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무궁화 가로수가 핀 비야투에르따 마을(7/21)

금삿갓의 산티아고 순례길-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by 금삿갓

어릴 때 친구들과 숨바꼭질 즉 술래잡기 놀이를 할 때, 술래는 눈을 감고 열까지 세어야 한다. 그때 열을 세는 대신에 하는 말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였다. 글자 수가 딱 열 개였으니, 단조로운 숫자를 세기 보다 글자 수 도 훨씬 적은 그 말이 용한 것이다. 근래에 와서는 세계적인 히트를 친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도 나와서 세계인들이알고 있다. 무궁화는 우리의 국화(國花)이니 모두가 사랑한다. 7~9월에 끊임없이 피고 지고 한다. 이역만리 스페인의 비야뚜에르따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하여 반가운 무궁화를 보았다. 한두 송이를 본 게 아니라 이 마을의 가로수가 무궁화로 심어져 있었다. 순간 음악가 안익태 선생은 마요르카 섬에 살았을 텐데, 언제 이 스페인 북쪽마을에 와서 무궁화를 알렸나 하는 국뽕 생각을 하게 했다.

중세시대 로마인들의 주거지이기도 했던 비야뚜레르따는 성직자들의 거주지이기도 했다. 비야뚜에르따가 주요한 거주지였던 이유는 이란수 강이 주는 풍요로운 자원과 지리적인 위치 때문이었다. 현재도 비야뚜에르따의 주민들은 이란수 강의 양 옆에 나뉘어 살고 있다. 로마인들이 구불거리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비야또르따(Vilatorta)라고 부른 데에서 마을의 어원이 생겼다고 한다.

지리적으로 비야뚜에르따의 밭은 매우 풍성해서 이 지역에서 생산된 재료로 만든 음식과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든 케이크와 후식을 맛볼 수 있다. 또한 투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비야뚜에르따 에스떼야 출신 투우사인 빠블로 에르모소 데 멘도사의 황소 목장을 둘러볼 수 있다.

옛날 중세시대의 산티아고 순례길은 비야뚜에르따에서, 지금은 폐허만 남아 있는 사라뿌스 수도원으로, 그리고 다시 이라체 수도원으로 에스떼야를 거치지 않고 곧장 이어져 있었단다. 1090년에 산초 라미레스가 몰려드는 야고보 길의 도보순례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새로 에스떼야 마을을 세우면서부터 까미노 길이 바뀌었단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비야뚜에르따는 예전의 까미노 길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마을에는 성모승천 성당 (Iglesia de La Asuncion)이 있는데, 13세기 초반에 지어진 후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다. 1200년에 지어진 아름다운 종탑도 있으며, 성당의 내부는 고딕 양식으로 장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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