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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May 23. 2023

51) 麥熟(맥숙) / 보리가 익는다.

漢詩習作 (220522)

麥熟(맥숙) / 보리가 익는다

 - 금삿갓 芸史(운사) 琴東秀(금동수) 拙句(졸구)


麥熟鳲鳴樂祖孫

맥숙시명낙조손

●●○○●●◎

보리 익고 뻐꾸기 울면 조손이 즐겁네,


春荒忍耐脫關門

춘황인내탈관문

○○●●●○◎

참고 견딘 보릿고개의 관문을 벗어나니.


虛飢數日忘廉恥

허기수일망염치

○○●●○○●

며칠을 굶으면 염치를 잊어버리고


人事饒居避苦煩

인사요거피고번

○●○○●●◎

세상 일 여유  있으면 고통과 번민을 피한다네.

요즘 계절상 들녘에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고, 보리나 다른 작물을 심지 않은 논에는 모내기를 하는 계절이다. 어릴 적 보리 익던 시기의 어려웠던 기억을 생각하면서 麥熟(맥숙) 즉 보리가 익는 것을 제목으로 지었다. ○표시는 평성(平聲)이고 ●표시는 측성(仄聲)이며, 첫 구(句) 2번자 숙(熟) 자가 측성이라서 칠언절구(七言絶句) 측기식(仄起式)이다. 압운(押韻)은 ◎표시가 된 孫(손), 門(문), 煩(번) 자로 원운목(元韻目)의 글자이다. 시어(詩語) 중에서 어려운 한자, 시(鳲)는 뻐꾸기인데, 봄부터 이 맘 때까지 자주 우는 새이다. 뻐꾸기는 포곡(布穀)이라 고도하는데, 뜻이 곡식을 뿌린다는 의미이고, 발음은 포곡 포곡 하니까 뻐꾸기의 울음소리를 닮았다. 뻐꾸기는 스스로 포란(抱卵) 즉 알을 품어 부화시키지 않고 비둘기 등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서 다른 새가 부화시켜 키우게 하는 얌체족인 탁란(托卵) 조류이다. 춘황(春荒)은 보릿고개를 말하고, 춘궁(春窮) 또는 맥령(麥嶺)도 같은 용어이다. 요거(饒居)는 살림이 넉넉하게 사는 것을 말한다.

그 당시 시골에 많은 가정들이 춘궁기(春窮期) 즉 보릿고개를 넘기기가 수월치 않았다. 묵은 식량은 떨어졌는데, 아직 햇곡식 중 제일 빠른 보리가 익지 않아서 그야말로 굶기가 일쑤였다. 아직 덜 익은 보리 이삭을 따다가 디딜방아로 찧어서 보리 개떡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산나물이나 들나물을 뜯어서 허기(虛飢)진 배를 채우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보리는 직전 해의 늦가을에 씨앗을 뿌려서 겨울의 혹한(酷寒)을 견디고 초여름쯤 수확을 하는 곡물이다. 곡식 중에서 유일하게 겨울의 눈과 서리를 오롯이 견디고 생육하는 정말 생명력이 강한 종(種)이다. 동절기에 토양이 얼고 녹는 과정에서 보리 싹이 땅으로부터 들떠서 죽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밟아줘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초등학교 시절 동네 보리밭으로 보리밟기 봉사활동을 나가기도 했다. 보리를 수확하여 알곡을 탈곡하자면 알갱이에 붙은 까끄라기가 옷 속으로 들어가서 따갑고 불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보리 수확 일을 거들고 나서는 동네 아이들끼리 냇가로 가서 멱을 감곤 했었다. 아낙네들은 벌건 대낮에 목욕을 할 수 없으니 어두워지기를 기다려 냇가로 무리를 지어 목욕을 가곤 했다. 동네 개구쟁이들은 이를 몰래 훔쳐보려고 냇가의 제방 둑에 숨어서 기회를 노리곤 했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요즘이야 기계화되었고, 집집마다 목욕탕이 있으니 그런 추억은 먼 옛일이 된 지 오래다. 더구나 보리의 수확 보다 청보리 밭의 푸른 물결이 오히려 관광 상품으로 떠올라 이를 장려하기도 한다.

우리 속담에 ‘사흘 굶어 담 아니 넘어갈 사람 없다’, ‘목구멍이 포도청’ 등이 있다. 가난으로 굶주리면 참기 어려운 인간의 본성을 잘 나타낸 말이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나 관중(管仲)의 <관자(管子)>에 “창고가 차야 곧 예절을 알고(倉廩實則知禮節), 먹고 입는 게 풍족해야 곧 영예와 치욕을 안다(衣食足則知榮辱)”라고 했다. 백성이 편안히 먹고살 수 있는 것이 정치의 기본이 아니겠는가. 정치를 잘해서 경제를 살려 모든 백성이 부귀하게 되어 예의와 염치(廉恥)를 알고 지키며, 미래 세대를 위한 좋은 귀감(龜鑑)이 되는 세상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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