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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미국이 달라고 하는 달러(Dollar) 이야기

by 금삿갓

요즘 한미 관계는 트럼프가 쏘아 올린 관세전쟁으로 연일 환율이 들썩이고 있다. 3,500억 달러를 내놓겠다고 덜컥 승낙한 우리 협상대표나 선금(先金)을 받아야겠다는 트럼프의 욕심에 기인한 것이다. 물물교환의 시대에는 돈 즉 화폐가 필요하지 않았겠지만, 인간의 욕구 수준이 발달하면서 매개체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게 바로 돈이다. 아담 스미스의 표현대로 ‘욕망의 이중적 일치(Double coincidence of wants)’가 발생하지 않아도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매개수단이 된 것이다. 우리말 돈의 유래는 어떤가? 돈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僉知)고, 귀신도 부릴 수 있고, 처녀 불알도 살 수 있는 돈은 어디서 왔을까? 역사 말고 어원(語源) 얘기다. 중국에서는 전(錢), 일본에서는 가네(金)로 금속성이다. 우리의 고문헌에는 돈이란 순수 우리말 표현인데, 그중 가장 오래된 것이 1447년 간행된 석보상절(釋譜詳節)이다. “청백(淸白) 하사 한 돈도 아니 받으시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1459년 <월인석보(月印釋譜)>에도 있는데, “삼천관(三千貫)의 돈 중에 아들 라복(羅卜)이 장사를...”라는 구절이 있다. 우리말 돈의 어원은 다양한 설(說)이 많아 어느 것이 정설인지 확인 불가이다. 옛 중국의 칼처럼 생긴 도화(刀貨) 유래설, 고대에 사용되던 ‘돌(石) 돈’ 유래설, ‘돌고 돈다.’에서 왔다는 등의 여러 설이 있다. 중세 이후에 와서 동전 즉 엽전(葉錢)이 둥글게 생겨서 화폐단위로 우리는 원(圓), 중국은 위안(元 또는 圓), 일본은 엔(円)으로 모두 둥근 걸 표현한다. 돈이라는 영어의 돈인 머니(Money)의 어원에 대해 개그맨들은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최고야”에서 왔다고 너스레를 떤다. 머니의 영어 어원은 전설적이다. 로마 신화에 고대 로마의 성 안에는 일곱 개의 언덕이 있었고, 그중 하나가 카피톨리누스(Capitolinus) 언덕이다. 이 언덕 위에 로마인들은 기원전 269년에 그리스의 헤라(Hera), 즉 주노(Juno)를 섬기는 신전을 지었다. 그리고 그곳에 동전을 만드는 ‘주조소(鑄造所 : Mint)’를 세웠다. 당시 로마에서 이 여신을 별명으로 ‘주노 모네타(Juno Moneta)’로 불렀다. 모네타는 원래 ‘모니투스(Monitus)’로서 ‘경고하다, 훈계하다’라는 뜻과 함께 ‘지키다, 감시하다’라는 뜻도 있다. 아마 돈을 ‘지키고’ 외부의 도적들을 ‘감시하는’ 주노여신의 가호가 필요해서였을 것이다. 여신의 별명은 점차 ‘주조소’, 나아가 동전 자체로 굳어지게 됐다. 이것이 옛 프랑스어의 ‘Monoie’와 현대 프랑스어의 ‘Monnaie’로 변화된 후 영국으로 건너가서 ‘머니(Money)’로 정착한 것으로 본다.

