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조선 과객 금삿갓이 사회 초년병이었을 즈음 입이 정말 큰 배우 소피아 로렌이 주연으로 나오는 이태리 영화 <해바라기>가 있었다. 영화의 대강 줄거리는 이렇다. 2차 세계대전 무렵이 배경이다. 나폴리 시골에 살던 조반나(소피아 로렌 분)는 밀라노에서 온 안토니오(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분)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당시 결혼을 하면 일정 기간 입대를 유예해 주는데,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안토니오와 조반나는 결혼을 한다. 하지만 유예기간 동안 전쟁이 끝나지 않자 남편 안토니오는 곧 우크라이나의 전선으로 떠나게 된다. 전쟁이 끝났지만 남편은 돌아오지 않는다. 조반나는 남편이 살아있다고 확신하고 그를 찾아 러시아의 마을과 공동묘지 구석구석을 헤맨다. 그녀가 남편을 찾아가는 그길에 어마어마하게 넓은 해바라기 농장이 펼쳐져 있고, 활짝 핀 해바라기 꽃이 평원을 덮고 있다. 이곳이 바로 지금 러시아와 전쟁을 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곡창지대일 것이다.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살아있는 남편을 찾아낸다. 러시아의 추위와 눈밭에서 남편은 부상을 입어 부대에서 낙오되어 헤매다가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는 러시아 여인 마샤를 만나 두 딸을 둔 아버지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녀는 말도 못 하고 눈물을 머금고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와 나이 든 공장 일꾼 에토와 결혼한다. 그 후 아들도 한 명 낳고 그럭저럭 살아가던 조반나에게 기억을 되찾은 안토니오가 다시 나타나서 같이 떠나자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아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할 거냐며 따라나서지 못한다.
영화를 볼 때 조반나가 러시아로 남편을 찾아갔을 때 광활한 해바라기 밭이 나온다. 그 당시에는 해외여행이 아직 자유화되지 않아 외국의 풍경을 많이 접하지 못한 상황이라서,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 농장을 보고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영화의 내용에도 조반나를 안내하는 현지인이 전쟁 통에 죽은 신원을 알 수 없는 군인이나 민간인들의 시체를 넓은 벌판에 파묻게 되었고, 그곳이 해바라기 밭이 되어서 넓은 밭이 되었다고 설명해 준다. 그 말을 듣는 조반나의 심정은 어땠을까? 이곳 스페인에 와서 광활한 해바라기 밭을 보니 그때 그 영화 <해바라기>가 계속 기억의 저편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곤 했다. 전쟁의 폐해, 전쟁으로 망가진 삶에 대한 아픔도 묻어났다.
해바라기는 영어로는 Sunflower이고 한자로는 향일화(向日花)이다. 햇빛을 따라 동서로 움직이면서 자라다가 꽃이 피고 줄기가 굵어져서 몸이 굳어지면 해를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이곳 해바라기 농장들을 보면 꽃이 핀 해바라기들은 모두 한 방향으로 일제히 피어있다. 꽃이 거의 남쪽 방향으로 고정되어 있다. 아마 태양이 동쪽에서 떠서 남쪽을 지나 서쪽으로 넘어가니까 가장 오랫동안 햇빛을 볼 수 있는 방향이 남쪽이라서 그런 모양이다. 해바라기는 원래 아메리카가 원산지이고 인디언들이 주로 재배했다. 스페인이 중남미를 지배할 때인 1506년에 해바라기 씨를 처음으로 도입하여 재배하였고, 이것이 유럽에 퍼져서 러시아까지 보급되었다. 이렇게 큰 해바라기는 러시아의 육종학 덕분에 개발하였고, 소련의 대숙청 작업이 있을 때 이를 피해 미국으로 탈출한 농부들의 손에 의해 개량된 해바라기가 아메리카로 귀향하게 되었다. 스페인을 한해에 해바라기를 95만 톤씩 생산을 한다니 해바라기 농장의 넓이를 짐작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