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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玩初⽉(완초월) / 초승달 구경

금삿갓의 漢詩工夫(250815)

by 금삿갓

玩初⽉(완초월) / 초승달 구경

- 駱賓王(난빈왕)


忌滿光恒缺

기만광항결

●●○○●

차는 것을 꺼려 달빛은 늘 이지러지고


乘昏影暫流

승혼영잠류

○○●●◎

황혼 그림자 타고 잠깐 흘러가네.


⾃能明似鏡

자능명사경

●○○●●

스스로 능히 거울 같이 밝은데


何⽤曲如鉤

하용곡여구

○●●○◎

갈고리 같이 굽어서 어디에 쓸까?

此(차)는 愛玩初⽉⽽詠也(애완초월이영야)이라. 滿則虧(만즉휴)를 恒忌之(항기지)하야. 輪殼(륜각)이 缺半(결반)을 好之(호지)하고, 乘⿈昏之時(승황혼지시)하야. ⽚影(편영)이 暫禱於⻄天(잠도어서천)하며, 且光明之輝(차광명지휘)는 ⾃能似鏡(자능사경)이오. 屈曲之形(굴곡지형)은 何⽤如鉤乎(하용여구호)아. 此(차)는 摹出纖纖之初⽉也(모출섬섬지초월야)로다.

이 시는 초승달을 좋아해서 읊은 것이다. 차면 기우는 것을 항시 꺼려하여, 둥근 윤곽이 반쯤 이지러지는 것을 좋아하였고, 황혼에 오르면 조각 그림자가 잠시 서쪽 하늘에서 기도하며, 또 빛나고 밝은 광채가 스스로 거울 같고, 굽은 모양은 갈고리 같아 어디에 쓰는가? 이는 가늘고 가는 초승달을 묘사한 것이다.

* 摹出(모출) : 어떤 형상을 그대로 그려냄.

* 駱賓王(낙빈왕 ; 626/640?〜684?) : 중국 당(唐) 초기의 시인(詩⼈)으로 <초당사걸(初唐四傑) : 왕방(王勃)·노조린(盧照隣)·낙빈왕(駱賓王)·양형(陽炯)>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무주(婺州) 의조(義烏) 출신으로 성품은 호방하고 거만하면서도 강직하여 일찍부터 으레 도박꾼들과도 놀곤 하였다고 한다. 고종(⾼宗) 말년에 장안주부(⻑安主簿)가 되었는데, 당시 고종의 황후로 실권을 휘두르던 측천무후(則天武后)를 공격하는 상소를 여러 차례 올렸다가 절강의 임해승(臨海丞)으로 좌천되자 출세에 뜻을 잃고 관직을 떠나버렸다. 그러던 684년 이경업(李敬業)이 측천무후 타도를 외치며 거병하자 그의 부속(府属)으로서 이경업의 거병을 옹호하고 동시에 측천무후를 공격하며 그 죄를 천하에 전하여 알린다는 취지의 격문(檄文)을 기초하였는데, 측천무후는 이 격문을 읽던 중 「(무덤을 덮은) 한 줌 흙도 마르지 않았는데 여섯 자밖에 안 되는 고아는 어디에 의지할 것이냐〈一抔土未乾(일부토미건), 六尺孤安在(육척고안재)〉」라는 구절에서 자신도 모르게 흠칫하면서 격문을 지은 자의 이름을 물었고, 낙빈왕의 이름을 듣자 「이런 인재를 불우하게 내버려 두었으니 이는 재상의 잘못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경업의 거병은 실패로 끝났고, 이후 낙빈왕은 도망쳐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잡혀 죽었다는 설도 있다). 전당(錢塘)의 영은사(靈隱寺)에 숨어 살았다는 전설도 있는데, 절을 소재로 한 시도 전해지고 있다. 낙빈왕은 이미 일곱 살 때부터 시 짓는 재주가 뛰어났으며, 자라서는 오언율시(五言律詩)의 묘리를 터득하였다고 한다. 그가 지은 「제경편(帝京篇)」은 고금을 통틀어 절창(絶唱)으로 평가된다. 으레 몇 자의 글자만 가지고 대구(對句)를 지어 「산박사(算博士)」라는 속칭도 있었다. 낙빈왕의 글을 몹시 아꼈던 측천무후는 조(詔)를 내려서 그의 문장 수백 편을 모아 교운경(郄雲卿)에게 명하여 편찬할 것을 명했는데, 이것이 《낙빈집(駱丞集)》(전4권이라고도 하고 10권이라고도 한다)으로 송(頌)・부(賦)・오칠언고(五七言古)・오율(五律)・배율(排律)・절구(絶句)・칠언절구(七言絶句)・계(啓)・서(書)・서(叙)・잡저(雑著)의 총 11항목으로 분류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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