도전3x.jpg <고대 중국의 칼 모양 화폐인 도전>

그럼 작금에 미국에서 집요하게 달라고 하는 달러(Dollar)라는 말은 어디서부터 왔을까? 16 세기경에 유럽 화폐경제의 문제점은 가치가 의심스러운 주화가 유통되는 것이었다. 당시 오늘날 체코의 동남부에 성 요아힘(St. Joachim)네 있는 스탈(Sthal : 골짜기)에서 매장량이 풍부한 은광이 발견되어 지역이 개발되었다. 그러자 이 골짜기를 줄여서 다스탈(Das Tal)이라 불렀다. 1520년부터 이 지역에서 생산된 은으로 은화를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이를 간단하게 요아힘스탈러 그로센(Joachimsthaler Groschen, 그로센은 19세기 중반까지 독일에서 사용된 화폐단위), 탈러-그로센(Taler-Groschen), 요아힘스탈러, 슐리켄탈러(Schlickenthaler) 또는 간단히 탈러(Taler)라고 불렀다. 이 은화가 공정하게 자기 가치를 가진 화폐로 인기를 끌자, 세계 각지로 퍼지면서 간단히 Taler로 불리다가 음운변화를 일으켜서 Dollar로 되었다. 미국이 사용하는 아니 기축통화이니까 전 세계가 사용하는 달러가 원천은 독일화폐였던 것이다. 달러로 세계 경제를 지배하는 미국이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식민지하에 있던 시기는 물론 1776년 독립선언 후 1783년 파리조약에서 독립이 승인될 때까지도 독립적인 화폐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그들은 필요에 따라 영국의 파운드, 스페인의 페소, 프랑스의 프랑 등의 외국화폐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후 1785년 대륙의회에서 드디어 독일 용어인 달러를 미국의 화폐단위로 채택했다. 그러나 당시 민간은행들이 독자적으로 다양한 화폐를 발행함으로써 화폐체계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그러다가 1792년에 달러를 미국의 공식화폐로 사용하면서 근대 국가 최초로 10진법 화폐체계를 도입하였다. 그 후 1913년 연방준비제도를 출범시키고 흔히 달러로 일컬어지는 연방준비지폐(FRN)를 발행했다. 이전에 발행된 국법은행권, 금증서(Gold certificate), 은증서(Silver certificate) 등도 계속 유통을 허용함으로써 화폐체계는 여전히 복잡하였다.

<짐바브웨 화폐>

그러나 그 이후에 연방준비지폐를 제외한 나머지 화폐의 추가 발행을 중지함에 따라 현재의 달러로 단일화된 것이다. 달러의 권종(券種) 단위는 10진법으로 1달러=10다임(Dime)=100센트(Cent 또는 Penny)=1,000밀(Mill)이다. 달러의 액면 금액에 따라 불리는 속어(俗語)가 있다. 남북전쟁 당시 발행되어 1994년까지 유통되던 뒤쪽이 초록색이었던 달러를 그린백(Greenback)이라고 한다. 10달러를 미국에서는 ‘쏘버크(Sawbuck)’ 또는 ‘버크(Bucks)’라 부른다. 소버크는 톱질할 때의 나무를 걸치는 받침대로 마치 로마수자 10(X)의 모양이라서 그렇고, 버크는 사슴가죽이 초기 화폐대용으로 쓰이던 용어가 굳어져서 그렇다. 5 달러는 ‘핀(Fin)’은 5를 뜻하는 독일어 Funf나 이디시어 Finnif가 변형된 것이다. Fin은 19세기 중엽의 영국에서는 5파운드짜리 지폐를 가리키는 속어였다. 2달러짜리 지폐는 행운의 상징으로 여겨졌다.(https://brunch.co.kr/@0306a641d711434/1312) 달러에 기록된 “In god we trust”라는 문구는 1864년 미국 주화에 최초로 새겨졌다. 거의 1세기 동안 법정 소공 등의 다양한 논란 이후 1956년 이 문구를 국가 공식 모토(Motto)로 의회가 제정한 법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서명함으로써 공식화되었다. 1달러 지폐 뒷면에는 피라미드 꼭대기의 눈이 그려져 있는데, 진리의 눈으로 불리며 고대 이집트의 태양신 '라'를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66년 이래 생존하는 인물의 초상화 사용은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달러 지폐 속 인물은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1달러),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2달러),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5달러), 초대 재무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10달러),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20달러), 18대 대통령 율리시스 심슨 그랜트(50달러), 정치가 겸 과학자인 벤저민 프랭클린(100달러) 등이다.

