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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楊柳枝詞(양류지사) 2

금삿갓의 漢詩工夫(241003)

by 금삿갓

楊柳枝詞(양류지사) 2

- 柳禹錫(유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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煬帝行宮汴水濱

양제행궁변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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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수 강가의 수양제 행궁에


數株殘柳不勝春

수주잔류불승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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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그루 남은 버들 봄을 견디지 못해


晩來風起花如雪

만래풍기화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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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저물어 바람이 이니 꽃이 눈 내리듯 하고


飛入宮墻不見人

비입궁장불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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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 담으로 날아들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네.

煬帝植柳汴宮(양제식류변궁)하고, 謂之柳塘(위지류당)이니. 柳最盛(류최성)이라. 天子(천자)가 行在所(행재소)를 名曰行宮(명왈행궁)이라. 柳僅數枝(류근수지)는 衰颯已見(쇠삽이견)이요. 綠凋殘柳春又無多(녹조잔류춘우무다)라. 晩風吹絮(만풍취서)하야. 如雪旋飄(여설선표)하니, 卽使宮牆有人(즉사궁장유인)이면 猶自暗傷春去(유자암상춘거)라. 不見人(불견인)은 宮牆(궁장)이 尙在(상재)호대, 宮中無人(궁중무인)하야. 卽柳花飛入(즉류화비입)하니 誰人見來(수인래견)에 廢興之感(폐흥지감)이 不勝浩歎(불승호탄)이라.

수양제가 변궁에 버드나무를 심고 ‘류당’이라 불렀으니, 버드나무가 가장 왕성하였다. 천자가 행차하는 곳을 행궁이라 이름 한다. 버드나무 겨우 몇 가지가 바람을 맞아 쇠함이 이미 보이고, 푸름이 시들어 남은 버들도 봄인데도 또 많지 않았다. 늦바람이 버들 솜을 불어 눈같이 회오리바람에 날리니, 즉 궁장 안에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히려 스스로 몰래 봄이 가는 것을 상심하게 한 것이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궁궐은 그대로 있지만 궁중에 사람이 없다. 곧 버들 꽃이 날아드니 누군가 보러 오면 폐하고 일으키는 감정이 큰 탄식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 劉禹錫(유우석, 772~842) : 당나라 중기 낙양인(洛陽人)으로 자(字)가 몽득(夢得)이다. 덕종(德宗) 정원(貞元) 초(785)에 진사로 정계에 진출한 후, 795년 박학굉사과(博學宏詞科)에 급제하여 회남절도사 두우(杜佑, 735~812)의 막료가 되었으며, 감찰어사(監察御史)가 된 후에는 왕숙문(王叔文, 758~806) · 유종원 등과 함께 환관과 권문세족들의 잘못된 권력을 쇄신하는 정치개혁을 시도하였다. 왕숙문은 덕종 때 왕비(王 )와 더불어 태자의 독서를 맡은 동궁시독(東宮侍讀)을 지냈다가, 태자가 순종(順宗)에 즉위하자 한림학사(翰林學士)가 되었다. 순종의 신임을 받은 왕숙문은 위집의(韋執誼)를 재상으로 추천하였으며, 또한 유우석과 유종원 등을 조정의 대신으로 기용해 개혁정치를 펼쳤다. 왕숙문이 어머님의 병환으로 물러난 지 146일 만에 환관 구문진(俱文珍)이 순종을 퇴위시키고 헌종(憲宗)을 옹립하면서 왕숙문은 투주사호참군(渝州司戶參軍)으로 쫓겨난 뒤 다음 해 피살되었다. 그 결과 유우석과 유종원도 헌종 영정(永貞) 원년(805)에 지방으로 쫓겨났다. 유종원은 영주(永州, 호남 영릉)로, 유우석은 낭주(朗州, 호남 상덕)로 좌천되었다. 유우석이 좌천되었을 때, 지방 관원은 그가 못마땅하여 숙소를 세 번이나 옮겼는데, 세 번째 옮긴 숙소는 딸랑 침대 하나만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럴 때 그는 이렇게 <누실명(陋室銘)>을 읊었다. “산이 높지 않아도, 신선이 살면 이름난 산이요. 물은 깊지 않아도, 용이 살면 영험한 물이지. 이곳은 누추한 방이나, 오직 나의 덕으로도 향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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