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리에서 아침 06:40에 출발하여 이곳 팜플로나에 14:00경에 도착하였다. 중간에 거쳐오는 마을과 성당 등 유적을 둘러보고, 점심도 먹고 하느라 시간이 걸렸다. 물론 배낭의 무게와 발가락을 비롯한 하체의 전반에서 소리 없는 아우성을 무시하지 못한 결과이다.
고생 끝에 드디어 2000년 역사를 지닌 도시에 4일 만에 도착했다. 나바라 주의 주도(州道)로서, 옛 성곽, 궁전과 성당 같은 오래된 건축물과 갖가지 전설과 오래된 전통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이와 동시에 현대의 편리성과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산업도시이다. 중세에 이베리아 반도를 가로지르는 로마 제국의 침략 루트들이 만나는 전략적인 도시이면서, 이베리아 반도와 갈리아를 잇는 역할을 하기도했단다. 팜플로나는 나바라 왕국의 수도로서 스페인을 프랑스로부터 지키기 위한 첫 번째 방어 거점이기도 했다. 19세기 까를리스따(Carlistas) 전쟁의 배경이 나바라의 수도인 현재의 바로 이곳 팜플로나였다.
팜플로나는 원래 나바라의 원주민이 살고 있던 곳이었다. 이곳에 11세기부터 프랑스인과 유태인이 이주해 오면서부터 여러 민족의 문화와 예술, 다양한 전통을 받아들이는 역사적인 도시가 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이 팜플로나에 남아있는 인상적인 건축물과 예술의 기반을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다.
팜플로나에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이 도시의 수호성인인 산 페르민 축제(Fiestas de San Fermín)가 매년 7월 6일부터 14일까지 열린다. 필자는 이 축제에 참석할 생각에 파리에서 좀 더 일찍 출발하고자 했으나 동반자의 고집으로 포기했다. 하긴 그 시기에 팜플로나는 그야말로 야단법석(惹端法席)이라서 숙소도 잡기 힘들고 가격도 올라간다. 소몰이 즉 엔시에로(Encierros) 축제가 끝나고, 모여든 세계 각지의 관광객과 주민들이 뒤섞여 밤새 퍼마시고 광란의 밤을 보내고 나면 구시가지의 거리는 온통 지린내가 진동한다고 한다. 길바닥에서 널브러져 자는 사람, 소리 지르는 사람 정말 엉망진창의 축제 뒤끝이란다.
18세기 후반의 건축물인 빰쁠로나 시청은 1755년에 시작하여 1760년에 완성된 바로크식 파사드(Fachada)를 간직하고 있다. 매년 7월 6일 시청의 발코니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산 페르민 축제의 시작을 알리게 된다. 시청 내부에 있는 문틀 위의 상인방(上引枋)은 바로크 양식인데 ‘이 문은 모든 이를 위해 열려 있으며 마음은 더 많이 열려 있다’라는 나바라의 까를로스 3세 아름다운 문구가 새겨져 있다.
밤이면 밤새 술 마시고 축제에 참석한 젊은이들이 철야로 거리에서 용변을 보기 때문에 다음날 아침에 지린내가 진동할 정도다. 스페인 사람들 특유의 열정과 왁자지껄한 소란스러움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다. 세계 각지에서 수만 명이 이 축제를 찾고 있으며, 특히 헤밍웨이(Ernest Hemingway)가 쓴 장편소설 <해는 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의 줄거리에 등장하여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행사의 내용은 로켓 폭죽 발사인 추피나소(Chupinazo), 거인 퍼레이드(Gigantes y Cabezudos), 거리 소몰이인 엔시에로(Encierro), 전통춤 행진인 리아우 리아우(Riau-Riau), 전통 놀이 등이 있다. 하지만 소몰이 경기는 팜플로나만 하는 게 아니다. 나바라 주에 속하는 다른 도시나 마을에서도 날자를 다르게 하여 엔시에로가 열린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운이 좋으면 조선 과객 금삿갓도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