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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Nov 29. 2023

29> 新晴(신청) / 새로 갬

漢詩工夫 (231129)

新晴(신청) / 새로 갬

- 令壽閤(령수합) 서씨(徐氏)


村鳩處處喚新晴

촌구처처환신청

○○●●●○◎

마을 비둘기 곳곳에서 새로 개었다고 지저귀고,


雨後淸溪入戶鳴

우후청계입호명

●●○○●●◎

비 갠 뒤 맑은 개울소리 집안까지 들려오네.


野色林容碧如水

야색임용벽여수

●●○○●○●

들 색과 숲 모습이 물빛처럼 푸르고,


落霞猶自暮山橫

낙하유자모산횡

●○○●●○◎

지는 노을은 오히려 저문 산에 절로 비껴있네.

이 시는 영수각(令壽閣)이라고도 불리는 영수합(令壽閤) 서씨(徐氏)가 초여름의 날씨에 비가 갠 후의 풍정과 소회(所懷)를 읊은 것이다. 그녀는 어려서 출가하기 전에 조모가 “여자가 글을 잘하면 단명한다.”는 말을 듣고도, 남자 형제들이 글 읽는 소리를 듣고 문리(文理)를 깨쳐 모든 경서에 능하게 되었다. 글만 잘하는 게 아니라 현모양처(賢母良妻)로서 세 아들을 잘 양육하여 조선의 문장가로 키웠다. 192수의 시를 남겼고, 영수합고(令壽閤稿)에 실려 있다.

이 시의 기구(起句) 2번 자인 구(鳩) 자가 평성(平聲)이라서 평기식(平起式) 칠언절구(七言絶句)이다. 압운(押韻)은 ◎표기한 청(晴), 명(鳴), 횡(橫)이고 경운목(庚韻目)이다. 전구(轉句)는 이사부동(二四不同)이 되고, 이륙(二六)이 부동(不同)하여 시격(詩格)에 어긋난다. 나머지 각 구(句)의 이사부동(二四不同)·이륙동(二六同) 조건은 잘 충족하였다. 옛날 시(詩)의 대가(大家)들은 가끔 시격에 맞지 않은 즉 파격(破格)을 하여 시를 짓기도 하였다. 백일장이나 과거시험 같은 전형(銓衡) 절차가 없는 시회(詩會)나 스스로 소회(所懷)를 표현할 때 가끔 심심파적(破敵)으로 파격(破格) 한 것으로 보인다. 벽여수(碧如水) 즉 ‘물처럼 푸르다’를 여벽수(如璧水) 즉 ‘푸른 물과 같다’로 바꾸면 시격에 맞지만 그 뜻의 정취가 짓는 사람과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는 게 시(詩)이다. 전구(轉句)의 5번 벽(璧), 6번 여(如), 결구(結句) 1번 락(落) 자의 평측(平仄)을 변형하였다. 어려운 시어는 다음과 같다. 처처(處處)는 곳곳이다. 입호(入戶)는 사립문 안으로 들오는 것이니 집안으로 들어온다는 것이다. 산횡(山橫)은 산에 가로질러 걸쳐 있는 모습이다.

그녀는 홍인모와 혼인하기 전에 경서를 완전히 터득했다. 그러나 부덕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 때문에 한 번도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서씨는 홍인모와 혼인한 뒤에도 책을 읽기는 했으나, 여자로서의 본분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아들을 낳은 뒤에는 양육에 정성을 기울였다. 아이들이 잘못하면 그 잘못을 인정할 때까지 매를 때리기도 했다. 아들이 울음을 터트리면 무릎에 앉혀놓고 글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녀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으나, 아녀자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했다. 홍석주는 사람들 몰래 어머니에게 책을 가져다주고는 했다. 남편 홍인모도 그녀가 학문이 높다는 것을 알고는 집 안에서 책을 읽고 글을 짓는 것을 허락했으나, 여전히 그녀는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았다. 이에 홍인모는 자식들에게 어머니가 시를 읊으면 몰래 베껴놓으라고 지시했고, 자식들은 수백 편이나 되는 시를 기록했다. 홍인모의 문집 ≪족수당집 足睡堂集≫ 제6권에 부록으로 서씨의 문집인 ≪영수합고 令壽閤稿≫가 실려 있다. 시가 모두 192편이다. 영수합의 시는 두시(杜詩) 차운(次韻) 등 기타 차운시가 많고 당시풍(唐詩風) 취향이 엿보인다. 정경부인(貞敬夫人)의 칭호를 받았다.

★ 영수합(令壽閤) 서씨(徐氏, 1753~1823) : 감사(監司) 서형수(徐逈修, 1725-1778)의 딸로 1753년에 출생함. 승지(承旨) 홍인모(洪仁謨, 1755-1812)의 아내임. 당대의 문장가로 이름을 떨친 석주(奭周)·길주(吉周)·현주(顯周) 등 3형제와 규수시인(閨秀詩人) 원주(原周)를 낳았음. 1823년에 별세함. 저서 『영수합고(令壽閤稿)』에는 36편의 작품이 전함. 경사(經史)에 통달하고 시문(詩文)을 잘 지었는데 그의 아들 연천(淵泉) 홍석주(洪奭周), 항해(沆瀣) 홍길주(洪吉周), 영명(永明) 홍현주(洪顯周)와 딸인 유한당(幽閑堂) 홍씨(洪氏) 모두 당대의 뛰어난 문장가였음. 조선조 여류시인의 대다수가 불운했던 삶을 그들의 문학에 반영되었던 것에 비하면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서 사대부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유가적 삶의 지향을 보여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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