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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自君之出矣(자군지출의) / 임이 떠나신 뒤로부터

금삿갓의 漢詩工夫(250818)

by 금삿갓

自君之出矣(자군지출의) / 임이 떠나신 뒤로부터

- 張九齡(장구령)


自君之出矣

자군지출의

●○○●●

임이 떠난 뒤로부터


不復理殘機

불부리잔기

●●●○◎

다시는 남은 베를 짜지 않네.


思君如滿月

사군여만월

○○○●●

그대를 생각함이 보름달과 같아


夜夜減淸輝

야야감청휘

●●●○◎

밤이면 밤마다 빛남이 덜어지네.

<중국 자료에는 이 시의 제목이 賦得自君之出矣(부득자군지출의)으로 되어 있다.>

自字前(자자전)에 先有一層景况(선유일층경황)하고, 自從君一出(자종군일출)로 卻便已矣(각편이의)라. 君未出時(군미출시)에 日勤機織(일근기직)하야. 常于月夜(상우월야)에 理日間未盡之殘機(이일간미진지잔기)러니, 今不復能矣(금불부능의)라. 盖以思君念切(개이사군념절)로 沒心緖去料理女工也(몰심서거요리여공야)라.

‘自(자)’자 전에 먼저 한 층의 경황이 있었는데, 임이 한 번 떠나간 뒤로부터는 오히려 문득 (벼 짜는 일을) 그만둔 것이다. 임이 아직 나가지 아니하였을 때에는 낮에 부지런히 베를 짜서 늘 달밤에 낮 동안 다 짜지 못한 남은 베틀을 손질했었는데, 지금은 다시 할 수가 없다. 아마도 그리운 임 생각이 간절하여 마음의 실마리를 잃고, 여인의 솜씨를 부릴 마음도 사라졌다.

上句正爲思字作引故(상구정위사자작인고)로 直接思君二字(직접사군이자)라. 如字冒下七字(여자모하칠자)하니, 思君(사군)이 到十分去處(도십분거처)에 便如滿月到十分然(변여만월도십분연)이나 月滿必虧(월만필휴)하고, 人愁必瘦(인수필수)하야. 月旣滿(월기만)에 一夜一夜(일야일야)에 漸減其淸輝(잠감기청휘)하니, 便照見妾之淸輝也(편조견첩지청휘)오. 日漸消滅而妾之思君(일점소멸이첩지사군)이 終無了日(종무료일)하니, 不因淸輝漸滅而不思也(부인청휘멸이부사야)라. 此以閨情(차이규정)으로 比臣子之思君(비신자지사군)이 亦猶是耳(역유시이)라.

윗 구절이 바로 思(사)자를 위해 이끌어 지은고로, 思君(사군) 두 자를 바로 이었다. 如(여) 자는 아래 일곱 자에 모자를 씌워, 임이 가는 곳에 충분히 이르렀고, 곧 보름달도 넉넉히 이른 것 같다고 그렇게 생각하나, 달은 차면 반드시 이지러지고, 사람의 시름은 반드시 야위어지게 한다. 달은 이미 차서 하룻밤 하룻밤에 그 맑은 빛이 점점 줄어드니, 곧 첩의 맑은 빛을 비춰 보인 것이다. 날마다 점점 소멸되지만 첩의 임 생각이 끝내 마치는 날은 없으니, 맑은 빛이 점점 사라짐으로 인해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 규방의 정으로 신하가 임금을 그리워하는 것을 비유하니 또한 이와 같을 뿐이다.

장구령.JPG

* 張九齡(장구령 , 678-740) : 당나라 대신. 자는 자수(子壽), 다른 이름은 박물(博物). 소주 취장(韶州 曲江, 현재 광둥성 사오관韶關) 사람이다. 경룡(당 중종 연호, 707-710) 초년 진사. 당 현종 때 중서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 중서령을 역임하여 당나라에서 유명한 현상(賢相)이다. 장구령은 재치가 민첩하고, 문장이 우아하며, 시적인 의미가 뛰어난 성당 초기의 중요한 시인으로, 그의 오언 고시는 당시(唐詩) 발전에서 매우 높은 지위와 큰 영향을 미쳤다. 장구령의 대표작으로는 《감우(感遇)》 12편, 《잡시(雜詩)》 5편 등이 있으며, 예를 들어 《망월회원(望月懷遠)》, 《여숙회양정구호(旅宿淮阳亭口号)》 등은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명작들이다. 또한 '곡강집' 20권이 전해진다. 장구령이 당시 전개한 문학 활동은 개원시단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장구령은 담력과 식견, 선견지명이 있으며, 충직한 직책을 다하고 직언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절대 권세에 빌붙지 않고 악의 세력과 싸울 용기가 있어 당대의 번영에 큰 기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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