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에는 온통 낚시가 도처에 알게 모르게 우리를 낚으려고 한다. 물고기든 사람이든 쉽게 낚이면 인생(人生)과 어생(魚生)이 힘들거나 끝장이다. 요즘 쉽게 돈을 벌 욕심에 범죄단체의 낚시에 걸려 캄보디아에서 화를 당하는 일이 다발 하는 등 사회 전반이 낚시질에 비상사태이다. 낚으려는 무리들은 어떻게든 성공하려고 비장의 무기를 아름답고 맛있는 미끼로 위장하여 대상을 유혹하기 마련이다. 이런 낚는 자와 낚이는 자의 대결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동양에서는 중국의 은(殷) 또는 상(商) 나라 말기인 기원전 12세기에 산동성에 살던 낚시꾼의 대명사 일명 강태공(姜太公) 즉 여상(呂尙)이 위수(渭水)에서 낚시를 하며 세월을 기다려 문왕(文王)을 만났다. 그를 도와서 주(周) 나라를 부강시켜 천자에 옹립하고 본인은 제(齊) 나라를 세웠다. 말하자면 낚시를 한 게 아니라 문왕이라는 사람 즉 기회를 낚은 것이다. 성인(聖人)으로 추앙받는 공자(孔子)도 젊었을 때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낚시를 했는데, 조이불강(釣而不綱) 즉 낚시를 하되 그물질은 않는다고 했다. 우리나라 역사에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신라 4대 석탈해(昔脫解) 왕이 낚시로 고기를 잡아 모친을 봉양했다는 기록이 있다. 서양은 이집트의 무덤이나 파피루스 등에 그려진 낚시 모습이 보이고, 구약성서에도 낚시와 비슷한 작살에 관한 기록이 있고, 아담(Adam)이 130살에 가진 셋째 아들 셋(Seth)이 그의 아들들에게 낚시를 가르쳤다는 속설이 있다. 특히 ‘사람 낚시꾼’인 베드로(Peter)는 예수에게 낚여서 수제자가 된 것이다. 그리스 작가 코리쿠스의 오피안(Oppian of Corycus)은 177년에서 180년 사이에 저술된 바다낚시에 관한 5권짜리 주요 서사시인 <할리에우티카(Halieutika)>를 썼다. 이 책은 오늘날까지 온전하게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낚시에 관한 저작이다.
낚시에 관한 웃기는 정의(定義)를 보면, 한쪽 끝에는 지렁이를 매달고, 또 한쪽 끝에는 바보가 붙어 있는 줄이다. 낚시를 즐기지 않는 사람 입장에선 이 같은 정의는 아주 그럴듯해 보인다. 미끼는 지렁이 외에 다른 것으로 바뀔 수도 있지만, 줄의 다른 한쪽 끝에 붙어있는 것은 바뀌지 않는다. 겨울에도 즐기지만, 해마다 봄철이면 극성스러운 낚시꾼들이 물속의 고기들을 찾아 호숫가나 강가, 바다로 몰려든다. 그리고 해마다 수백만 달러의 돈이 낚시장비에 지출되고, 가장 그럴듯한 미끼가 나오지만, 낚시꾼들에게 숙명적으로 돌아오는 것은 수확 없이 낚싯줄만 던지는 끝없는 시간들, 얽힌 낚싯줄, 빼앗긴 미끼, 놓친 대어(大魚), 낚싯바늘에 찔린 손가락뿐이다. 이론적으로는 이 졸음 오는 스포츠는 12살 이상의 정신연령층에 속하는 어떤 사람에게도 매력적일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낚시는 계속해서 지도적인 사업가·정치인·지성인들 그리고 작가들의 마음을 지나칠 정도로 사로잡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의 마음을 그렇게 사로잡는가? 아마도 중요한 것은 이 스포츠가 속도와는 인연이 먼 특성에서 오는 이점일 것이다. 다른 옥외 스포츠와는 달리 낚시는 조용히 마음을 릴에 감았다 풀었다할 수 있게 만든다. 행운과 시간 그리고 참을성이 곁들여져야 낚시꾼은 오랫동안 기다리던 수확을 얻게 된다. 어쩌면 전혀 수확이 없을 수도 있다. 물속으로부터 물고기가 반짝이며 마치 새로운 아이디어인 양 수면으로 떠오른다. 바로 이 순간 낚시라는 스포츠는 그 영광의 역사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어부는 물론 성 베드로였다. 그는 예수에게 낚여서 사람의 마음을 낚는 쪽으로 직업을 바꾸었다. 물론 강태공도 문왕을 낚아서 정치가로 직업을 바꾸었다. 셰익스피어는 <햄릿>에서 다음과 같이 낚시를 비유하여 인생을 논했다. "너의 거짓 미끼가 진리의 잉어를 낚는다. 그리고 우리는 간접을 통해 직접을 발견한다." 아이작 월튼(Izaak Walton)은 직업이 포목상이면서 취미활동으로 전기를 쓰는 사람이었는데, 그의 작품은 전해지지 않았다. 오늘까지 전해져 오는 것은 그의 취미에 관한 단편적인 기록들뿐이다. 1653년에 출판되었던 <낚시전서(釣魚全書, The Compleat Angler)>는 오늘날에도 출판 당시인 올리버 크롬웰 시대에 못지않게 신선미를 유지하고 있다. 그의 저술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은 "미끼를 물 밑바닥에 가라앉게 하여 움직이지 못하도록 할 적당한 양의 납"을 낚싯줄에 붙이는 법을 배웠다. 월튼의 미국인 추종자인 워싱턴 어빙을 통하여 또 다른 수백만 명의 호사가들은 "낚시에는 정신의 평온과 마음의 순백한 청정(淸淨)을 가져다주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그 무엇'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으며, 그것은 낚시에 대한 확고한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구태여 꼬집어 말한다면 그것은 '실패'다. 아무리 좋은 장비를 갖추고 있더라도, 그리고 낚시꾼이 아무리 큰 인내심을 갖추고 있더라도 빈 바구니로 돌아가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항상 그렇듯이 행운은 쫓기는 쪽으로 더 기울어져 있다. 그러나 진짜 낚시꾼에게는 바로 그 실패가 일종의 승리인 것이다.
