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정말 편리해졌다. 스마트 폰 하나면 전 세계가 연결되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서울의 커피숍에 앉아서 손가락 몇 번 사용해서 필리핀의 오지(奧地) 바기오(Baguio)에서 살 집을 예약할 수 있는 것이다. Rhode Island 디자인 스쿨의 룸메이트였던 Brian Chesky와 Joe Gebbia가 샌프란시스코에 살면서 방값을 아끼려고 에어 매트리스(Air Bed) 3개를 더 깔아 놓고, 이를 빌려 주고 아침(Breakfast)을 제공하면서 이 사업이 태동을 한 것이다. 그래서 <Air BnB>라는 말은 Air Bed and Breakfast의 줄인 말이다. 서양의 숙박업소는 숙박과 조식을 제공하는 것이 전통적 관례였다. 우리는 이런 문명의 이기(利器) 덕분에 싸고 편하게 세계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구글 지도에 나타나 있는 우리의 숙소>
<에어 비앤비에 소개 되어 있는 숙소의 모습>
우리가 집을 사용하는 시기가 성수기이고 방을 구할 때는 약간 촉박한 시기라서 바기오의 번화가 근처의 숙소 중 합리적인 가격대의 매물들은 벌써 동이 나고 없었다. 최소한 3개월 전에 예약을 하는 것이 싸고 좋은 상태의 물건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송재(松齋)가 열심히 엄지손가락 품을 팔아서 바기오의 중심부인 번햄공원(Burnham Park)에서 약 2Km 정도 떨어진 주택지역에 있는 단독 주택을 구했다. 번햄공원에서 도보로 한 25~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이다. 메인 도로에서 한참 들어가는 이면 도로의 끝 부분이라서 교통은 불편하지만 자동차 소음이나 매연은 없어서 그나마 쾌적한 것으로 보였다. 이곳 지형이 산악 지형이라서 평지의 집은 기대할 수 없었다. 우리가 묵을 숙소도 주차장이 있는 길에서 보면 지붕과 높이가 같은데, 계단을 타고 1~2층 높이의 절벽을 내려가면 현관이 있는 구조이다.
<황색 웨건자동차 앞쪽의 철망문이 집으로 내려가는 계단입구이고, 왼쪽 녹색 지붕이 우리 숙소의 2층집이다>
<맑은날 아침에 계곡 밑에서 앙각으로 찍은 집의 모습>
<집 옆의 계곡에 큰 소나무와 대나무들이 즐비하다>
집 주소는 <40 Fil-Am Road Lower, Baguio, Benguet>이다. 메인 도로와는 직선거리로는 50m 정도 떨어져 있는데, 그 사이에 깊은 협곡이 있어서 비탈길을 빙 돌아 3~400m를 나가야 된다. 이곳의 주된 대중교통수단인 지푸니는 이쪽 골목으로는 들어오지 않는다. 다만 도보나 택시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집은 침실(싱글 침대 2개) 2개에 거실 겸 주방, 욕실 겸 화장실, 지붕을 이어 낸 좁은 다용도실로 구성되어 있었다. 집주인은 바기오 태생의 여성으로 바기오대학을 졸업하고 “빵 굽는 아줌마(Baking Mom)”라는데, 우리가 그곳에 거주하는 동안 얼굴도 한번 볼 수 없었고, 빵 냄새는 더욱더 맡아보지도 못했다. 호스트 소개에는 신선한 빵을 게스트를 위해 준비한다고 했는데, 역시 낚시였나 보다. 제목에 있는 사진이 우리가 살 집은 맞는데, 그날 아침에 해가 잘 들어서 한 컷 찍었더니 너무 멋있게 나와서 나 스스로도 놀랬다. 실제는 협곡의 초입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어서 엄청 우중충하고 습하다.
<여기는 막다른 골목집인데 제법 큰 저택이다. 우리집보다는 Up-town이다>
<희색 SUV 차량 앞의 녹색 지붕이 숙소이다>
<주차된 차들 때문에 출입하기가 힘들다>
개만 빼고 누구나 집 떠나면 개고생이다. 특히 해외 나가면 음식으로 고생하거나 신경 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아니다 다를까 우리 팀에도 음식에 까다로운 귀하게 자란 사내가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한식 밥으로 해 먹자고 난리 부르스다. 주방과 비치된 집기류를 체크해 보았다. 우리나라의 콘도 수준으로 생각했는데, 접시나 보울 등 그릇은 그런대로 쓸만했고, 역시나 냄비와 프라이팬은 코팅이 거의 너덜거리는 수준이었다. 그나마 프라이팬은 인덕션용이 아니었다. 전기밥솥은 우리나라 70년대 수준보다 못하다. 얇은 양은 냄비 뚜껑 같은 덮개이다. 전자레인지와 인덕션은 구비되어 있었다. 냉장고는 700L 급이라서 마음에 들었다. 문제는 수도이다. 수압이 낮고 어린애 오줌줄기처럼 가늘게 하염없다. 우리가 늙었다고 우리들의 오줌발에 비교하라는 것인가? 헤어 드라이기 1대, 고개가 꺾어져 찌그덕 거리는 선풍기 1대, 침실당 장난감 크기의 제습기 1대, 32인치의 TV 세트, 와이파이 등이 갖추어져 있다. 샴푸와 바디 클렌져는 비치, 대형 타월은 2일에 한 번 교체해 준단다. 세탁기와 건조기는 없고 손빨래나 외부 세탁소를 이용해야 한다. 이런 상태의 단독주택을 우리는 1박당 103,000원 정도에 임차를 한 것이다. 호텔비 보다는 훨씬 싸고 식사를 만들어 먹을 수 있어서 부대 경비도 덜 들 것이므로 백수인 우리에겐 괜찮은 선택이다. 아무튼 정 붙이면 고향이 된다니 어설프지만 정 붙이고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