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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靜夜思(정야사) / 고요한 밤의 생각

금삿갓의 漢詩工夫(250928)

by 금삿갓

靜夜思(정야사) / 고요한 밤의 생각

- 李白(이백)


牀前明月光

상전명월광

○○○●◎

침상 앞의 달빛이 밝아


疑是地上霜

의시지상상

○●●●◎

땅에 내린 서리로 의심하네.


擧頭望明月

거두망월월

●○○○●

머리 들어 밝은 달 바라보고


低頭思故鄕

저두사고향

○○○●◎

머리 숙여 고향을 생각하네.

남망루.JPG

此(차)는 全寫月光(전사월광)하니, 光白如霜(광백여상)하야. 于牀前(우상전)에 見之(견지)하니, 客中靜夜疑是天曉矣(객중정야의시천효의)라.

이는 온전히 달빛을 그렸으니, 빛이 서리처럼 하야서 침상 앞에 이를 보니, 나그네의 고요한 밤에 이것이 새벽인가 의심했다.

先是(선시)에 無心中(무심중)에 見月光(견월광)하야. 尙未擧頭也(상미거두야)러니, 因疑有望(인의유망)하야. 遂擧頭而有見明月(수거두이유견명월)이 高如許(고여허)하고, 方省是身(방성시신)이 在他鄕也(재지타야)라.

그 앞서 무심중에 달빛을 보고, 오히려 머리를 들지 않았으나, 의심으로 인하여 바라봄에 있어 드디어 머리를 들어 밝은 달이 이와 같이 높이 보이고 있고, 바야흐로 이 몸을 살피니 타향에 있는 것이다.

此句(차구)는 方寫月字(방사월자)라. 因望而有思(인망이유사)하고, 惟思故(유사고)로 低頭(저두)하야. 他鄕(타향)에 此月(차월)이오. 故鄕(고향)에도 亦此月(역차월)하야. 靜夜思之(정야사지)에 眞有情不自禁者(진유정부자금자)라.

이 구절은 바로 月 자를 묘사한 것이다. 바라보므로 인하여 생각하게 됐고, 생각하므로 머리 숙여 타향에서도 이 달이요. 고향에서도 역시 이 달이라. 고요한 밤 그 생각에 진실로 정이 있어 스스로 금할 수가 없는 것이다.


○ 此詩(차시)는 如不此經意而得之自然故(여불차경의이득지자연고)로 群服其神妙(군복기신묘)라. 他本(타본)에 作明月光(작명월광)하니, 看字誤(간오자)하니, 如用看字則望字(여용간자즉망자)가 有何力(유하력)이리오. ○盛唐(성당)

○ 이 시는 이렇게 마음에 둔 것이 아니라 이를 자연에서 얻은 까닭으로 무리들이 그 신묘함에 탄복한 것이다. 다른 책에는 明月光(명월광)으로 되어있다. 看(간) 자는 잘못이니, 만약 看(간) 자를 사용한다면 望(망) 자가 무슨 힘이 있겠는가? ○ 성당 : 사당(四唐)의 둘째 시기. 현종 2년(713)에서 대종 때까지의 시기로 이백(李白), 두보(杜甫), 왕유(王維), 맹호연(孟浩然)과 같은 위대한 시인이 나왔다. 이 시기에 당나라 시가 가장 융성하였다.

* 이백(李白, 701~762) : 중국 성당기(盛唐期)의 시인으로서 자는 태백(太白)이며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다. 이백은 중국의 수많은 시인 가운데 두보와 더불어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칭송되며, 오늘날 이두(李杜)라 병칭 하며 두보를 시성(詩聖), 이백을 시선(詩仙)이라 부른다. 출생지와 혈통에 관해서는 정설이 없고 관련 기록을 참고하여 유추해 보면 수나라 말에 그의 먼 조상이 서역(西域)으로 유배되어 갔다가 당나라 신룡(神龍) 원년(705)에 그의 부친 이객(李客)이 몰래 가족들을 데리고 촉(蜀)이라는 지방의 사천성(四川省) 면주(綿州) 창명현(彰明縣) 청련향(靑蓮鄕)에 들어와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백은 서역에서 태어나 5세 때 서역에서 무역상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들어와 25세까지 20년 동안을 이곳에서 생활하였다. 청련거사라는 그의 자작호도 자신의 고향이라 여긴 청련향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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