고생이라고 늘 주장하는 금삿갓도 50여 일 정도를 무거운 배낭을 메고 도보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여행하다 보니 지칠 법도 하다. 아니 꾀가 난다고 하는 개 맞다. 여행의 마지막 보름 정도는 나 자신을 위해 차량을 빌려서 편하게 다니는 호사를 누리고 싶었다. 마음으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보다 더 많은 지역을 다닐 수 있으니까 유용하지 않을까라고 위안을 삼아 보기도 한다. 바르셀로나에서 마침 아침부터 비가 추절추절 내려서 관광을 포기했다. 관광을 포기하고 대신 렌터카를 빌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침대에 누워서 앱으로 스페인 렌터카 회사인 Sixt에 소형 자동차(프랑스 뿌조사의 골프)를 보름간 빌려 타다가 귀국할 때 마드리드 공항에서 반납하는 조건으로 했다. 그리고 우산을 쓰고 지도 검색을 해서 숙소에서 가까운 렌터카 대리점으로 갔다. 이젠 고생 끝, 편리한 시작이라는 약간 부푼 마음으로 빗길을 걸어도 신이 났다. 도보로 3분 정도 걸어서 대리점에 도착하여 렌트 차량에 대한 상담을 완료하고, 마지막 계약서에 사인을 한 후에 문제가 발생했다.
직원이 여권과 국내운전면허증, 국제운전면허증을 달라고 한다. 아차! 국내운전면허증을 깜빡하고 가져오지 않았다. 국제면허증만으로 차량 렌트는 불가하단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이 허탈했다. 지갑이 두둑하면 여름 복장에 휴대하기 불편하기에 여행자 카드와 신용카드 달랑 한 장만 넣고 온 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갑에 있던 모든 카드와 주민증, 운전면허증을 빼서 서랍에 두고 온 것이다. 숙소에서 차를 빌려 올 것으로 생각하고 기대에 차 있을 마누라의 얼굴을 떠올리니 대략 난감이다. 칠칠맞지 못하게 가장 중요한 것을 빠드리고 와서 사람 고생시킨다고 지청구를 들을 생각하니 아찔하다.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렌터카 대리점 직원을 붙들고 통사정을 해 보아도 그들은 법과 규정상 불가하단다. 해결방안을 찾지 못해 엉거주춤하고 있는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더라. 계속 선처해 달라고 요구하니까, 사무실에 있던 매니저가 나와서 해결방안을 제시해 주었다. 그것은 바로 경찰을 활용하는 방법이었다. 유럽은 워낙 관광지에 소매치기가 많아서 여행객이 도난을 당하는 일이 아주 잦다. 필자 금삿갓만 하더라도 어제저녁에 가우디성당에서 소매치기를 당해서 금방 구매한 패키기 지하철 승차권을 잃었다. 경찰서에 도난 신고를 하고 증명서를 발급받아서 휴대하고 다니면 된단다. 국내면허증이 필수 휴대사항인 이유가 현지에서 교통법규 위반이나 사고 시에 행정처리를 위해서 필요하기 때문인데, 그 업무를 경찰이 하므로 경찰서에서 도난 확인서를 발급받아서 휴대하면 무방하단다. 구세주를 만나 것이다.
득달같이 가가운 경찰서를 찾아갔다. 마침 일요일이라 사람들이 별로 없고, 당직 경찰관들만 근무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젯밤에 가우디성당에서 소매치기당한 사실을 신고하고, 분실물 목록을 작성하여 제출했다. 당연히 분실물 목록에 국내자동차 운전면허증을 기재했다. 지하철 카드나 소액의 현금은 버린 것으로 간주하고 면허증만이 가장 우선시된 물품이다. 담당 경관과 차 상급자가 분실확인서를 발급해 주었다. 그들에게 이것으로 차량 렌트가 가능한지, 스페인이나 프랑스 등 다른 나라에서 운전이 가능하냐고 확인하니까 EU국가에서는 가능하단다. 임시면허증을 발급받은 기분이었다. 콧노래를 부르면서 다시 대리점으로 왔더니 이를 어째? 금삿갓이 찜해 놓은 차량을 다른 사람이 빌려 갔단다. 당시가 휴가철이라서 차량 수요가 많아서 금방 금방 나간단다. 바르셀로나 시내 전역을 네트워크로 확인해도 동급의 차량이 없었다. 앱으로 예약하면서 카드 선결제를 해 놓았기 때문에 그들도 할 말이 없고, 대체 수단을 만들어 주어야 했다. 반납되는 차량의 리스트를 확인해도 동급차의 계획이 없나 보다. 자기네들끼리 구수회의를 하더니, 같은 조건으로 추가 부담 없이 더 큰 차를 사용하라고 한다. 얼마나 큰 차인가 물었더니 벤츠승합차란다. 한국 사람들 벤츠 좋아하는 걸 알았는지 벤츠를 강조했다. 아무튼 세상에서 가장 짓기 힘든 사찰인 우여곡절(迂餘曲折)을 겪고 분에 넘치는 벤츠 차량을 값싸게 빌릴 수 있었다. 그런데 유럽에서 는 큰 차 좋아하다가 큰 코 다친다. 정말 신경만 많이 쓰이고 고생만 많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