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의 식사 예절은 식탁의 제일 어른이 숟가락을 드는 것으로 시작되어, 숟가락을 놓으면 끝이 난다. 서양의 식탁 매너는 호스트가 식사 시작을 알리는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행동으로 냅킨을 펼쳐서 무릎 위에 덮으면 시작되고, 사용한 냅킨을 식탁 위에 올려두면 끝나는 신호이다. 손님이나 아랫사람이 호스트 보다 먼저 냅킨을 펼쳐 무릎에 놓는 것은 에티켓이 아니다. 이 단어는 고대 프랑스어 Nappe(라틴어 Mappa에서 유래한 : 식탁보)에서 유래되어, ‘작다’는 뜻의 영어 접미사 ‘-kin’이 붙어서 된 말이다. 냅킨 사용의 서양 역사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빵을 사용하여 손을 닦았다고 종종 언급되었다. 이는 그리스의 소피스트였던 알키프론(Alciphron)의 편지 중 하나의 구절과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의 희곡 <기사단>에 나오는 소시지 판매인의 발언에서 암시된다. 두 텍스트 모두에서 빵은 아포마그달리아(Apomagdalia)로 언급되는데, 이는 단순히 크럼(Crum : 부스러기)이라고 알려진 껍질 안쪽에서 나온 빵을 의미하며, 특별한 "냅킨 빵"이 아니다. 그들은 이 부스러기로 손을 닦고 개의 먹이로 주었다고 한다. 냅킨은 고대 로마 시대에도 사용되었다. 일설에는 토끼나 강아지를 의자 곁에 묶어 놓고 그 털에 손을 닦았다는 기록도 있다. 중국에서도 종이가 발명된 시기 이후에 종이 냅킨 치파(Chihpha)를 사용한 기록이 있다고 한다. 프랑스나 영국에서 공식적인 식탁에서의 냅킨은 ‘세르비엣(Serviette)’라고 한다. 냅킨을 고정시키는 고리는 ‘Rond de Serviette’이다.
신대륙인 미국에서는 유럽인들이 이주했음에도 냅킨의 도입이 늦었나 보다. 1780년에 미국을 방문한 프랑스의 루이 드 클로상 남작은 다음과 같이 썼다. "이 나라의 특이한 점은 부유층의 가정에도 냅킨이 없다는 사실이다. 통상적으로 냅킨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식탁보로 입을 닦아야 한다. 참으로 볼썽사나운 일이다." 종이 냅킨은 1800년대 후반에 미국으로 처음 수입되었지만 1948년 소설가 에밀리 포스트(Emily Post)가 "아침 식사에 사용하던 리넨 냅킨보다 종이 냅킨을 사용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예의입니다."라고 주장할 때까지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세계의 다른 여러 지역에서는 18세기 훨씬 이전부터 냅킨을 사용하고 있었다. 스위스에서 발견된 양모와 아마포 조각으로 미루어 보면, 석기시대에 벌써 조잡한 것이나마 냅킨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부유한 로마인들은 냅킨을 적어도 두 가지 용도에서 사용했다. 하나는 마파(Mappa)라는 것으로 식사할 때 몸을 기대는 의자를 보호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수다리움(Sudarium)으로 연회가 끝난 뒤 주인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자기가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을 싸 가지고 가는 보자기로 이용하는 것이었다. 프랑크족은 우아한 식탁보를 선보인 바 있다. 한 작가가 묘사했듯이, 프랑크족의 왕인 샤를마뉴(Charlemagne) 대제 시대의 식탁은 "들판보다도 장미꽃이 더 많았다. 식탁을 덮고 있는 것은 보통의 식탁보가 아니라 장미꽃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후각을 즐겁게 해주는 것을 골라 리넨 대신 식탁을 덮었던 것이다." 그러나 프랑크족의 이 환상적인 식탁보는 오래 인기를 누리지 못했다. 식탁을 고상하게 하는 데에는 새하얀 리넨보다 더 좋은 것이 없었다.
그리고 17세기에 이르러, 냅킨 접기 기술이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17세기 초인 1600년에 앙리(Hery) 4세와 마리 드 메디치(Marie de Medici)의 결혼식 만찬 테이블을 꾸미기 위해 올려진 냅킨 장식은 나무와 동물, 사냥꾼들이 있는 겨울 사냥의 정경을 표현하는 정도로 화려했다. 영국에서는 냅킨 접기를 다룬 책까지 나왔다. 그래서인지 영국의 일기작가 새뮤얼 페피스(Samuel Pepys)가 1668년에 쓴 일기에는 "식탁보를 깔고 냅킨을 접어주는 친구가 썩 마음에 들었다. 그게 어찌나 보기 좋았던지, 그 친구에게 40실링을 주어 아내한테 요령을 가르치게 해야겠다고 작심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냅킨을 멋진 모양으로 접는 사람은 수세기 동안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영국왕 찰스 2세(Charles II)의 주방장이었던 자일스 로스는 '바구니 속의 둥지에 깃들인 비둘기' 모양을 비롯해서 모두 26가지 모양으로 냅킨을 접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냅킨은 실제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 아닌 일종의 예술작품이었다. 한 때 영국에서는, 황실에 포크 사용이 받아들여지면서 귀족들 사이에서 냅킨 사용이 중단되고 포크만을 사용한 깨끗한 식사 예절이 강조되었다. 극작가 벤 존슨(Ben Jonson)은 “냅킨을 구원하려고 포크가 이탈리아로부터 영국에 왔도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영국의 스탠더드 냅킨의 사이즈는 원래 114x90cm였는데, 18세기에 이르러 모든 계층에 포크 사용이 확산되면서 냅킨 사이즈도 80x90cm로 줄었다.
냅킨에 얽힌 피카소의 일화인데, 믿거나 말거나이다. 노년의 피카소가 지중해 연안의 한 카페에서 냅킨에 그림을 끄적이고 있었다. 그는 무덤덤한 태도로 있다가 자리를 뜨기 전에 냅킨을 구겨서 버리려 했다. 옆 테이블의 여성이 피카소를 보고, "잠깐만요, 제가 그 냅킨을 가져도 될까요?" 그러자 피카소가 대답했다. "물론이죠. 가격은 2만 프랑입니다." 눈이 휘둥그레진 여자가 묻는다. "뭐라고요? 그리는데 2분밖에 안 걸렸는데요." 피카소가 다시 대답했다. "아니요. 60년 넘게 걸렸습니다." 그리고는 냅킨을 주어 주머니에 쑤셔 넣고 떠났다. 마지막으로 식사 예절의 하나인 냅킨의 바람직한 사용법에 대해서 알아보자. ①자리에 앉으면 냅킨을 펼친 후 반을 접어 접힌 쪽이 몸 쪽을 향하게 한 후 허벅지 위에 올린다. ②냅킨을 목 부분 옷깃에 끼거나 두르지 않는다. ③식사 중에는 별도의 종이냅킨 말고 무릎에 있는 냅킨을 사용한다. ④냅킨이 떨어지거나 심하게 더러워진 경우에는 스탭에게 새로운 냅킨을 요청한다. ⑤냅킨으로 입술과 손 이외의 부위를 닦는 용도로 사용하지 않아야 하며, 특 코를 풀어서도 안 된다. ⑥식사 중 잠시 자리를 뜰 경우에는 의자 위에 올려두고, 식사를 다 마친 후에는 대충 접어 테이블 위 약간 왼쪽에 올려둔다.(금삿갓 芸史 琴東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