<헝가리 화폐인 펭괴>

아재 개그 하나다. 우리나라에 현재 발행된 원화를 모두 더하면 얼마인가? 정답은 모두 더해서 66,666원(50,000·10.000·5,000·1,000·500·100·50·10·5·1)이다. 미국은 지폐로만 따져서 188(100·50·20·10·5·2·1) 달러이다. 해마다 인쇄되는 80억 장의 미국 지폐들은 지구를 적도 둘레로 30바퀴 이상 감을 수 있는 길이라고 한다. 지폐를 1마일 높이로 쌓으려면 1천400만 장 이상의 지폐가 필요하다. 미국 내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액면권은 1달러와 20달러짜리 지폐이며, 국제적으로는 100달러짜리 지폐가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 지폐의 무게는 액면가에 상관없이 약 1g이고, 지폐는 75%의 면화와 25%의 리넨으로 만들어서 8천 번 이상 접어야 겨우 찢어지기 때문에 명줄이 ‘질기고 질긴’ 돈이라 할 수 있다. 참고로 달러와 스페인 페소의 표시 기호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아래의 사진이 가장 적합한 기원이라고 한다. 동전인 Coin(주화)은 요즘 암호화폐의 대명사이지만, 이 말은 압착기가 생기기 전에 ‘Cuneus(쐐기)’라는 뜻의 라틴어에 기반한다. 이 쐐기로 디자인된 주화를 찍어냈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참고로 서양의 은행(Bank)이란 용어는 무역이 발달했던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환전상들이 돈을 바꿔 주는 일을 ‘의자( Banco)’에 앉아서 했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만약 환전상의 일을 계속하다가 지불능력이 없어지면 그의 의자가 ‘부서졌다(Rotta)’고 했는데, 여기서 ‘파산(Bankrupt산)’이라는 말이 나왔다. 중국의 은행이란 용어는 고대에 은을 제련하거나 은으로 각종 물건을 주조하는 공방의 기능이었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상인 집단들이 거래와 운송, 교환의 편리성 추구를 위해 은화의 유통이 주류가 되고, 상인 조합을 통한 은 보관증의 거래 대용이 되면서 은행의 기초가 된 것이다. 영국은 홍콩에 1845년에 은행을 만들었다. 확립된 용어로 가장 빠른 것은 청나라 말기에 광기조(鄺其照)가 쓴 《화영자전(華英字典)》에서 영국의 Bank를 은행으로 번역했다. 일본은 금관(金館)이라고 번역했다가 1870년 재무상(財務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도 이 용어보고 1872년 <국립은행조례>를 만들어 일본에 은행을 설립했다.

KakaoTalk_20251019_104929323.jpg <페소와 달러의 표시 기호>

얼마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액면금액의 화폐 발행국은 베네수엘라로 1,000,000(백만) 볼리바르 은행권이다. 석유가 나도 경제실정으로 500 볼리바르에서 3 년 만에 2천 배 상승했다. 튀르키예도 2001년에 2천만 리라 화폐를 발행했었다. 그다음이 베트남으로 500,000 동 짜리였다. 그렇다면 기록된 역사상 가장 액면가가 높은 화폐는 어느 나라일까? 시인 김광균이 읊은 <추일서정> 중에 나오는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가 아니다. 바로 전후 헝가리 지폐였다. 제일 높은 것이 1해(垓) 펭괴였다. 해(垓)는 10의 20 제곱이다. 언뜻 이해가 안 가는데, 우리나라 예산이 조(兆) 단위인데, 조의 1억 배에 해당한다. 당시 헝가리의 인플레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1펭괴 짜리 물건이 1년 만에 30자(秭 : 10의 24 제곱)이었단다. 짐바브웨도2008년 달걀 한 알의 가격이 500억 짐바브웨 달러 수준이었다고 전해질 정도로 화폐가치의 하락이 심각했다. 이 시기에 짐바브웨 중앙은행은 100조 짐바브웨달러권을 발행하였다. ‘돈은 돌아야(循環) 돈이지, 돌지 않는 돈은 돈(狂) 돈이다‘라는 우스개가 있다. 5만원 권이 장롱에 보관되어 있는 상황이나, 동전이 가치를 다해 소멸되는 사회는 이상적이지는 않다. 팬데믹(Pandemic) 사태 이후 미국이 양적완화(量的緩和)로 달러의 금본위(金本位) 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말하자면 금값이 천전부지로 치솟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IMF 외환사태 때에 ‘금모우기 운동’ 할 때의 금값과 비교해 보면 거의 1년에 평균 60% 이상씩 오른 것이다. 손주 돌반지 사주려면 허리띠를 숨 쉴 수 없을 정도로 조아야 할 판이다.(금삿갓 芸史 琴東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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