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나에서 로그로뇨까지는 약 12Km 남짓하다. 약간의 내리막 길이고 특별한 어려움이 없는 평이한 길이다. 비아나의 오래된 성채에서 까미노 길 표시를 따라서 마을로 처음 들어왔던 입구와 반대편으로 여기를 빠져나가면 된다. 자동차 전용도로를 등지고 걸으면 로그로뇨로 향하는 붉은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로 접어들게 된다. 주변에 비아나를 에워싸고 있는 포도 과수원이 많이 있다. 학교와 성벽 사이의 N-111 고속도로를 건너면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이 약 2킬로미터 정도 이어진다. 그곳에 '성모의 동굴'이라는 뜻의 비르헨 데 라스 꾸에바스(Virgen de las Cuevas)라는 수도원이 기다린다. 담벼락에 아름다운 벽화가 그려져 있어서 피곤한 순례객의 눈길을 즐겁게 한다. 옛날부터 많은 순례자들은 이곳에서 몸과 마음을 추슬렀다고 한다. 좀 더 내려가다가 보면 왼쪽으로 까냐스 연못(Laguna de las Cañas)를 지나쳐 울창한 소나무 숲을 통과하면 또 고속도로를 건너야 한다.
떠나온 비아나 마을 위로 아침해가 불게 떠오르고 있다. 어젯밤의 광란의 축제는 태양빛에 바래서 또 다른 야사와 전설을 만들면서 각자 역사의 뒷장을 장식하고 멀어져 가는 것이다. 도로변의 벽에 부엔 카미노라고 조개껍질 싸인을 멋지게 그려 놓은 게 보였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걸으면 덜 피곤하다.
스페인의 뜨거운 태양아래서 포도알은 알알이 영글어가고, 이들은 다시 몸을 녹여서 누군가의 입을 즐겁게 해주는 천사의 물방울 즉 비노(Vino : Wine)가 되는 것이다. 와인을 만드는 포도는 우리나라에서 과일로 먹는 포도와 품종이 다르기 때문에 잘 익은 포도를 따서 맛을 보아도 우리 토양에서 자나고 익은 그 포도의 맛이 아니다. 거봉포도아 샤인 머스캣(비록 일본종자이지만) 같은 포도의 감칠맛은 전혀 기대할 수 없다. 순례길 옆으로 그렇게 많은 포도밭이 있고 포도가 까맣게 익어가도 어느 누구 한 명의 순례객도 포도송이에 손을 대지 않는다.
수도원 옆으로 쉼터가 잘 가꾸어져 있다. 여기서 쉬면서 갈증도 해소하고 힘도 재충전해 본다. 여기서 열심히 동영상을 찍는 중국 본토 출신의 순례객을 만났다. 대만 출신 순례객은 몇 명 만났는데 중국 본토 출신은 이번이 처음이다. 광동성 제일중학교의 교사인데, 동영상을 열심히 촬영하고 있었다. 유튜브를 하느냐고 물어봤더니 중국은 유튜브가 통제되기 때문에 그냥 개인 소장용으로 촬영한단다. 수년 전에 일 년간 배운 짧은 중국어 실력으로 몇 마디 주고받았더니 너무 좋아한다. 기분이 좋아지는 바람에 아예 등려군의 첨밀밀(甛蜜蜜) 한 곡을 중국어 버전으로 냅다 뽑았더니 깜짝 놀라면서 좋아한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외국인이 우리말로 우리의 유행가를 부르면 신기하잖아. 그녀와 같이 야래향(夜來香) 한 곡을 앙코르로 더 부르고 헤어졌다. 광동에 오면 꼭 연락하라면서 자기의 명함을 손에 쥐어준다. 광동에는 전에 몇 차례 다녀오기도 했지만 언제 다시 또 광동이나 심천에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라오스 스훙페이 자이지엔(老師 時鴻飛 再見)!!
고속도로를 넘어서 로그로뇨로 가는 길옆에 소나무 숲이 우거진 곳이 있다. 이곳에 먼저 간 순례객이 묻혀있다. 순례길을 걷다가 하늘의 부름은 받은 사람들의 무덤이나 이들을 기리는 십자가가 길섭에 가끔 보인다. 병든 몸을 이끌고 순례길에 들었던 사람도 있겠지만 멀쩡한 육신으로 왔다가 병이 얻거나 다른 연유로 천국으로 먼저 간 사람들을 기리는 것이다. 순례길을 가가다 이런 무덤이나 기념물을 보면 그냥 지나치기가 거시기해서 늘 잠깐이라도 묵념을 하고 사진 한 컷이라도 남기고 싶었다. 이곳에는 누군가가 아주 예쁜 꽃다발을 가져다 장식을 해주었다. 오래된 꽃다발은 벌써 변색이 되었고, 십자가에 묵주도 걸려있다. 보는 사람의 마음이 숙연해진다. 제대로 된 십자가를 못 세우면 돌무더기로라도 십자가를 만들어서 기념하고 있다.
로그로뇨 시내에 조금 못 미치는 언덕배기의 끝자락 마을어귀에 기념품을 파는 간간한 쉼터가 있다. 마음씨 넉넉한 여인이 웃으면서 기념품 사지 않아도 세요(스탬프)를 찍어 가란다. 돈이 궁해서 가게를 열고 있는 사람 같지는 않고, 본인의 취미와 사람 만나는 재미 때문에 느긋하게 순례객을 응대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