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奉送五叔入京寄綦母三(봉송오숙입경기기모삼)

금삿갓의 漢詩工夫(260204)

by 금삿갓

奉送五叔入京寄綦母三(봉송오숙입경기기모삼) / 다섯 번째 숙부가 서울로 들어가는 것을 전송하며 기무삼에게 붙이다.

- 李頎(이기)


陰雲帶殘日

음운대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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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구름 석양빛 띠고 있는데


悵別此何時

창별차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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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이별의 이때가 언제인가.


欲望黃山道

욕망황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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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 길을 바라보려 하지만


無由見所思

무유견소사

○○●●○

그리운 사람 보일 까닭 없네.

* 기무삼(綦毋三): 기무는 복성(複姓)이고, 삼(三)은 기무씨 가문의 같은 항렬(行列) 중에서 세 번째라는 뜻이니, 곧 청담시파(淸談詩派) 시인인 기무잠(綦毋潛)을 가리킨다. 綦毋潛(기무잠), 자는 季通(계통), 湖南省(호남성) 사람. 開元(개원) 14년에 진사에 급제. 宜壽(의수)의 尉(위)를 거쳐 중앙의 集賢院(집현원) 侍制(시제)가 되었다가 右拾遺(우습유)를 거쳐 著作郞(저작랑)으로 끝났다. 이 시는 그가 洛陽(낙양) 尉(위)로 전임되었을 때 보내진 것으로 본다.


此(차)는 送別五叔而仍念綦母三也(송별오숙이잉념기무삼야)라.

이 시는 다섯 번째 숙부를 송별하면서, 기무삼(綦毋三)을 생각하는 것이다.

陰雲(음운)이 滿天(만천)하고 殘日(잔일)이 掛西(괘서)하여 雲陰(운음)이 掩翳西下之日(엄예서하지일)하니 慘淡蕭瑟之氣(참담소슬지기)가 觸目生愁(촉목생수)하니 送別悵懷當此時(송별창회당차시)하여 果何如哉(과하여재)아.

검은 구름이 하늘에 가득하고, 남은 해가 서쪽에 걸려서 구름 그늘 서쪽으로 지는 태양을 가리고 있으니, 참담하고 쓸쓸한 기분이 눈에 닿는 곳마다 시름이 생긴다. 송별하는 서글픈 회포가 이때를 만나서 과연 어떻겠는가?

又思綦母三之別(우사기무삼지별)하여 望黃山道則無由見所思之人(망황산도즉무유견소사지인)하여 悵別中(창별중)에 又加添這所思之緖耳(우가첨저소사지서이)라.

또 기무삼과 작별을 생각해서, 황산의 길을 바라보지만, 생각하던 사람을 보일 까닭이 없으니, 서글픈 이별 가운데 또 이런 생각하는 정서를 더 보태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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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頎(이기) : 690~ 751. 당나라 때 사람. 본적(本籍)은 미상이고, 영양(潁陽, 하남河南 등봉현登封縣 서남西南) 땅에서 오래 살았다. 개원(開元) 23년(735) 진사가 되고, 신향현위(新鄕縣尉)에 올랐다. 당시의 시인 왕유(王維), 왕창령(王昌齡) 등과 교유했다. 천보(天寶)와 개원(開元) 연간에 활동한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관직은 더 이상 승진하지 못하고 영양으로 돌아와 은거했다. 『전당시(全唐詩)』에 시가 3권으로 편집되어 있다. 정치적으로 뜻을 얻지 못해 산림에 은거한 채 살았다. 방랑생활을 통해 신선 세계를 동경하면서 단사(丹砂)를 복용했다. 때문에 작품의 대부분이 현언시(玄言詩)다. 그의 邊塞詩(변새시) 및 음악을 묘사한 시, 인물을 형상화한 장편의 贈別詩(증별시) 등은 모두 매우 특색 있는 것으로서 격앙되고 강개하며 예술적인 감화력이 풍부하다. 그는 五言 古詩(오언 고시)와 七言 歌行(칠언 가행)에 특장이 있었으며, 칠언 율시는 비록 몇 편 남아 있지 않지만 이를 살펴보면 기세가 넘쳐남을 알 수 있다. 교유의 폭이 넓어 王維(왕유), 綦毋潛(기무잠), 高適(고적), 王昌齡(왕창령) 등과 唱和(화창)하기도 하였다. 《당시삼백수》에 수록된 작품으로 〈古意(고의)〉 〈送陳章甫(송진장보)〉 〈琴歌(금가)〉 〈聽董大彈胡笳聲兼寄語弄房給事(청훈대탄호가성겸기어농방급사)〉 〈聽安萬善吹篳篥歌(청안만선취필율가)〉 〈古從軍行(고종군행)〉 〈送魏萬之京(송위만지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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