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罷相作(파상작) / 정승을 그만두고 짓다.

금삿갓의 漢詩工夫(260204)

by 금삿갓

罷相作(파상작) / 정승을 그만두고 짓다.

- 李適之(이적지)


避賢初罷相

피현초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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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승상을 현인에게 양보하고


樂聖且銜盃

낙성차함배

●●●○○

술을 즐기면서 또 잔을 머금네.


爲問門前客

위문문전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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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앞의 손님들께 물어보건대


今朝幾箇來

금조기개래

○○●●○

오늘은 몇 분이나 오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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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현(避賢) : 현명한 사람에게 자리를 비켜주다.

* 파상(罷相) : 승상의 자리에서 물러나다.

* 낙성(樂聖) : 술 마시기를 좋아한다는 뜻. 옛날에 청주를 성인이라 하였고, 탁주를 현인이라고 불렀다.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서막전(徐邈傳)>에 나오는 고사이다. 중국 위(魏) 나라 서막(徐邈: 172-249)은 조조가 위나라를 처음 건국했을 때 상서랑(尙書郞)이라는 높은 벼슬에 올랐다. 술을 너무나 좋아했던 그는 조조(曹操: 155-220)가 금주령을 내린 와중에도 혼자서 술에 취해 있기 일쑤였다. 어느 날 조달(趙達)이 감찰을 나왔는데, 서막은 “내 안에 성인에 들어가 있다(中聖人)”라며 농담을 건넸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조조는 크게 진노하였다. 그러자 선우보(鮮于輔)라는 장군이 “취객들은 청주(淸酒)를 성인(聖人)이라 하고, 탁주(濁酒)를 현인(賢人)이라 하는데, 서막이 우연히 취해서 실수로 한 말입니다”라고 진언하여 화를 모면할 수 있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애주가들은 금주령이 내려질 때면 술이라는 말 대신 청주는 성인으로, 탁주는 현인으로 비유하여 불렀다. 즉, 성인과 현인이 청주와 탁주를 이르는 별칭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청성탁현(淸聖濁賢)이라는 고사성어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 飮中八仙(음중팔선) : 중국 당나라 때에 시와 술을 사랑한 여덟 명의 시인. 특히 두보(杜甫)의 <음중팔선가>에 나오는 하지장, 왕진(王璡), 이적지(李適之), 최종지(崔宗之), 소진(蘇晉), 이백(李白), 장욱(張旭), 초수(焦遂)의 여덟 사람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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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聖(악성)은 古人(고인)이 以淸酒(이청주)로 爲聖人(위성인)하고 濁酒(탁주)로 爲賢人(위현인)하니 皆隱語也(개은어야)라.

성인을 즐긴다는 말은 옛사람이 청주를 성인으로 삼고 탁주를 현인으로 삼은 데서 한 말이니 모두 은어다.

〇 公(공)이 退位(퇴위)하여 有感而作也(유감이작야)라. 言己無能(언기무능)하여 不堪居相(불감거상)하여 當避位以讓賢者(당피위이양현자)하고 安居無事(안거무사)하여 惟銜杯縱酒以自樂也(유함배종주이자락야)라.

공(이적지)이 자리에서 물러나와 느낌이 있어서 지은 것이다. 자신이 무능하여 재상에 머물기를 감당하지 못하여, 자리를 피하여 어진 자에게 양보를 당하고 무사히 편안히 살며, 오직 술잔을 머금고, 술이나 맘대로 하며 스스로 즐긴다는 말이다.

然(연)이나 昔之爲相(석지위상)엔 賓容(빈객)이 滿堂(만당) 이러니 今已去位而門庭(금이거위이문정)이 冷落(냉락) 하니 顧我而來者曾有幾人哉(고아이래자증유기인재)아.

그러나 옛날 재상이 되었을 적엔 손님이 당에 가득하더니, 지금 이미 자리에서 떠나니 문과 뜰이 썰렁하고, 나를 돌아보니 오는 자가 일찍이 몇 사람이나 있었던가!

〇 適之(적지)는 唐宗室(당종실)이니 天寶中(천보중)에 爲左相(위좌상)이라. 善飮(선음)하여 與李白等(여이백등)으로 爲飮中八仙(위음중팔선)이라. 〇 盛唐(성당).

이적지는 당나라 왕족이니 천보연간(742~756)에 좌상이 되었다. 술을 잘 마시어 이백 등과 더불어 음중 8선이 되었다. 성당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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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適之(이적지) : 694 ~ 747. 본명은 창(昌), 농서성기(隴西成紀) 사람이다. 唐代(당대)의 시인. 당나라의 종실과 재상으로 항산왕(恒山王) 이승간(李承乾)의 손자. 일찍이 좌위랑장(左衛郞將), 통주자사(通州刺史), 진주도독(秦州都督), 합주자사(陕州刺史), 하남윤(河南尹), 어사대부(御史大夫), 유주절도사(幽州節度使), 형부상서(刑部尙書)를 역임하고, 천보원년(742)에 승상이 되어 이림보(李林甫)와 권력을 다투었으나 패하여 파직되었다. 성격이 소탈하고 술을 좋아하여 이백과 더불어 ‘飮酒八仙(음주팔선)’의 하나이다. 全唐詩(전당시)에 시 2수가 수록되어 있으며, <신·구당서>에 전(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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