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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교통신호등 이야기

by 금삿갓

수많은 차량과 보행자들이 오가는 도로 위를 물 흐르듯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도록 하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바로 모든 사람들과의 약속이며 규칙인 교통신호등에서 나오는 것이다. 신호등은 빨강, 주황, 초록색으로 표현해 도로 위 질서를 유지하고 교통을 원활하게 해 주며, 각종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것이 없거나 고장이 나면 교통이 엇갈려서 혼잡이 일어나고 엉망이 되는 것이다. 이런 교통신호등은 언제부터 사용하였을까? 언뜻 생각하면 자동차 시대부터일 것 같지만 아니다. 최초의 도로 교통신호등은 마차 때문에 생겼다. 아니 더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증기기관차의 발명으로 생긴 것이다. 기관사들의 기관차 운행을 제어하기 위한 신호등이 일반도로의 신호등으로 도입된 것이다. 1969년 영국 런던의 국회의사당 근처 조지가(街)와 브리지로(路)의 교차로 모퉁이에 몰려드는 마차를 제어하고, 의사당으로 출근하는 국회의원을 보호하기 위하여 최초로 설치되었다. 기둥 위에 빨간색과 초록색 유리판을 끼우고 가스램프를 얹은 형태의 이 신호등은 교통경찰이 직접 조작하는 수동식이었다. 하지만 가스 누출로 인한 폭발 사고로 교통경찰이 크게 다치는 안전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났고, 이내 촛불이나 석유로 대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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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자동차 산업이 발달하면서 자동차 보급이 늘어나자 도로에 효율적인 교통통제를 위한 신호등의 필요성이 커졌고, 오늘날과 같은 신호등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최초의 전기 신호등은 1914년 미국 클리블랜드 교차로에 등장했다. 빨강과 초록 두 가지 색으로 이뤄진 단순한 형태의 이 신호등은 교통사고를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단다. 이후 1918년 미국 뉴욕 5번가에 빨강, 초록에 노랑을 더한 3색 전기 신호등이 설치되었다. 당시 경찰관이 유리 탑 속에서 교통의 흐름을 지켜보며 버튼을 눌러 신호를 바꾸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1914년 가렛 모건 (Garrett Augustus Morgan Sr.)이 최초의 빨강과 초록 두 가지 전기 신호등을 발명하게 된다. 오늘날 사용되는 4방향 3색 신호등은 1920년 미국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의 교차로 교통관제탑에 최초로 등장했다. 디트로이트의 교통경찰이었던 윌리엄 포츠(William Potts)가 오늘날의 3색 신호등을 발명했다. 철도에서 사용하던 적색, 황색, 녹색의 신호체계를 도로에 적용한 거다. 최초의 3색 신호등은 당시 철도에 사용하던 신호체계를 도로에 적용했는데, 초록색 등은 ‘좌 또는 우회전’, 주황색 등은 ‘직진’, 빨간색 등은 ‘정지’의 뜻이었다고 한다. 처음엔 수동으로 조작했던 이 신호등은 1922년, 타이머를 적용하며 한층 진보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1928년, 영국 햄프턴에서 전자동 제어식 신호등이 개발되며 현재와 같은 신호등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 첫 신호등은 일제강점기였던 1934년 지금의 숭례문 앞에 등장했다. 그 후 1940년에 종로와 을지로 등지에 설치되었던 이 신호등은 둥근 형태의 점등식이 아닌 기차가 플랫폼에 들어올 때 사용하던 날개식 신호기였다. 기둥에서 삼색 날개가 번갈아 나오는 날개식 신호기는 교통경찰이 손으로 조작해야 했다. 점등 장치가 없어 밤에는 사용이 어려웠다.

