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리스본행 야간 버스(7/14)

금삿갓의 산티아고 순례길-영화가 아닌 피곤한 현실

by 금삿갓

파리의 베르시 버스터미널에서 리스본행 야간 버스를 탔다. 아니 탈 때는 오후 4시 20분이니까 오후 버스가 정확하겠네. 하지만 리스본까지는 밤을 지새우고도 두 번째 밤이 되겠지. 하지만 난 중간에 와인의 본고장 보르도에서 내린다. 10여 년 전인지 가물거리는 기억에 의하면 <리스본행 야간열차>을 읽었다. 어느 날 회사 동료가 그 소설을 주면서 읽어보라고 해서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는데 보진 못했다.

스위스 소설가이며 철학자인 파스칼 메르시어(본명 피터 비에리)의 작품인데 내가 느낀 감상은 일상으로부터 탈출 또는 인생에서의 일탈이다. 주인공 그레고리우스의 행동을 나도 한번 꿈꾸어 보면 어떨까? 그래서 일상으로부터 탈출하여 서울을 박차고 나왔다. 리스본으로 가는 열차가 아닌 버스를 탔고, 목적지가 리스본은 아니지만 이번 여정에 리스본도 들어있다. 이름 모르는 여인을 찾아 훌쩍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800km을 걸으면서 내 인생에 대한 새로운 만남을 기대해 본다.

버스는 파리를 출발하여 오를레앙을 거쳐 블루와를 향해 달린다. 끝없이 펼쳐지는 평원이 좁은 반도의 그것도 순전히 산골 동네에 살던 촌뜨기의 기억을 새롭게 한다. 밀밭과 옥수수 밭, 건초밭을 무수히 지나지만 끝나지 않는다. 9시 50분이 되자 서서히 태양이 대지 아래로 숨어들고 시야에 평원이 사라진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바람 부는 데로 발길 닿는 만큼 움직이기로 한 여정이라서 밤이 되면 약간은 긴장도 된다. 낯선 곳에서 하룻밤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잠자리며 먹을거리며. 예약 없이 움직이는 여행의 묘미와 팽팽한 긴장감이 방랑벽 사나이 뇌세포의 생기를 촉진시켜 줄 것이다.

뚜루를 지나서 푸아티에 휴게소에 도착했다. 30분간 정차란다. 저녁 10시가 넘었으니 승객들은 배도 고프고, 우선 용변이 무척 급하다. 버스 안에 화장실이 있지만 한번 사용하는데 2유로를 내란다. 정말 칼만 안 들었지 날강도 짓이다. 모든 승객들이 돈이 비싸서가 아니라 빈정이 상해서 용변을 참고 휴게소까지 온 모양이다. 무두들 화장실로 줄행랑이다. 다행히 휴게소 화장실은 무료이다. 프랑스는 터미널이나 공원, 기차역 등 화장실에서 최소 1유로의 입장료를 받는다. 대충 저녁을 때우고 눈을 붙이고 싶어도 중간에 내려서 버스를 갈아타야 하니 그것도 고역이다. 날밤 까는 김에 버티자. 보르도에서 밤 12시에 내려서 2시간을 기다려 바욘행 버스를 타야 한다. 타향살이 서글프네. 자정을 지나서 버스 환승을 위해 보르도에 내린 승객들은 또 한 번 기겁을 한다. 버스터미널이 아니라 강변도로의 인터체인지 같은 도로의 다리 밑이다. 주변에 아무런 시설이 없다. 도로변에 가로등 같은 기둥에 달린 버스 출도착 안내 전광판이 전부다. 화장실도 없고 바람을 피할 대합실도 없다. 그냥 벤치만 몇 개 덩그러니 놓여있다. 수십 명의 승객들이 야밤에 길거리에 내동댕이 쳐진 것이다. 아랍 쪽에서 온 어떤 식구들은 아예 침낭을 길바닥에 깔고 눕는다. 화장실이 없으니 여성들의 고역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남자들이야 다리 교각 뒤편에 가서 적당히 동네 강아지 실례하듯 처리하면 되지만 여성들은 그것도 수월치 않다. 정말 프랑스 국토교통부인지 교통부인지 모르지만 장관 이 친구 정신 좀 차려야 될 것이다. 외국인만 이용하는 게 아닐 테고, 자국민도 이용할 텐데 이런 대접이라니. 우리나라 같으면 목이 잘려도 벌써 몇 번 잘렸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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