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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혼밥의 정치학

금동수의 세상 읽기(210506)

by 금삿갓

"혼밥하슈~?"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2018년 12월 27일 청와대 오찬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식사 도중에 던진 깜짝 질문이다. 이에 문 대통령은 “허허허”하며 웃고 즉답(卽答)을 피했다 한다. 그 후 그에게는 친문(親文)들의 댓글 폭탄이 이어졌다고 한다. 2021년 4월 9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친문들한테 욕 잔뜩 먹었다”고 했다. 퇴임 이후 청와대 면담이 있었냐는 질문에 “혼밥 발언 때문인지 그 이후로 한 번도 안 부르시더라고. 내가 혼밥 하슈? 라고 물은 건 다양한 사람들을 자주 만나라는 취지였다. 대통령에겐 식사 한 번이지만 대통령과 식사한 사람들에게는 평생 못 잊는 추억이거든. 1시간이 되면 되는 건데, 이런 자리를 자주 하시라고 한 건데…”라고 보도 되었다. 국민으로서 씁쓸한 느낌이 든다. 2020년 10월에 야당 의원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공개된 대통령의 일정을 분석해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취임 후 40개월 동안 총 식사 회동(會同) 횟수는 209회로 일주일에 한 번꼴로 외부인사와 식사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내부 일정이 80%가량 되어 혼밥을 하거나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끼리만 어울린 것이다. 특히 비서관들과 식사를 하고 테이크 아웃(Take out) 커피잔을 들고 경내(境內)를 걷는 모습의 보도를 보고 국민들은 의아스러웠다.

<비쥬얼다이부에서 퍼옴>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도 늘 상 혼밥 이야기가 떠돌곤 했다. 박 전 대통령의 혼밥 사랑이 알려진 것은 2016년 12월 한상훈(46) 전 청와대 조리장의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다. 그는 <여성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세월호 참사 당일이던 2014년 4월 16일 점심과 저녁에 각 1인분의 식사를 만들어 관저(官邸)로 보냈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씨와 ‘문고리 3인방’ 등 최측근과 회의를 한 뒤에도 이들과 겸상(兼床)하지 않고 따로 식사를 할 정도로 홀로 밥 먹는 것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의 혼밥은 참모진들로부터 대면(對面) 보고조차 꺼려했던 그의 일방적 소통 스타일 및 세월호 참사(慘事)와 연계되어 국민적 공분(公憤)과 논란을 일으켰다. 국가원수의 식사는 단순한 음식물 섭취가 아니라 정치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혼밥이 마녀사냥의 한 가지 아이템으로 작용한 것이다.


교도통신(共同通信) 서울지국장과 산케이신문(産經新聞) 서울지국장 겸 논설위원으로 40년 가까이 한국에서 근무한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가 쓴 <韓飯 政治学(한국 밥의 정치학)>의 한국어판 <문재인의 혼밥 박근혜의 혼밥>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2017년 11월 한미(韓美) 정상회담 만찬에 등장한 ‘독도 새우’로 인하여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독도 새우’로 한일관계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고자질하는 외교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런 식재료(食材料)까지 용케 찾아내는 정치적 디테일(Detail)에 놀람과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대통령과 음식, 보신탕, 이밥에 고깃국, 부대찌개 등 한국인으로서는 무덤덤하게 느꼈던 여러 가지 사례를 재미있게 분석한 것들도 있다. 시차(時差)를 둔 사건으로 눈길을 끄는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弑害) 사건에 대한 그의 지적이다. 그는 부녀지간이면서 대통령이었던 두 사람이 모두 ‘밥’으로 인하여 비참(悲慘)한 최후를 맞았다는 논리이다. 다 알다시피 박정희 전 대통령은 측근과의 저녁 자리에서 피살되었고 만약 딸처럼 혼밥을 즐겼더라면 살해당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았다. 혼밥을 먹지 않아 살해된 아버지와 반대로 딸은 혼밥만 즐겨 정치적으로 파탄을 맞아서 절묘한 대비(對比)를 이룬다고 해석했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단절과 고립을 뜻하는 불통(不通)의 정치 스타일에 혼밥 이미지가 덧칠되어서 사실보다 한층 더 매도(罵倒)당했다고 봤다.


