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鵲印(작인) : 벼슬길에 오를 길조. 公侯(공후)의 지위. 漢(한) 나라 장호(張顥)가 어느 날 비가 개인 뒤 산작(山鵲) 같은 새가 날아와 사람을 시켜 잡아오게 했더니 그 새가 돌로 변하였다. 까치가 변하여 된 돌을 얻어 깨트리니 그 속에서 忠孝侯印(충효후인)이라 새긴 金印(금인)이 나왔는데 작인(鵲印)이 삼산(三山)의 밤 달같이 빛났다고 한다. 장호는 후에 벼슬이 太尉(태위)에 이르렀다 고 한다.
이 시는 개선했을 때 쌍쌍이 울리는 피리 소리와 첩첩이 들리는 북소리가 군대의 대오 가운데에 서로 호응하여 번국을 격파하고, 평정함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일이다. 장부의 鵲印(작인)은 변방의 달빛아래 흔들리고, 대장의 龍旂(용기)는 해운의 끝을 이끄니 승전의 기세를 볼만하다.
첫 구절은 피리와 북소리가 行伍(행오) 간에 첩첩하다는 말을 하였고, 둘째 구는 번국을 쳐서 평정한 것이 예로부터 듣지 못했다는 말을 하였고, 셋째 구는 작인이 변방 달빛에 흔들린다는 말을 하였고, 용기가 해운을 이끈다는 말을 하였으니 옛 시의 ‘북소리 연연하고, 백기가 선명하다.’라는 구절을 여기에서 볼 수 있도다. 그 군용의 한가로움과 노래하고 피리 부는 청화한 소리가 군사를 이끌고 돌아오는 기상이로다.
잠삼(岑參, 715년 ∼ 770년) : 당나라의 시인. 강릉[江陵, 지금의 허베이성(湖北省) 장링현(江陵縣)] 사람으로, 선조의 고향이 남양[南陽, 지금의 허난성(河南省) 난양시(南陽市)]이다. 본래 명망 있는 관료 집안 출신이었으나 부친 대에 가세가 몰락했다. 따라서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 그의 평생의 염원이었으며, 이를 위해 두 차례에 걸쳐 5년여간 안서(安西)와 북정(北庭) 등의 서부 변경 지역에서 종군하기도 했다. 변경에 있을 때 그곳의 황량한 풍경과 혹독한 기후 환경, 전쟁의 참혹한 모습과 병사들의 고통, 소수민족들의 풍습과 문물 등을 많은 시로 남겨 중국 문학사상 ‘변새시(邊塞詩)’라는 새로운 시의 영역을 확립했으며, 고적(高適)과 더불어 이른바 당대(唐代) ‘변새시파(邊塞詩派)’의 가장 대표적인 시인으로 추앙받았다. 장편 가행체(歌行體)에 특히 뛰어났으며 7언 절구에서도 좋은 작품을 다수 남기고 있다. 시집으로 ≪잠가주시(岑嘉州詩)≫ 8권이 있으며, 현재 400여 수의 작품이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