신호등이 설치되려면 하루에 교통량이 가장 많은 8시간을 기준으로, 자동차가 시간당 600대 이상 다니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이 150명 이상인 곳 등 자동차 운행량과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의 통행량이 일정 기준을 충족해야 한단다. 다만, 교통량이 많지 않더라도 설치할 수 있는 경우도 있는데, 교통사고가 연간 5회 이상 발생한 장소에도 안전을 위해 설치할 수 있다. 그래서 학교 앞 300미터 이내 거나 통학시간대 자동차 통행 간격이 1분 이내일 경우 신호등을 설치할 수 있다. 횡단보도 신호등에서 초록색 불이 켜지는 시간, 즉 보행 시간은 주로 도로의 폭에 따라 정해진다. 기본적인 공식을 알아보면, 횡단보도의 길이를 보행 속도로 나눈 값에 횡단보도에 발을 들여놓기까지의 여유 시간 7초를 추가하면 된다. 여기서 보행 속도는 일반적인 성인이 걷는 속도인 1미터당 1초를 기준으로 삼는다. 예를 들어 횡단보도의 길이가 15미터라면, 15미터를 보행 속도 1로 나눈 값에 여유 시간 7초를 더한 22초가 보행 시간이 되는 것이다. 어린이·노인·장애인보호구역처럼 교통약자 보호구역에서는 보행 속도를 1초에 0.8미터로 산정하고 있다. 그래서 같은 15미터라도 0.8로 나누고, 여유 시간 7초를 더한 값인 약 26초가 신호등에 녹색불이 켜지는 시간이 된다.

1950년대의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세계 여러 곳에서 교통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머리를 짜내고 있을 때, 미국 조지아주 루도위치(Ludowici)의 읍장은 그와 정반대의 조치를 취했다. 이 소읍은 주간(州間) 고속도로가 뚫리기 전만 해도 수많은 북부 사람들이 플로리다주의 유원지로 가기 위해 꾸역꾸역 몰려들었던 아주 중요한 교차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여러 해동안 루도위시 주민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소음과 매연을 견디어 냈다. 그러다가 그들은 초록 불이 짜증스럽게도 단 16초 동안만 켜지도록 특수장치가 된 신호등을 설치하기로 했다. 외지에서 온 운전자들은 으레 빨간 불이 켜져도 쏜살같이 달리기 마련이었고, 그러다 보면 바로 건너편에서 기다리고 있던 마을의 3인조 경관에게 붙잡히기 마련이었다. 위반자들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15달러의 벌금을 물든가, 아니면 무죄를 주장하며 재판이 열릴 때까지의 보석금으로 15달러를 내든가 해야 했다. 이렇게 해서 모인 돈이 한 해에 5만 달러를 넘었는데, 이것은 그 마을의 연간 예산의 약 4배가 되는 액수였다고 한다. 아주 알짜 수익원이었나 보다.

세상에는 특이한 신호등도 있다. 보행자와 자동차를 위한 신호등이 일반적이지만 영국에는 말을 위한 신호등이 있다. 영국 버킹엄 궁전 인근 그린파크와 하이드파크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궁전 근위대 교대식 때 말을 탄 근위대가 지나갈 때만 켜지는 신호등이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는 이색적인 커플 신호등을 만날 수 있다. 이성 커플 신호등도 있지만 동성 커플의 모습까지 담아 평등과 다양성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일시적으로 설치된 신호등이었지만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현재까지도 유지 중이란다. 아이슬란드에서는 금융 위기로 침체해 있던 2008년, ‘당신 마음과 함께하는 미소(Smile With Your Heart)’라는 캠페인으로 사람들에게 미소를 찾아줄 수 있는 공공디자인에 집중했는데, 이때 하트 신호등이 등장했다. 하트 신호등 도입 후 사람들은 일상에서 조금씩 웃음을 되찾았고, 지금까지도 작은 변화로 큰 변화를 끌어낸 공공디자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2009년 싱가포르에는 교통약자 배려 신호등이 생겼다. 싱가포르 육상교통청은 어린이, 노약자, 장애인 등 교통약자에게 제공하는 ‘그린 맨 플러스 카드’를 대면 횡단보도 길이에 따라 보행 시간을 최대 13초까지 연장하는 신호등을 도입했다. 해당 신호등은 시민들의 호응을 얻어 고령층 거주 지역을 중심으로 늘어나서 현재 싱가포르 전역에 1,000개 이상 설치되어 있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는 신호등뿐만 아니라 신호등을 지탱하고 있는 기둥까지 빛을 내는 신호등이 있다. 신호에 맞춰 신호등의 기둥까지 같은 색으로 점멸되는 방식이다. 아무리 교통신호체계가 잘 되어 있어도 이상한 사람들이 마구 역주행하거나 신호규칙을 무시한다면 모두가 허사이다. 질서와 규칙은 아름답고 편하고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인데, 힘 있는 자가 이를 지키지 않을 때 엉망이 되는 것이다.(금삿갓 芸史 琴東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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