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거위털의 고사-천리아모(千里鵝毛)

by 금삿갓

병자년의 대한(大寒)이 이름값을 하고 있다. 대한(大寒)이 소한(小寒) 집에 놀러 왔다가 얼어 죽었다는 농담이 무색(無色)하다. 대한의 앞뒤로 거의 1주일간을 수은주가 영하 10도 주변에 머물러 있다. 이런 때의 외출복은 격식을 떠나서 가장 따뜻한 오리털이나 거위털 제품이 최고다. 한때 강남의 일부 학교에서 거위털 패딩제품 중 최고의 명품에 속한다는 ‘캐나다구스’나 ‘몽클레르’를 입지 않으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한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한 벌에 2백만 원가량한다는 거액의 제품을 금삿갓이야 언감생심(焉敢生心) 만져보기나 하겠냐만, 돈만이 능사라는 세태가 씁쓸하다. 하긴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는 세상은 인류 역사에서 오래된 사실이다. 중국 속담에 전가통신(錢可通神) 즉 돈은 귀신과도 통할 수 있다는 말이 있고, 유전능사귀추마(有錢能使鬼推磨)라고 돈이 있으면 귀신에게 맷돌을 돌리게 할 수 있단다. 우리에게는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의 인식이 고착화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 구스(Goose) 제품의 충전재(充塡材)인 거위털이 이렇게 최고급 방한의복의 주원료가 될 줄은 1400년 전의 중국 황제도 몰랐을 거다. 잠시 추위를 잊으면서 거위털에 관한 고사 하나를 알아보자.

명(明) 나라의 뛰어난 서예가이자 화가, 작가인 서위(徐謂)가 쓴 <로사(路史)>에 아래와 같은 기록이 있다. 당(唐) 나라 정관(貞觀) 시기 즉 태종(太宗) 때에 운남(雲南) 쪽의 회흘국(回紇國)은 당나라의 속국이었다. 어느 날 회흘국의 왕이 당나라 황제에게 진귀한 진상품으로 흰색의 거위를 바치기로 했다. 그는 운송 책임 사절로 충직한 신하 면백고(緬伯高)를 보냈다. 면백고는 먼 길을 가면서 이 거위를 잘 돌보고 직접 물을 주며 단 한순간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서 면백고는 후베이(湖北) 성 선도(仙桃) 지방에 있는 면양호(沔陽湖)에 도달했다. 이때 새장의 흰 거위가 목을 길게 뻗고 입을 벌리고 숨을 헐떡이는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면백고가 새장에서 거위를 꺼내 호수의 물을 마시게 하고, 깃털에 묻은 오물을 물로 씻으려고 했다. 뜻밖에도 가만히 있던 흰 거위는 물을 충분히 마시고 나서, 그가 깃털을 씻으려는 찰나에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면백고는 급히 잡으려 했지만 깃털 두 개만 뽑히고, 흰 거위는 흔적도 없이 날아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면백고는 망연자실한 채 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울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공물을 잃었다고 장안에 가지 않을 수도 없고, 돌아가서 자기의 왕을 배알 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둘 다 그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래도 그는 눈처럼 하얀 거위 털을 비단 보자기에 조심스럽게 감싸고 그 비단에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天鵝貢唐朝(천아공당조) / 하늘의 새를 당나라 황제에게 바치려니

山重路遠遙(산중로원요) / 첩첩 산으로 길은 멀고도 멉니다.

沔陽湖失寶(면양호실보) / 면양호에서 보물을 잃어버렸으니

倒地哭號啕(도지곡호도) / 땅에 엎드려 통곡할 뿐이네.

上奉唐天子(상봉당천자) / 당나라 황제께 엎드려 고하노니

請罪緬伯高(청죄면백고) / 이 면백고의 죄를 청하옵니다.

物輕人意重(물경인의중) / 물건은 가벼워도 사람의 뜻은 무거우니

千里送鵝毛(천리송아모) / 천리 먼 길에 거위털을 보내옵니다.

면백고는 거위 깃털 보자기를 고이 가져와서 당 태종을 배알하고 거위 깃털 보자기를 진상하였다. 당태종은 깃털과 시를 보고,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탓하기보다는 면백고가 충성스럽고 정직하며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고 판단하여 그에게 큰 포상을 주고 비단·차·옥 등 중국 특산품을 하사했다. 그 이후로 거위 깃털은 예절과 자비와 의로움 등의 의미로 중국 민간의 예절과 감정 교환을 상징하거나 겸손한 표현이 되었다. 천리송아모(千里送鵝毛),예경정의중(禮輕情義重) 즉 거위털을 천리에 보내니, 예물은 가벼워도 정은 무겁다는 말은 이보다 더 먼저 송(宋) 나라의 구양수(歐陽脩)가 그의 시에서 사용하였다. 그는 <매성유기은행(梅聖俞寄銀杏)>이라는 시(詩)의 첫 구절을 “鵝毛贈千里(아모증천리) / 거위털을 천리에 보내니,所重以其人(소중이기인) / 이로써 사람이 소중하다네.”라고 읊었다. 조금 뒤의 사람인 황정견(黃庭堅)도 그의 시 <장구사진적용혜송오남웅소증지(長句謝陳適用惠送吳南雄所贈紙)>에서 “千里鵝毛意不輕(천리아모의불경) / 천리길의 거위털은 그 뜻이 가볍지 않아,瘴衣腥膩北歸客(장의성니북귀객) / 허름한 차림새의 꾀죄죄한 북으로 가는 나그네.”라고 읊었다. 소동파(蘇東坡)인 소식(蘇軾)도 <양주의토물기소유(揚州以土物寄少游)> 시에서 “且同千里寄鵝毛(차천리기아모) / 또 천리길에 거위털을 부치지,何用孜孜飲麇鹿(하용자자음군록) / 어찌 명리를 열심히 쫓겠는가?”라고 읊었다.

거위털이 비록 가볍지만 방수 방한이 잘 되므로 겨울에는 최고의 따스함을 제공해 주니 당연히 최고의 선물이다. 물건이 가볍다고 마음이 가벼운 것이 아님을 우린 늘 생각하면 살아야겠다. 곧 설 명절이 다가온다. 가족 친지 간의 따스한 정을 나누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강요된 선물이나 마음의 빚을 남기게 되는 뇌물성 선물이 김영란법이 시행되고 있는 작금에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선물과 뇌물의 판단 기준은 간단하다. 물건을 받고 잠을 잘 못 이루면 뇌물이고, 잘 자면 선물이다. 받은 사실이 언론에 발표되었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은 뇌물이고, 문제가 안 되는 것은 선물이다. 이 물건을 자기의 자리가 바꾸면 못 받는 것은 뇌물이고, 자리가 바뀌어도 받을 수 있는 것은 선물이다.(금삿갓 芸史 琴東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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