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금운사 Mar 30. 2024

303.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8/16)

그리움을 찾으랴?

땅끝 마을에 당도하여 망망한 대서양을 바라본다. 태고의 침묵을 안고 있는 바위에 올라서니 말없는 바위는 온몸으로 물보라를 뒤집어쓰면서도 그간의 사연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이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을 너는 깰 수 있단 말이냐? 그리움을 쫓아서 온 것도 아닌데, 새로운 만남을 바라고 온 것은 더욱 아닌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말없는 바위가 야속하여 쉼 없이 밀려와 산산이 부서지며 하얀 물보라와 물거품만 남기고 스러지는걸. 그렇게 요동치는 저 넓은 바다를 향해 한줄기 긴 눈길을 주면서 서 있는 등대는 그 사연을 알 것인가. 바람을 타고 솟구치는 갈매기는 자기는 모르니 빼달라는 몸짓이다. 800Km를 걸어와서 하루를 쉬고 다시 찾은 묵시아의 땅끝은 2천 년 전 성 야고보가 복음을 전하려고 발품을 팔던 때와 무엇이 변했는가. 사람은 가고 물과 바위는 남아 믄 세월의 넋두리를 나누면 또 새로운 사람은 오고 갈 테지. 오늘 이 땅끝에서 대서양을 향해 마음속의 모든 응어리를 퍼내서 밀려오고 밀려가는 물결에 실어 보내고 나면 다시는 그런 응어리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상촌(象村) 신흠(申欽)의 시에 <月到千虧餘本質(월도천휴여본질) / 달은 천 번 이지러져도 본질이 남아있고>라는 구절이 있다. 조선 과객 금삿갓은 이 구절에 대구(對句)를 달아 오늘의 느낌을 전하고 싶다. <波濤萬打又新來(파도만타우신래) / 파도는 만번을 쳐도 또 새로이 밀려온다.>

<금삿갓 산티아고 순례길>


매거진의 이전글 302. 묵시아 항구 모습(8/1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