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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Mar 05. 2024

279. 달팽이 꽃을 보셨나요?

꽃인가 죽음인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걸을 때도 있지만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물들을 관찰할  경우도 많다. 이번의 글도 바로 그런 글의 한 종류이다. 달팽이꽃이란 식물은 아마 없을 거다. 조선 과객 금삿갓이 임의로 붙인 이름이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몇 번인가 마주친 달팽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 여름의 뙤약볕을 받은 순례길의 바닥을 힘겹게 천천히 기어가는 달팽이도 있는 반면에 길가의 꽃이 핀 식물들에 옹기종기 올라가서 붙어 있는 달팽이가 더 많았다. 처음에 자세히 보지 않고 그냥 스쳐 지나갔으면 이게 달팽이인지 모르고 그냥 처음 보는 종류의 꽃이 피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보면 꽃이 아니고 바로 달팽이들이다. 달팽이 크기나 꽃의 크기가 비슷하여서 잘 못 알아볼 수 있다. 달팽이들이 일종의 보호색을 발현하여 포식자로부터 자기 몸을 보호하기 위한 방편인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어떤 곳은 식물들이 건조하여 모두 말라죽었는데도 달팽이들은 그 식물에 달라붙어 있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꼼짝도 하지 않는다.

달팽이는 프랑스에서 인기 있는 식재료이다. 한국에는 한참 늦게 이것이 식재료로써 공급이 되었다. 금삿갓이 어릴 때 달팽이는 징그러워서 감히 식재료로는 상상도 못 했다. 그냥 곤충으로서 자기 집을 짊어지고 느리게 옮겨 다니는 징그러운 존재 그 자체였다. 장자(莊子)에 이 달팽이 뿔(더듬이) 간의 싸움 이야기가 나온다. 전국시대에 위나라와 제나라 간의 갈등이 있을 때 이를 중재시킨 어느 현인(賢人)의 우화이다. 달팽이의 왼쪽 뿔 위에 촉씨()라는 나라가 있고, 오른쪽 뿔 위에는 만씨()라는 나라가 있었데 이들이 영토 싸움을 벌였다. 그러자 죽은 자가 수만이고, 달아나는 자를 추격하기를 보름이나 한 적도 있었다고 현인이 위나라 혜왕에게 말하자, 허황된 얘기라고 믿지를 않았다.  그러자 현인은 이 넓은 우주와 비교하여 제나라와 위나라가 달팽이 더듬이 위의 나라인 촉씨와 만씨에 다를 것이 없다고 말하니 위나라 왕이 설득을 당하여 전쟁을 막았다는 것이다. 조그마한 미물인 달팽이의 더듬이로 두 나라 간의 전쟁을 미연에 방지하였으니 달팽이의 공도 인정되겠다.

이 녀석들도 산티아고 순례에 나선 것일까? 뜨거운 햇볕을 받으면서 건조한 아스팔트 위에 왜 올라와서 고생을 하나. 습기를 좋아하는 습성인 것 같은데 이런 건조한 곳을 힘겹게 천천히 기어가는 것이 아마도 산티아고 순례길에 도전한 것처럼 보인다. 이들이 그 길을 완주하려면 얼마의 시간을 주어야 가능할까? 아마 대를 이어서 수십년의 장기간 계획을 세워야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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