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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Nov 24. 2024

29. 서양춘화의 거장 아브릴의 애로서(曖露書)

동양에 특히 성리학으로 무장한 우리 조선시대에도 춘화(春畫)가 유행했듯이 서양도 마찬가지이다. 사람 사는 것은 어느 곳, 어느 시대나 비슷하다. 인간은 본성이 지배하기 때문일 것이다.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앙리 아브릴(Edouard Henri Avril, 1843~1928)은 폴 아브릴(Paul Avril)이라는 예명(藝名)으로 주로 활동했다. 그는 알제리에서 태어나서 보병 장교로 근무하면서 독일과의 전쟁에 참전하여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제대 후에 파리의 보자르(Beaux Arts) 미술학교에서 미술 공부를 하여 화가 및 삽화가로 활동했다. 그는 예명을 사용하면서 당시 파리에서 활동하던 작가, 시인, 저널리스트, 편집인, 역사가 등 다양한 사람들의 저술에 삽화를 많이 그렸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했던 피에트로 아렌티노(Pietro Arentino)가 당시에 쥘리오 로마노의 그림으로 <I Modi : 16 Pleasure>를 발간한 것을 모티브로 삼아 비슷한 성애(性愛) 책자인 <Lustful Sonnets(정욕적인 쏘네트)>를 출판하면서 에로틱한 그림을 삽화로 그렸다. 지금 이 글에서 보이는 모든 작품은 독일의 철학자이자 언어학자인 프리드리히 칼 포르베르크(Friedrich Karl Forberg)의 저서 <De Figuris Veneris(비너스의 모습에 대하여)>라는 그리스와 로마 신화의 내용에 대한 해설서에 실린 아브릴의 삽화 중 일부이다.

<Lustful Sonnets(정욕적인 쏘네트)>에 실린 삽화들도 아주 대담하고 적나라한 것이지만, 이 책 <De Figuris Veneris(비너스의 모습에 대하여)>에 실린 것과는 비교도 되지 못할 정도이다. <Les Sonnets Luxurieux(정욕적인 쏘네트)>에서는 원작의 의미를 계승한다는 차원에서 주로 성행위의 체위에 관한 그림이 주를 이루고 있다. 반면에 그리스 로마 신화를 모티브로 하여 신화의 내용을 당시의 관념으로 재해석하여 그림으로 완성하였지만, 아마 당시로서는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을 것이다. 그림의 내용 중에는 세 사람이 관계하는 쓰리섬(Threesome), 동성애(여성 간의 레즈비언, 남성 간의 항문성교), 구강성교(펠라치오, 커닐링구스), 혼음(混淫)인 그룹 섹스(Group Sex), 수간(獸姦 : 동물과의 관계), 수음(手淫, Masturbation) 등이 펼쳐진다. 그는 이 책자에만 95가지의 성애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런 음화(淫畫)가 르네상스 시대처럼 금서(禁書)로 처벌되거나 압수되어 폐기되기는커녕 도리어 상당한 화제를 불러 일으켰나 보다. 이 책은 라틴어, 그리스어,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로 번역되어 출판되기까지 했다. 그랬으니까 옛날의 춘화들은 많이 실전(失傳)되었는데, 아브릴의 이런 작품들은 유난히 많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아브릴은 1748년에 처음 출간된 영국 작가 존 클리랜드(John Cleland)의 에로틱 소설인 <패니 힐의 회고록(Memoirs of Fanny Hill, Woman of Pleasure)의 1887년 재출판에도 많은 삽화를 그렸다.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와 루이 페르소(Louis Perceau)가 이 책을 재발견하여 파리에서 많이 전파가 되었다. 아마 폴 아브릴은 역사 이래 성애 문학의 삽화를 가장 많이 생산하고,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보전되어 현재까지 전해지는 유일한 화가일 것이다. 그가 삽화를 그려주고 함께한 저술가가 수십 명이 되는 걸로 보아서 그의 작품이 그리 졸작은 아닌 모양이었다. 아무튼 <패니 힐의 회고록>에서 보여주는 그의 필치는 또 다른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할지도 모르니까 아브릴의 작품에 대하여 한두 번 더 연재를 할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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