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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同洛陽李少府觀永樂公主入蕃동낙양이소부관영락공주입번

금삿갓의 漢詩工夫(250910)

by 금삿갓

同洛陽李少府觀永樂公主入蕃(동낙양이소부관영락공주입번) / 낙양의 이소부와 함께 영락공주가 거란으로 드는 것을 보며

- 孫逖(손적)


邊地鶯花少

변지앵화소

○●○○●

변방에는 꾀꼬리나 꽃이 적어서


年來未覺新

연래미각신

○○●●◎

새해가 와도 새로움을 못 느끼는데


美人天上落

미인천상락

●○○●●

미인이 하늘에서 떨어졌으니


龍塞始應春

용새시응춘

○●●○●

용새(변방)에 비로소 봄이겠구나.

龍塞(용새)는 龍荒邊塞之地(용황변새지)라. ○ 唐凡以宗女(당범의종녀)로 出嫁外蕃(출가외번)에 例封公主(예봉공주)라. 逖(적)이 見之(견지)하고, 有感而作(유감이작)하니, 言邊地苦寒(언변지고한)하야. 鶯燕(앵연)이 不生(불생)하고, 春花罕發(춘화한발)하야. 雖遇新年而未見春光之麗(수우신년이미견춘광지려)라.

용새는 용황이라는 변방의 요새 땅이다. ○ 당나라의 평범한 종가집 여식을 공주에 봉하는 예로 국경 밖으로 시집가는 것이다. 손적이 이를 보고 감흥이 있어 지었다. 변방 땅의 모진 추위에 꾀꼬리와 제비가 없고, 봄꽃이 드물게 피어 비록 새해를 맞으나 아름다운 봄빛을 볼 수 없는 것을 말한다.

今公主自京而來如從天降(금공주자경이래여종천강)하니 應使邊塞遐荒之地(응사변새하황지지)로 始知春色矣(시지춘색의)라하니, 盖傷之而反言之也(개상지이반언지야)라. ○ 逖(적)은 博州人(박주인)이니 中書舍人(중서사인)이라. ○ 盛唐(성당)

지금 공주가 서울로부터 와서,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것 같으니, 응당 멀고 황량한 변경에 있는 요새 땅으로 하여금 비로소 봄빛을 알게 한다라고 하니, 그 아픔을 덮어 반대로 말한 것이라. ○ 손적은 박주사람이니 중서사인이라. ○ 성당(은 개원(開元)부터 대력(大曆)까지 당나라 한시가 가장 성한 시기이다.)

* 少府(소부) : 현위(縣尉)의 호칭.

* 永樂公主(영락공주) : 당현종(唐玄宗) 개원(開元) 4년(716) 동평왕(東平王)의 외손(外孫) 양원사(楊元嗣)의 딸을 영락공주(永樂公主)에 봉하여, 거란에 귀순한 솔부의 수령 이실활(李失活)에게 시집보내고, 이실활을 송막부도독(松漠莩都督)에 명하여 송막군왕(松漠郡王)에 봉했다. 당시 종손의 딸을 외족에게 시집보내 화친을 맺을 때는 임금의 딸이 아니어도 반드시 먼저 공주에 봉하는 관례가 있었다. 이실활(李失活, 640년경 ~ 718년)은 거란의 수령으로 대하굴가의 손자이며, 이진충(李盡忠)의 사촌 동생이다. 일가족이 살해될 때 살아남아 714년 거란 남부의 지도자로 있을 때 당나라로부터 금은보화로 매수되었다. 715년 카파간카간(默啜可汗) 세력이 쇠퇴한 틈을 타서 무리를 이끌고 당나라로 항복해 왔다. 이에 당나라는 다시 송막도독부를 설치해 주고 이실활을 송막군왕에 책봉하고, 좌금오위대장군 겸 송막도독부 도독에 임명하였다. 그가 거느리는 8 부락은 예전 우두머리를 자사로 임명하고, 다시 장군 설태(薛泰)로 하여금 감독하고 감시하도록 하였다. 716년 이실활이 입조 하자, 당나라 종실의 질녀 양씨(楊氏)를 영락공주(永樂公主)로 삼아 시집보냈다. 718년 이실활이 죽자, 현종이 애도를 표하고 특진(特進)에 추증하였다.

* 入蕃(입번) : 오랑캐의 땅에 들어가다.

* 龍塞(용새) : 용성(龍城). 흉노의 추장들이 천제(天祭)를 올리는 곳.

* 孫逖(손적, 696~761) : 당나라 박주(博州) 무수(武水) 현재 산동성 료성시(聊城市) 사람. 자(字)는 자성(子成). 어릴 때부터 문재(文才)가 있었고, 생각이 민첩하여 붓을 들면 바로 글을 지었다. 개원(開元) 2년(714) 문조굉려과(文藻宏麗科)에 올랐다. 최일용(崔日用)과 망년교(忘年交)를 맺어 더욱 명성이 높아졌다. 현종(玄宗)이 불러 좌습유(左拾遺)에 임명했다. 연국공 장열(張說)이 더욱 그 재능을 중시했다. 현종 21년(733) 입조(入朝)하여 집현전수찬(集賢殿修撰)과 고공원외랑(考功員外郞), 중서사인(中書舍人) 등의 직책을 역임했다. 지공거(知貢擧)를 맡아 유능한 문재(文才)인 두홍점(杜鴻漸), 인진경(顏眞卿), 왕창령(王昌齡), 이화(李華), 소영사(蕭潁士) 등을 발굴했다. 천보(天寶) 초에 형부시랑(刑部侍郞)에 올랐다. 지제고(知制誥)직을 맡아 8년간 있었고, 나중에 풍질(風疾)에 걸려 한직을 원해 태자좌서자(太子左庶子)로 벼슬을 마쳤다. 시호는 문(文)이다. 문집 20권이 있었지만 모두 없어지고, 지금은 시만 60수가 전하는데, 『전당시(全唐詩)』에 1권으로 되어 있고, 『전당문(全唐文)』에도 문장 6권이 전한다. 시와 문장에 뛰어났고, 문사(文思)가 민첩해 붓만 잡으면 한 편을 이루어내 안진경(顔眞卿), 이화(李華), 소영사(蕭潁士) 등과 더불어 널리 이름을 날렸다. 저서에 『손적집(孫逖集)』과 『당송집현시집(唐宋集賢詩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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