우리에게 혼밥이 커뮤니케이션 면에 있어서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할까? 원래 우리 선조들은 독상(獨床) 또는 외상(外床)을 사용했다. 즉 1인 1상의 혼밥이 기본이었다. 왕실이나 사대부가(士大夫家)에서는 독상을 기본으로 했다. 독상이라도 상황에 따라 여럿이 같은 공간에서 함께 하던가 아니면 혼자 했다. 봉제사 접빈객(奉祭祀 接賓客)을 선비들의 덕목으로 알았던 시대라서 그 집의 가세(家勢)를 보유한 상(床)의 수(數)를 보고 가늠하기도 했다. 필자(筆者)가 어린 시절 식사 때에 어른들은 모두 독상이었다. 특히 잔치에는 집안의 모든 상(床)과 동네의 공용 상과 식기류들을 총동원해서 상을 차리고, 이집 저집 이웃으로 흩어져 유숙(留宿)하는 손님들에게 독상을 들어 나르면서 대접을 했다. 조선의 문헌으로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도 독상이 기본으로 되어 있다. 근대에 들어와 1939년에 출간된 조자호(趙慈鎬)의 <조선요리법>에는 “갑오(甲午) 이전의 진짓상은 다 외상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녀는 순종(純宗)의 비(妃)인 순정왕후 윤씨와 이종사촌 관계로 반가(班家) 음식의 전문가이며 호원당(好圓堂)을 창업하고 중앙여중고 설립에도 참여했다. 조선의 통치 윤리인 성리학이 지배하던 시절에 장유유서(長幼有序)와 남녀유별(男女有別)의 실천으로 독상 문화와 식사 중에 대화 금지 문화가 정착된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지금과 같은 커다란 테이블에 밥, 국, 반찬을 개별 또는 공유하며 여럿이 둘러앉아 식사하는 건 비교적 근대에 이르러서 시작되었다. 독상(외상)을 폐지하고 겸상을 사용하자는 주장이 처음 거론된 것은 1936년 동아일보의 사설이다. 여럿이 겸상(兼床)을 하면 자원을 절약하고 주부의 가사부담을 덜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하지만 내면을 보면, 일제의 전쟁 물자 동원으로 민가가 수탈(收奪)을 당하던 결과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들은 민가의 놋그릇, 수저, 제기(祭器) 까지도 탄피 제조용으로 징발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6.25 전쟁 이후 물자 부족과 가난으로 대부분 가정에서 독상을 차릴 만큼 여유가 없어졌다. 그러니 자연히 집안의 가장(家長)인 제일 어른만 독상을 차리고 나머지 식구들은 커다란 두리반을 한 두상 차려서 남자끼리, 여자끼리 둘러앉아 먹는 방식으로 정착되었을 것이다.


외교 관계나 국제적 비즈니스를 할 경우 식사에 관한 의례나 매너, 에티켓은 회담(會談)이나 상담(商談)의 성공을 위한 기본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그래서 외교 관례에서 정상들의 식사 의전은 그 자체로 엄청난 커뮤니케이션을 함유하고 또한 전파하는 행위이다. 외교 식사 의전에서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것이 바로 영국의 엘리자베스여왕 초청 만찬 일화(逸話)이다. 필자(筆者)가 과문(寡聞)해서 사실인지 허구인지 정확한 팩트체크(Fact check)를 찾지는 못했다. 식사 상대가 중국 또는 인도의 고위관리라는 양설(兩說)이 있다. 서양의 정찬(正餐) 코스 중에 손가락을 씻을 용도의 핑거 볼(Finger bowl)에 레몬이나 꽃잎, 향신료 등을 띄운 물이 제공된다. 이런 음식문화에 익숙하지 않는 참석자가 마실 물(차)인줄 알고 마시자, 초청자 측에서 당황스러운 상황이 되었다. 엘리자베스여왕이 센스 있게 바로 그 물을 마심으로서 어색한 상황을 모면하는 배려를 보였다. 외교나 비즈니스 식사에서 예절·관습·에티켓 보다 위대한 것이 바로 배려였던 것이다.


또 다른 일화는 이스라엘을 국빈(國賓) 방문한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이야기다. 2018년 5월 2일 아베 총리부부와 이스라엘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총리부부와의 만찬에서 일어났다. 양국의 고위급 회담이 끝난 후 총리관저에서 열린 양국 정상 만찬(晩餐)의 디저트 코스에 “남성 구두 모양의 철제 식기”에 초콜릿을 담아 올렸다. 당시 총리 관저의 전속 요리사는 이스라엘에서 인기 셰프(Chef)인 세게브 모셰(Segev Moshe)였다. 그는 영국 출신 디자이너 톰 딕슨(Tom Dixon)의 작품인 구두를 디저트의 식기로 활용했다. 만찬 하루 전 아베 총리가 팔레스타인 수장과 만나서 “일본은 주(駐)이스라엘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지 않겠다.”고 공언한 것에 불만을 표한 것 아니냔 지적이다. 미국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고 대사관까지 옮기는데 일본의 비협조가 눈에 거슬린 것이었다. 식사 커뮤니케이션 전략의 가장 탁월한 정수(最精髓)를 보여준 것으로 본다. 이스라엘은 유대민족의 피해 역사로 인하여 일본을 그리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수많은 국가와 민족에 씻지 못할 피해를 줬음에도 잘못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하지 않는데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 도리어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맞은 두 발의 원자폭탄 피해자 코스프레(Costume Play = Cosplay)하는 것을 못 마땅하게 여긴다. 2005년 3월 15일에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에 세운 야드 바셈(Yad Vashem) 홀로코스트(Holocaust) 역사박물관을 개관할 때 세계 40개국 지도자를 초청하면서 일본인은 한 명도 부르지 않았다.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 기자가 이런 아베 총리가 당한 굴욕(屈辱)의 사례를 가지고 <飯の 政治学(밥의 정치학)> 2탄을 쓰지 않는지 궁금하다.

