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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May 01. 2024

73> 楓橋夜泊(풍교야박) / 풍교에 밤배를 대고

漢詩工夫(240425)

楓橋夜泊(풍교야박) / 풍교에 밤배를 대고

 - 장계(張繼)


月落烏啼霜滿天

월락오제상만천

●●○○○●◎

달 지고 까마귀 울고 하늘엔 서리 가득한데


江楓漁火對愁眠

강풍어화대수면

○○○●●○◎

강가의 단풍과 고깃배의 등불로 시름 속에 자려니


姑蘇城外寒山寺

고소성외한산사

○○○●○○●

고소성 밖의 한산사에서


夜半鐘聲到客船

야반종성도객선

●●○○●●◎

한밤중 종소리가 객선까지 들려오네.

* 楓橋(풍교) : 江蘇省 蘇州市(강소성 소주시) 서남 교외의 다리 이름 또는 지명.

* 夜泊(야박) : ① 밤중에 배를 碇泊(정박)시킴. ② 밤에 배에서 지냄. ③ 밤에 外泊(외박)함. 여기서는 ②의 뜻임.

* 漁火(어화) : 고기잡이배에서 켜는 등불이나 횃불.

* 姑蘇城(고소성) : 소주(蘇州) 姑蘇臺(고소대)의 성. 고소대는 ‘춘추시대 吳王 夫差(오왕 부차)가 西施(서시)를 위해 쌓은 대’로 높이 3백 길임. 부차가 越王 句踐(월왕 구천)을 쳐서 항복받으니, 구천은 미인 서시를 바치며 퇴각하는 길을 열어 달라 하여 허락받았으며, 부차는 서시를 총애하여 향락에 빠지게 되었다 함.

* 寒山寺(한산사) : 소주(蘇州)의 楓橋鎭(풍교진)에 있는 절. 南朝(남조) 梁(양) 나라 시조 武帝(무제)의 天鑑年間(천감연간 502~519)에 세웠고, 고승 寒山(한산)이 머문 적이 있다 함.

* 夜半(야반) : 한밤중.

此(차)는 泊船時(박선시)에 是十三四夜之間(시십삼사야지간)이니 月落時在五更之末(월락시재오경지말)이라. 日影墜下(일영추하)에 驚烏夜啼(경오야제)하니 亦將曉之候也(역장효지후야)라. 五更霜落(오경상락)하니 滿天者(만천자)는 尙未落也(상미락야)니 非四更時乎(비사경시호)아. 江楓(강풍)은 泊船之所(박선지소)에 江岸有楓(강안유풍)이라. 漁火(어화)는 漁火射在楓葉上(어화사재풍엽상)하야 紅光(홍광)이 相暎而易見(상영이이견)이라. 對愁眠(대수면)은 此時(차시)에 張繼旅中(장계여중)에 不能睡着而江楓所暎之漁火(불능수착이강풍소영지어화)가 射到窓內(사도창내)하야 正與愁眠相對(정여수면상대)라.

이 시는 배가 정박했을 때니 13~14일 밤이다. 달이 떨어질 때면 오경이 끝날 때일 것이다. 해 그림자 떨어지고, 놀란 까마귀 밤에 우니 역시 날이 밝으려는 때이다. 오경에 서리가 내리니 하늘에 가득하다는 것은 아직 내리지 않은 것이니 4경쯤이 아니겠는가? 강풍은 배가 정박한 곳의 강 언덕에 단풍나무가 있다. 어화란 고깃배의 불빛이 비추어 단풍잎의 붉은빛이 서로 비추어 쉽게 보인다는 것이다. 대수면은 이때에 장계가 여행 중이어서 잠들 수가 없어서 강가 단풍나무에 비치는 고깃배 불빛이 창 안까지 이르러 바로 수심 속에 잠자려는데 서로 마주하는 것이다.

姑蘇城外(고소성외)는 特將實落地名(특장실락지명)하야 呌出扣任楓橋(규출구임풍교)라. 寒山寺(한산사)는 在西去蘇城十里(재서거소성십리)하니 必用寺者(필용사자)는 爲鍾聲故也(위종성고야)라. 夜半(야반)은 此時(차시)에 實不是夜半(실불시야반)이라. 張繼愁眠時(장계수면시)에 心神(심신)이 恍惚(황홀)하야 疑其是半夜也(의기시반야야)라. 鍾聲(종성)은 聲從寒山寺來(성종한산사래)하니 天已將曉而張繼猛然醒覺(천이장효이장계맹연성각)하야 猶疑爲夜半也(유의위야반야)라. 到客船(도객선)은 鍾催曉(종최효)에 旣到客船(기도객선)하야 天漸曉矣(천점효의)라. 卽張繼夜泊之舟(즉장계야박지주)가 亦且解纜開去(역차해람개거)할새 一夜愁眠(일야수민)이 至此欲睡(지차욕수)호대 亦不能睡(역불능수)하야 不免抱怨(불면포원)하야 五更之鍾(오경지종)이 爲夜半而尙恨其早也(위야반상한기조야)니 其神情(기신정)이 全在夜半上(전재야반상)이라.

고소성외는 다만 실제 배에서 내리려는 지명인데, 임의로 풍교라고 부른 것이다. 한산사는 고소성에서 서쪽으로 십리 가량 떨어져 있는데, 꼭 절을 쓴 것은 종소리 때문이었다. 밤중이란 말은 이때는 실로 한밤중이 아니었지만 장계가 근심하며 잠들 적에 심신이 황홀하여, 한밤중으로 의심한 것이다. 종소리는 소리가 한산에서 들려오니 날이 이미 새벽이 되어 장계가 돌연히 잠을 깨어 오히려 의심하여 밤중으로 여긴 것이다. 객선에 이르렀다는 말은 종소리가 새벽을 재촉함에 이미 객선까지 들려와 날이 점점 밝아지니, 즉 장계가 밤에 정박해 둔 배가 또한 닻줄을 풀고 떠나려 할 적에 하룻밤의 근심 속의 잠자리가 이에 이르러 자려고 하였지만 품은 원한을 벗어나지 못하여 오경의 종소리를 한밤중으로 여겨 오히려 그 빠름을 한탄하였으니 그의 정신이 온전히 밤중에 있은 것이다.

* 張繼(장계) : 당나라 양주(襄州) 사람. 자는 의손(懿孫)이다. 천보(天寶) 12년(753) 진사 시험에 합격했다. 안사(安史)의 난이 일어나자 오월(吳越) 지방으로 피난을 갔다. 대력(大曆) 초에 입경(入京)하여 시어(侍御)를 지냈다. 나중에 검교사부원외랑(檢校祠部員外郞)으로 전운판관(轉運判官)에 충당되어 홍주(洪州)에서 재부(財賦) 관련 일을 맡았다. 시에 등림(登臨)하거나 기행(紀行)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은데, 청원자연(淸遠自然)해 조탁을 일삼지 않았다. 서정적인 시를 주로 썼고, 삶의 소중함이나 백성들의 간고(艱苦)한 생활을 소재로 하여 작품 활동을 펼쳤다. 대표작에 「풍교야박(楓橋夜泊)」과 「귀산(歸山)」이 있고, 문집에 『장사부시집(張祠部詩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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