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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Aug 25. 2024

3. 바기오에서 무얼 하면서 지낼까?

얼떨결에 다 늙은 사내 넷이서 피서를 하러 간다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산꼭대기 마을에서 몇 주를 무슨 소일거리로 보낼까? 그곳이 필리핀의 여름수도(Summer Capitol)라고는 하지만 특출한 관광명소도 없어 보이고 대략 난감이다. 지도를 검색하니 골프장이 두 곳이 있는데, 골프채도 휴대하지 않고 가는 마당에 손에 익지 않은 대여채로 라운딩 하기도 마뜩잖다. 그리고 우기라서 하루에 최소 1~2차례의 소나기가 쏟아지는 날씨에 골프 라운딩을 이 나이에 하는 것은 별로다. 음탕한 사내들이 으레 그렇듯이 동남아 골프여행에서 저지르는 그런 화류계나 실컷 누비다가 귀국하면 될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양반고을 선비들의 후예로서 언감생심 그런 것은 꿈에도 꾸지 않고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

<도착한 다음날 처음으로 찾아간 North Heaven Spa 마사지 샵 - 상당히 고급이고 가격이 비싸다>

그래서 네 사내는 각자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 하기로 했다. 송재(松齋)는 서예를 하니까 화선지 한 뭉치와 먹물과 붓을 챙겨 오고, 짬짬이 노래 연습을 한단다. 덕은(德隱)과 소운(素雲)은 그동안 못 본 영화나 본다고 어둠의 길로 찾아들어서 외장하드(Hard) 가득 영화 파일을 다운로드하여 가지고 왔다. 금삿갓 운사(芸史)도 영화 보기 좋아하는데, 그들이 챙겨 온다니 같이 보면 되고, 혹시 브런치(Branch)의 글을 써야 될 것 같아서 노트북과 태블릿을 챙겼다. 그래도 넷이 의견이 합치되는 아이템은 될 수 있는 한 전신 마사지는 매일 받아 보자고 정했다. 태국이나 필리핀 와서 마사지만큼은 원 없이 받았다는 소리 나오도록. 말하자면 마사지샵 순례가 될 수도 있겠다.

<발 맛사지 받는 모습>

우리 팀은 국내외 트레킹이나 여행을 가게 되면 모든 계획은 Planning Man인 송재(松齋)가 담당해 왔다. 하다못해 한나절 맨발 걷기를 가더라도 몇 시에 어디서 만나 어떻게 걷고 뒤풀이는 어디서 어떻게 한다는 분 단위 시간 계획을 빼곡히 세워서 공유하곤 했다. 그런데 그간에 몇 차례 덕은(德隱)이 악동(惡童) 끼를 유감없이 부려서 머리 써서 세운 계획표를 무시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실행을 하면서 수차례 다투기도 했다. ROTC 장교 출신이고 꼼꼼하기로 조선에서 둘째가라면 서운할 정보 전문가 송재(松齋)의 코털을 자주 건드린 것이다. 그래서 근래 와서 송재가 계획 짜기를 방기 하면서 엇박자를 놓는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유명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의 명언을 들썩이면 설득할 뿐이다. “계획은 실행에 있어서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도 계획이 전부다.” 그런데 이번에는 씨알도 안 먹힌다. 현장 실행 계획을 못 세우니 알아서 하라면서 배 째라다.

<North Heaven Spa 입구 모습>

특히나 계획 짜기보다는 즉흥적으로 그날그날 닥치는 대로 여행하기를 즐기는 금삿갓은 별로 문제 될 것이 없다. 오히려 홀가분하다. 지난해 두 달간 산티아고 순례길과 스페인 전역과 남프랑스를 두루 돌아다니면서도 계획을 해 본 적도 없고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다녔던 것이다. 그게 맘 편하다. 이 대목에서 금삿갓은 바람처럼 마음 내키는 대로 살다가 온 가족이 성불(成佛)한 신라시대 부설거사(浮雪居士)의 팔죽시(八竹詩)가 언뜻 생각난다.

此竹彼竹化去竹(차죽피죽화거죽) / 이대로 저대로 되어가는 대로

風打之竹浪打竹(풍타지죽낭타죽) /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粥粥飯飯生此竹(죽죽반반생차죽) / 죽이나 밥이나 생기는 대로

是是非非看彼竹(시시비비간피죽) / 옳고 그른 것은 보는 그대로

賓客接待家勢竹(빈객접대가세죽) / 손님 접대는 가세대로

市井賣買歲月竹(시정매매세월죽) / 시장 매매는 세월대로

萬事不如吾心竹(만사불여오심죽) / 만사는 같지 않으니, 내 마음대로

然然然世過然竹(연연연세과연죽) / 그렇고 그런 세상 지나가는 그대로

<우리가 가장 많이 애용했던 누앗 타이 마사지 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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