<이스라엑에서 아베총리 만찬 디저트>

한·중·일 삼국은 지정학적(地政學的) 위치와 역사적 관계에 있어서 매우 미묘하다. 따라서 정상 간의 외교와 식사조차도 국민감정과 연계되어 증폭되기 일쑤이다. 2017년 말 문재인 대통령의 3박4일 방중 일정에서 중국 지도부와 식사는 두 차례뿐이었고 여섯 끼를 혼밥으로 때우며 중국을 과거 조선이 명나라 떠받듯이 상국(上國)으로 받드는 것 같았다. 당시 방중 기간 중 중국 보안요원들의 한국기자 폭행,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대통령을 툭툭 치는 등의 무례, 총리인 리커창(李克强)이 베이징에 있었음에도 식사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외교적 홀대(忽待)를 당했다는 평가가 파다했다. 특히 베이징의 한 평범한 식당에서 참모들과 같이 조촐하게 아침 식사로 유탸오(油条)를 먹고 있는 모습은 굴중(屈中)의 압권(壓卷)으로 읽혔다. 문재인 정권은 출범 직후 “미국 MD(미사일방어) 참여”·“사드 추가 배치”·“한·미·일 군사 동맹”을 하지 않겠다는 “3불(三不) 정책”으로 중국에 꼬리를 바짝 낮췄다. 그것도 모자라 시시때때로 시진핑(習近平) 주석에게 러브콜(Loce call)을 보내고 혼밥을 감수하며 찾아가서 조아린 결과가 무엇인가? 임기가 1년 정도 남은 지금까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보복에 대한 사과는 고사하고 속 시원한 해제 발언조차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국제관계든 개인관계든 굴종(屈從)만이 능사(能事)가 아니다. 중국에 대한 필리핀, 베트남, 대만의 대처를 보라. 우리보다 약하지만 절대 굽히지 않고 도리어 중국을 상대로 큰소리치지 않는가? 문정권이 혼밥 대접을 받은 것은 그의 탓이 클 것이다.


또 다른 혼밥 외교 사례를 보자. 2015년 11월 2일 청와대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열였다. 한국은 회담에 앞서 위안부(慰安婦) 문제를 연내에 조기 타결할 것을 아베 총리에게 요구했으나, 아베 총리가 이를 거절한 것이었다. 이에 박근혜 전 대통령 주최의 오찬 등을 교환조건으로 해 일본측의 양보를 요구했지만 일본이 들어주지 않자, 박 전 대통령은 평소 즐기던 혼밥을 즐겼다. 그래서 아베 총리도 혼밥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아베 총리는 그날 정상회담을 마친 뒤 관훈동에 있는 한식집 경복궁에서 벳쇼 고로(別所浩郞) 주한 일본대사 등 8명과 오찬을 했다. 그들은 꽃등심 세트와 양념갈비를 주문해 먹었단다. 갈비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으며 클라우드 맥주 세 병을 곁들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박근혜 정권은 위안부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고 한일관계의 미래 지향적 전진을 위하여 정상들의 혼밥 전략까지 구사(驅使)하였다. 한일간에 상호 배려보다는 자존심 싸움이랄 수 있는 벼랑 끝 협상을 통하여 2015년 연말이전에 위안부 문제에 대한 협정 타결이 이루어 진 것이다. 1991년 8월 14일 위안부 피해자인 김학순(1997년 작고) 할머니가 일제강점기 위안소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성적 착취를 강요당했다는 취지로 기자회견을 한 이래 24년 만에 한일양국이 협정을 맺은 것이다.


대통령의 같은 혼밥이지만 문 대통령은 4년 동안 아무 것도 얻어내지 못했고, 박 전 대통령은 혼밥을 먹이는 전략을 활용하여 협상을 연내에 마무리 지었다. 한 끼 밥이지만 정치적 의미와 전략이 중요한 것이다. 혼자 먹을 것인가, 누구와 먹을 것인가, 무엇을 먹을 것인가, 어디서 먹을 것인가, 언제 먹을 것인가? 국가 정상에게 있어서 이 모든 행위가 밥의 정치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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