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은퇴한 중늙은이다.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나이인데, 구성원은 필자(筆者)인 금삿갓 운사(芸史)를 포함 넷이다. 서예와 노래 부르기를 즐기는 자타칭(自他稱) 정보보안 전문가는 송재(松齋), 운전하기 좋아하는 식품 전문가는 덕은(德隱), 흰머리에 솔로로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스프링 전문가는 소운(素雲)이다. 넷은 누죽걸산(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이라는 시대적 명제(命題)에 필이 꽂혀 틈만 나면 걸어 보자는데 의기투합하여 몇 년 전에 <보답회(步踏會)>를 결성했다. 보답회의 뜻은 오로지 두 발로 걸으면서 땅을 밟는다는 것과, 이렇게 걸으면 건강으로 보답을 받는다는 두 가지의 뜻 즉 중의적(重意的)인 명칭이다. 그래서 동해안 해파랑길을 걸었고, 제주도 10박 11일로 올레길과 한라산 둘레길을 걸었다. 남파랑길도 군데군데 걸었고 서해랑길도 몇 코스를 걸었다. 시간이 촉박하면 서울의 여기저기로 트레킹을 하곤 했다.
점차 더워지기 시작하는 오월에 맨발 걷기를 하다가 송재가 불쑥 올해 매우 덥다는데, 바기오에 가서 여름을 보내면서 살아보면 어떨까 하자. 소운이 대뜸 바기오가 어딘 데라고 묻는다. 금삿갓은 일찍이 그곳이 사시사철 시원하고 물가도 싸서 일본이나 한국의 은퇴자들이 많이 이주하는 곳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에 두 달간의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와 스페인 프랑스 여행을 한지라 별로 흥미가 없어서 시큰둥하니 가만히 있었다. 그랬더니 송재, 덕은, 소운 셋이서 쿵짝쿵짝하더니 7월과 8월 사이에 한 달간 거기서 살기로 정했다고 한다. 성질 급한 덕은이 쏘싹 거려서 송재가 스마트 폰으로 마닐라행 저가항공까지 예약을 하더니, 급기야 에어비앤비를 통해서 그곳에 묵을 단독주택까지 예약했단다. 쓰다 달다 말도 못 해보고 엮여 들어갈 판국이다.
금삿갓의 반응이 신통치 않음을 눈치챈 이 악동들이 우격다짐으로 라도 엮어서 데리고 가려고 나에게 회비를 내라고 통보도 않고 지들이 모든 걸 처리하고 사후 통보한다. 지난해 일본 오사카와 교토를 같이 여행했고, 올 사월에는자기들 끼리 후쿠오까 갔다오면서 금삿갓이 빠졌더니 영 재미가 없더라고 무조건 금삿갓을 보쌈이라도 할 태세다. 그러더니 현지 주방장에 경비 집행 총무까지 중책을 덜컥 맡겼다. 아주 빠져나갈 구멍을 주지 않고 외통수로 몰아가는 꼴이었다. 그래. 어쩔 수 없이 가야 한다면 재미있게 놀아보는 것도 좋으리라.
바기오(Baguio)는 필리핀의 제일 큰 섬인 루손섬의 코르디예라 행정구 벵게트주에 있는 산악 도시이다. 마닐라에서 북서쪽으로 250km 정도 떨어진 해발 고도 1,500m의 산 위에 있어 연평균 기온이 19.5°C 정도이다. 이런 시원한 기후 덕분에 20세기 초부터 필리핀을 점령한 미국인들의 피서지로서 도시 건설이 추진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전에는 여름철에 정부기관이 이곳으로 옮겨져 '여름의 수도'라고 불린 적도 있다. 우기에는 비가 자주 내리고 습도가 높고, 건기는 견딜만한 좋은 날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