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근처 산책로에 있는 은행나무들의 노란 잎이 점차 줄어든다. 얼마 전에는 떨어지는 은행알들로 인해 냄새가 진동해서 산책객들의 발걸음을 돌리게 만들더니, 이제 부채꼴의 노란 잎새가 마치 프로펠러 돌듯이 떨어지는 모양이 아쉽다. 그래도 발 밑 가득 쌓여서 푹신한 그 느낌은 레미 구르몽(Remy de Gourmont)의 <낙엽>이 절로 흘러나오게 만든다. 올해는 가을을 병마와 함께 보내다 보니 단풍이나 낙엽다운 느낌을 낼 수 있는 곳을 다녀 보지도 못하고 지나가고 있다. 금삿갓이 신경 써 주지 않아도 자연은 스스로 더 멋지게 살아가니 곧 자연이다. 금삿갓이 대학 다닐 때 성균관 명륜당 뜰에 있는 은행나무 두 그루도 수령이 500년을 넘는다. 조선 초에 개경에 있던 성균관을 한양으로 옮겼으니, 그때 심었다고 해도 600년이 넘을 거다. 성균관이나 향교(鄕校)·서원(書院) 주변에는 대부분 은행나무가 있다. 이것은 바로 2,500년 전에 공자가 행단(杏壇) 즉 은행나무 밑에 단을 만들어서 제자들을 가르쳤던 것을 기리기 위함이다. 그래서 학문을 닦는 곳에는 은행나무를 심는 것이 관례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 ‘행(杏)’ 자가 은행보다는 살구를 뜻하는 글자로 더 많이 쓰인다. 그래서 행단이라고 할 때 혹시 은행나무가 아니라 살구나무가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든다. 실제 행단이란 말은 <莊子(장자) 雜篇(잡편) 漁父(어부)>에 “孔子遊乎緇帷之林(공자유호치유지림) 休坐乎杏壇之上(휴좌호행단지상) 弟子讀書(제자독서) 孔子弦歌鼓琴(공자현가고금) / 공자가 울창하게 우거진 숲 속을 돌아다니다가 행단(杏壇) 위에 앉아서 쉬었다. 제자들은 책을 읽고 있었고, 공자는 거문고를 타면서 그 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라고 나와 있다. 용어의 유래는 이것인데, 행(杏)이 은행인지 살구인 지는 불분명하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도 그의 어원(語源) 연구저서인 <아언각비(雅言覺非)>에서 행단의 행(杏) 자가 은행이 아니라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행림(杏林)이란 말도 있는데, 이는 '의원(醫員)'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중국 오(吳)나라에 동봉(董奉)이라는 의원(醫員)이 치료비(治療費) 대신에 살구나무를 중환자(重患者)에게는 다섯 그루, 경환자(輕患者)에게는 한 그루씩 의원의 집 옆에 심게 하였는데, 이것이 몇 년 뒤에 가서 울창(鬱蒼)한 숲을 이루었고, 열린 살구로 다시 가난한 사람을 구제한 일화에서 인술(仁術)이 뛰어난 의료진을 나타내는 말이다.
은행이든 살구든 시비는 학자들이 밝히고, 대성전 은행나무가 다행히 암나무가 아니라서 가을에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은행알을 방출하지 않는다. 나무에 암수가 구별되어 있는 경우도 특이하다. 대부분의 나무가 자웅동주(雌雄同株)이지만 은행나무를 비롯하여 피스타치오·파파야·대추야자·키위 등이 자웅이주(雌雄異株)이다. 이들은 반드시 암나무 근처에 수나무가 있어야 바람이나 곤충에 의해 구정이 되어 열매를 맺는다. 더욱 특이한 거는 단풍나무인데, 이 녀석은 일생동안 암수가 저절로 바뀌는 식물이다. 식물학자들은 이 은행나무를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한다. 화석이란 지질시대에 살던 생물들이 지층에 그 형태를 보존한 채 돌이 된 것이다. 그런데 살아있으니 그 시기에 살던 종이 특별한 진화를 하지 않고 그대로 살아 있는 것이다. 모든 생물은 진화한다는 다윈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인가? 아무튼 이런 나무는 은행나무·버드나무·메타세콰이아·종려나무·목련나무·포도나무 등이란다. 수 만년을 살면서 멸종도, 변종도 않고 그대로 살아 있다니 대단한 나무임에 틀림없다. 공자가 행단을 만들 때 은행나무를 잘 택한 듯하다. 그러니 2,500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를 따르는 무수한 후학들이 계속되고, 그의 가르침이 인류의 많은 부분을 점하고 있지 않은가. 마치 살아 있는 화석이나 살아있는 선생님처럼.
살아있는 화석이란 말이 나왔으니 은행나무가 오래 사는 것도 그런 연유인지 모르겠다. 국내에는 가장 오래된 최고령 은행나무는 어디에 있을까? 국립산림과학원 추정에 따르면, 원주시 문막읍 반계리에 있는 것으로 1,300년을 넘는 것으로 본다. 그다음이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 용문사 은행나무로 1,100년 이상이다. 금산 요광리 은행나무가 1,000년 이상이고, 하동군 두양리 은행나무도 고려 강민첨(姜民瞻) 장군이 심었다는데 900년 이상 된다고 한다. 성균관의 은행나무는 이들에 비하면 아직 젖먹이 수준이랄까. 참고로 세계 최고령 은행나무를 찾아보니 인류의 문명사보다 더 앞선 것으로 보인다. 최고령은 중국 귀주성(貴州省) 복천시(福泉市) 황사진(黄丝镇) 이가만촌(李家湾村)에 있는 것으로 수령이 6,000년가량 된단다. 2001년 8월에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다음이 산동성 일조시(日照市) 거현(莒縣)의 성서(城西) 부래산(浮來山) 정림사(定林寺)에 있는 4,000년돤 은행나무이다. 세 번째가 귀주성(贵州省) 장순현(长顺县) 청순진(广顺镇) 천태촌(天台村)에 있는 3,700년 묵은 거란다.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 나이다. 인류 역사를 꿰뚫고 살아왔으니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아니할 수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