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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Feb 19. 2024

36> 送別(송별)

漢詩工夫 (240216)

36> 送別(송별)

 - 王維(왕유)


送君南浦淚如絲

송군남포루여사

●○○●●○◎

남포에서 그대를 보내고 실 같은 눈물이 나네.


君向東州使我悲

군향동주사아비

○●○○●●◎

동주로 향하는 그대가 나를 슬프게 하네.


爲報故人憔悴盡

위보고인초췌진

●●●○○●●

벗들에게 소식 전해 주오, 초췌함이 다해


如今不似洛陽時

여금불사낙양시

○○●●●○◎

이제는 낙양의 그때와 같지 않다고.

送君南浦(송군남포)는 用楚辭及江淹別賦語(용초사급강암별부어)라. 豫章記載(예장기재)에 南浦亭(남포정)이 在廣潤門外(재광윤문외)하여, 往來艤舟之所(왕래의주지소)니 唐已有之(당이유지)라. 此言友之所向而承明淚如絲之故也(차언우지소향이승명루여사지고야)라. 託言傳語以報也(탁언전어이보야)라. 故人凋謝(고인조사)가 此亦足悲者(차역족비자)라. 四句(4구)는 言自傷憔悴(언자상초췌)하여 不似洛陽全盛之時(불사낙양전성지시)하니 旣衰老而思歸(기쇠노이사귀)하고 又含悲而送別(우함비이송별)하니 眞有不禁揮涙者(진유불금휘루자)라. 漢書地理志(한서지리지)에 河南郡(하남군)과 故秦三川郡(고진삼천군)이오. 漢髙祖(한고조)가 更名雒陽(경명낙양)이라.

送君南浦(송군남포)는 楚辭(초사)와 江淹別賦(강엄별부)에 용어로 사용되었다, 豫章記(예장기)에 “南浦亭(남포정)이 광윤문 밖에 있어 왕래하고 배를 대는 장소였다,”라 실려 있으니 당나라 때 벌써 그것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친구가 향하는 바에 이어서 눈물이 마치 실같이 흐르는 까닭을 밝힌 말이다. (‘爲報’라는 말은) 전하는 말로 알려주라고 부탁한 말이다. 친구의 凋謝(조사)함이 이것 또한 슬픈 것으로 족하다. 4구는 스스로 초췌하고 상하여 낙양의 전성시대와 같지 않아 이미 노쇠하여 돌아가기를 생각하고, 또 슬픔을 머금고 송별을 하니 참으로 눈물 뿌림을 금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말이다. <한서지리지>에 하남군과 옛 진나라 삼천군이라, 한고조 유방이 이름을 낙양으로 고쳤다.

南浦(남포) : 남창의 광윤문 밖에 남포정이 있던 곳.

東周(동주) : 주나라가 견융의 침입으로 지금의 낙양으로 도읍을 옮긴 뒤의 국호. 여기서는 낙양을 뜻함.

憔悴(초췌) : 근심이나 고생으로 얼굴과 몸이 여위고 파리하다.

凋謝(조사) : 초목의 잎이 시들어 떨어짐. 차차 쇠하여 보잘것 없이 됨.


王維(왕유 699 ~ 761) : 중국 당나라의 화가이며 시인. 유마힐(維摩詰)에 연유해서 자를 마힐이라 했다. 일찍이 시문으로 유명했으나 음률에도 자세하고 비파도 잘하는 재주 있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여러 개의 관직을 역임 했으나 안록산의 난 때 체포되어 어려운 생활 후 숙종을 섬겨 상서우승에까지 이르렀다. 젊은 시절부터 장안에서 가까운 남전에서 망천장을 경영하여 도심지를 피해 불교에 경도하는 생활을 했다. 그래서 후세에 시중화(詩中畫), 화중시(畫中詩)의 시조로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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