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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May 07. 2023

15> 贈彭城監務李君(증팽성감무이군)

漢詩 工夫(한시 공부)

贈彭城監務李君(증팽성감무이군) / 팽성감무 이군에게 줌.

- 이첨(李詹) -


三月彭城布穀啼

○●○○●●◎

(삼월팽성포곡제) / 삼월달 팽성에 뻐꾸기 울면


天畦麥浪與雲齊

○○●●●○◎

(천휴맥랑여운제) / 천 이랑 보리물결 구름 같겠네.


使君日用非他事

●○●●○○●

(사군일용비타사) / 그대 하루하루를 헛되이 쓰지 말고


點檢春耕東復西

●●○○○●◎

(점검춘경동부서) / 봄 농사 점검하러 동서로 다니시게.



이 시는 이색(李穡)의 문인인 쌍매당(雙梅堂) 이첨(李詹)이 누구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후배인 이군(李君)이 팽성(지금의 평택)의 고을 원으로 떠날 때 지어 준 칠언절구(七言絶句)이다. 기구(起句)의 2번 자인 월(月)이 측성(仄聲)이라서 측기식(仄起式)으로, 압운(押韻)은 ◎표시된 제(啼), 제(齊), 서(西)이고, 제운목(齊韻目)이다. 정격(正格)을 좀 벗어나서 결구(結句)의 5번 자 동(東)은 평성(平聲)이어서 오칠부동(五七不同)을 어겼다. 그 외는 이사부동(二四不同)·이륙대(二六對)를 잘 지켰으며, 기구(起句) 1번 자 삼(三)은 평성(平聲)으로, 전구(轉句) 1번 자 사(使)는 측성(仄聲)으로 변화를 주었다.

시어(詩語)를 보면, 포곡(布穀)은 씨를 뿌린다는 의미이지만, 뻐꾸기의 울음소리인 뻐꾸기의 의성어(擬聲語)와 비슷하므로 뻐꾸기를 말한다. 마치 촉직(促織)이 베 짜기를 재촉한다는 의미이지만, 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베 짜는 소리와 비슷하다고 하여 귀뚜라미를 의미하는 것과 같다. 감무(監務)는 현감(縣監)의 고려 시대 관직명이다. 휴(畦)는 밭이랑이나 밭두둑을 말한다. 맥랑(麥浪)은 푸른 보리 물결을 말한다. 사군(使君)은 나라의 명을 받은 사람 즉 여기서는 감무를 친근하게 일컫는 말이다. 동부서(東復西)는 동쪽과 다시 서쪽으로 돌아다니는 걸 나타낸다. 예로부터 고을 원으로 부임하거나 변방(邊方)으로 부임하는 자제나 친지에게 시를 써서 주는 사례가 많다. 부임지에 가서 고을을 다스리는데 공정하고 바르게 해라. 원망이 없도록 해라. 약자의 편에서 원망과 원한을 더 깊지 않게 하라. 고을을 순회해 백성들의 말을 들어주라는 등등이리라. 아니면 멀리 떠나보내는 아쉬운 정을 글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시인도 친지가 처음 고을의 수장(首長)이 돼 가는데 봄 농사를 잘 살피도록 부탁을 했던 시상(詩想)이다.


★ 이첨(李詹 : 1345 ~ 1405) : 고려말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이다. 자는 중숙(中叔), 호는 쌍매당(雙梅堂) 본관은 신평(新平)이다. 충남 당진군(현 당진시) 신평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증참찬의정부사(贈參贊議政府事) 이희상(李熙祥)이다. 13세에 부친을 여의고, 외가인 경남 창녕 영산현 계성으로 이사했으며 그곳에서 거의 말년까지 살았다. 고향 집에 소나무 2그루가 있었는데 벼슬에 전념하다 몇 년 만에 돌아와 보니 소나무는 없고 매화나무 2그루가 있어 호를 쌍매당(雙梅堂)이라 했다. 이색(李穡)의 문인으로서, 고려와 조선왕조의 일곱 왕의 글을 지은 학자 관료였다. 1365년 감시(監試)의 제2위로 합격하였고, 1368년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검열이 되고, 이듬해 우정언(右正言)에 이어 1375년 우헌납에 올라 권신 이인임(李仁任)·지윤(池奫)을 탄핵하다가 오히려 10년간 유배되었다. 1388년 유배에서 풀려나 내부부령(內府副令)·예문응교를 거쳐 우상시(右常侍)가 되었으며, 1391년 좌대언(左代言)이 되었다. 이어 지신사(知申事)에 올라 감사를 맡아보았으나, 이 해에 장류(杖流)된 김진양(金震陽) 사건에 연루되어 결성(結城), 충청남도 홍성에 다시 유배되었다. 조선조 건국 후인 1398년에 이조전서(吏曹典書)에 등용되어 동지중추원학사(同知中樞院學士)에 올랐다. 1400년 첨서삼군부사(簽書三軍府事)로 전위사(傳位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402년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에 올라 하륜(河崙)과 함께 등극사(登極使)로서 명황제의 등극을 축하하기 위하여 명에 다녀왔다. 그때 고명(誥命)과 인장(印章)의 개사(改賜)를 주청(奏請)하였다. 뒤에 그 공로로서 토지와 노비를 하사 받았으며, 정헌대부에 올랐다. 그 해에 지의정부사로서 대사헌을 겸하였으며, 1403년 예문관대제학이 되었다. 문장과 글씨에 뛰어나 하륜 등과 함께 『삼국사략(三國史略)』을 찬수 하였으며, 종이를 의인화한 가전소설 『저생전(楮生傳)』을 지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많은 시를 남기고 수록되었으며, 유고(遺稿)로 『쌍매당집(雙梅堂集)』이 있다. 시호는 문안(文安)이다. 묘소는 당진군(현 당진시) 송악면 오곡리이다. 『고려사』 열전에 실려 있고, 『태종실록』에 졸기(卒記)가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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