낚시는 매사냥이 쇠퇴하면서 스포츠로서 각광받기 시작했다고 여긴다. 그 배경에는 탐욕과 유혈(流血) 스포츠를 경계하는 청교도주의의 영향, 도시에 대비되는 시골의 미덕을 고양하던 시대적 분위기, 명상에 대한 새로운 개념의 정립 등의 변화가 있었다. 짐승을 몰아붙이는 사냥의 강제성이나 등산에서 보는 현기증 나는 풍취를 낚시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나 낚시는 그와는 다른 것, 즉 철학을 우리에게 준다. 그것은 곧 정복되지 않는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마침내 그 자연을 어쩔 수 없이 찬양하는 사상이다. 그것은 낚시에 탐닉한 정치가들,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아이젠하워(Dwight Eisenhower)·케네디(J. F. Kennedy)·비스마르크(Otto Bismark) 등, 호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 제독과 헬무트 몰트케(Helmuth Moltke) 장군, 철학자인 허버트 스펜서(Hebert Spencer), 음악가 루트비히 베토벤(Ludwig Beethoven), 로시니(Gioacchino Rossini) 등을 유혹한 철학이다. 시인이며 철학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에게 "시간은 내가 낚시질을 하는 강물"이라고 묘사하고 싶은 총동을 일으킨 것도 바로 그러한 철학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겨우 수확한 낚시꾼의 물고기를 끝내 자연에게 도로 빼앗기는 것을 주제로 한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의 <모비 딕(Moby-Dick)>, 마크 트웨인(Mark Twain)의 <허클베리 핀(Huckleberry Finn)>, 헤밍웨이(E. M. Hemingway)의 <노인과 바다> 등 미국 명작소설들의 밑바닥을 흐르는 사상도 바로 그러한 철학이다. 더욱이 헤밍웨이는 바다낚시의 전문가였다고 한다. 낚시광인 소설가 안톤 체호프(Anton Chekhob)은 부인에게 편지를 쓸 때마다 자신을 ‘당신을 낚는 어부’, 부인을 ‘나의 물고기’라고 호칭했다. 아무튼 낚시꾼들이 물고기를 유혹하기 위해 뿌리는 미끼와 떡밥이 오랜 세월 자연을 오염시켰다. 그래서 미국의 경우 3,000만 명이 넘는 낚시꾼들은 자연의 회생에 필요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면허료 및 입어료로 그들이 지불하는 수억 달러가 자연보호 사업에 사용되고 있다. 비용을 부담하던 말 던, 허탕을 치던 말 던 낚시꾼들은 오늘도 채비를 해서 길을 나설 것이다. 그들이 낚시길에 오를 때의 마음은 <39 계단>을 쓴 첩보 스릴러 소설의 아버지 존 버컨(John Buchan)의 정신과도 같을 것이다. 버컨은 수면 밑을 들여다보고 다음과 같이 낚시의 정수를 포착했다. "낚시의 매력은 잘 잡히지 않지만 잡을 수 있는 것, 즉 끝없이 계속되는 일련의 희망을 추구하는 데 있다." 희망이야말로 낚시꾼은 물론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최상의 미끼이기 때문이다.
요즘 같이 바쁜 일상일 때, 한강변의 낚시꾼은 가끔 큰 할 일 없이 한가한 인간으로 비치기 쉽다. 게다가 호수와 바다 등 쓰레기 오염의 주범들로 눈총을 받는 게 낚시꾼 아닌가. 게다가 일상에서 ‘낚시질’이라는 비유어도 기분이 안 좋다. 큰 이권을 몰래 감추고, 달콤한 미끼를 은밀히 던져놓고 덜컥 물기만을 기다리는 비열한 짓이기 때문이다. ‘낚시걸이’라는 말도 조금 주고 많이 얻으려는 꼼수다. 특히 요즘에는 낚시꾼에 대한 혐오감이 더욱 심하다. 속칭 보이스피싱(Voice Phishing) 즉 ‘목소리 낚시꾼’이 암약(暗躍)하는 세상 아닌가. 더욱이 이런 행위를 중국인들이 주로 수행하니 더욱 그러하다. 아이러니(Irony)하게도 중국 전한(前漢)의 유안(劉安)이 편찬한 <회남자(淮南子>에는 “성인(聖人)은 도덕으로써 낚싯줄을 삼고, 인의(仁義)로써 미끼를 삼아, 그것을 천지간에 던지는 것”이라는 웅대한 ‘낚시 통치론’을 설파했다. 당(唐) 나라의 시인 잠삼(岑参)은 <어부(漁夫)>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