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산솔을 지나 비아나로(7/22)

금삿갓의 산티아고 순례길-예쁜 캐나다 아가씨와 격려하며

by 금삿갓

로스 아르코스에서 산솔(Sansol) 마을 까지는 6.8Km이며, 거의 평지 수준의 평원을 걷는 구간이다. 산솔까지의 길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는 길고 긴 포도밭이 계속 이어진다. 산솔 마을과 여정의 중간에 만나게 되는 마을인 또레스 델 리오(Torres del Rio)에도 알베르게들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배낭을 던지고 눌러앉고 싶은 유혹을 떨쳐버리고 계속 걷기로 한다. 산솔부터 비아나(Viana)까지 높지 않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연속으로 이어져 있다. 또레스 델 리오 마을을 지나면 비아나까지 음수대를 만나기 쉽지 않다. 중세에서부터 이 길을 “다리를 부러뜨리는 길”이라고 불렀단다. 이 구간은 너덜지대의 자갈과 먼지투성이의 좁은 오솔길로 이어지면서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된다. 그러다가 뽀요의 암자(Ermita de la Virgen del Poyo)라고 불리는 16세기 고딕 양식의 작은 성당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첫 번째 오르막의 정상에 다다른다. 다시 협곡과 언덕 사이를 반복해서 지나면 풍경이 다채롭게 변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멀리 보이는 비아나와 에브로 계곡을 내려다보면서 걸음을 재촉하다 보면 내리막길을 통해 발 끝의 고통이 점차 밀려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11킬로미터 정도의 여정은 언덕에 올라서자마자 보이는 체사르 보르지아의 도시인 비아나가 손에 잡힐 듯 보이면서 순례자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기도 한다.

비아나에 도착한 것이 오후 3시경이었다. 가장 뜨거운 태양을 받으면서 오늘 하루 31Km를 걸었다. 전신이 녹초가 되는 것 같았지만 알베르게를 잡아서 여장을 풀고 나니 다시 살 것 같았다. 겉 보기엔 별 것 아닌 마을인 줄 알았는데 마을을 둘러보니 그게 아니었다. 제법 규모도 있고, 마치 토요일인데 그날이 이 마을의 축제일이란다. 그래서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아서 식료품을 살 수도 없다.

이 마을에 있는 산따 마리아 성당(Iglesia de Santa Maria)이다. 12세기에 템플 기사단이 예루살렘의 성묘 성당과 유사하게 만든 팔각형 평면의 성당이다. 스페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걸작으로 나바라의 후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특징이 잘 나타나며, 팔각형 평면에 건물 동쪽에는 단순한 반원형 소성당, 서쪽에는 원통형 탑이 있다. 8 각형 평면은 템플 기사단의 특징이며, 성묘 성당의 쿠폴라 정탑은 ‘죽은 이들의 정탑’이라고 불렸단다. 그 이유는 이 탑이 길을 잃은 순례자들을 이끄는 역할을 했고, 순례자가 죽으면 불을 켜서 알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앙엔 별 무늬가 있는 쿠폴라가 있는데 코르도바의 메스끼따 이슬람식 건물과 닮았다. 성당 안의 공간은 두 층으로 나뉘어 있는데, 벽에는 거대한 사각형 기둥이 붙어있고, 위층에는 로마네스크 양식 창문이 나있으며, 주두에는 아름다운 조각이 있다. 외부는 3층으로 나뉜 구조이며 3층엔 각 면에 창문이 나 있다. 성당 내부에는 쇠로 된 솥이 있으며, 못 네 개에 관을 쓰고 있는 그리스도의 로마네스크 양식 십자가 상은 매우 보존이 잘 되어 있다. 수피교도의 종교 건축과 무데하르 양식과 비잔틴 양식에 영향받은 이 성당은 19세기까지 여러 기사단의 의식을 치르는 비밀스러운 장소였다. 에우나떼 성당처럼 이 성당도 순례자의 묘지 역할을 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주인공인 차사레 보르지아(Cesar Borgia)의 무덤이 이 마을 비아나의 산따 마리아 성당의 반석 아래에 있다. 그는 바로 교황 알렉산드르 6세의 사생아들인 스페인어로 께사르 보르지아(Cesar Borgia)이다. 그는 추기경 로드리고 보르자(훗날의 교황 알렉산드르 6세)와 그의 애인 반노차 카타네이 사이에서 1474~1476년 경에 로마에서 태어났다. 그는 16세에 빰쁠로나의 주교, 19세에는 추기경, 22세에 가톨릭 군대의 장군이 되었고, 24세엔 나바라 왕의 처남이 되었다. 그는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쓸 때 영감을 준 사람으로 군주론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나바라의 총수'라고 불렸던 보르지아는 1507년 레린백작과의 비아나전투에서 사망하여 비아나의 산따 마리아 성당에 묻혔다가 죄인의 시신을 거기에 둘 수 없다는 여론에 밀려 시청 옆에 묻혔다. 그 후 세월이 흘러 2007년 스페인의 대주교가 그의 무덤을 다시 성당으로 옮겼다.

또레스 델 리오(Torres del Rio) 마을의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여기서 캐나다에서 온 처녀를 만나 이야기하고 서로 격려했다. 아주 밝고 쾌활한 성격의 젊은이였다. 옷 차림새나 행동거지도 아주 반듯하게 나름 기품이 있는 집안의 자식 같아 보였다. 오랜만에 서양 젊은이 같지 않은 젊은이를 보고 내심 놀랐다.

<금삿갓 산티아고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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