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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Nov 17. 2024

28. 르네상스 시대의 빨간책 애로서(曖露書)

우리는 주로 외설(猥褻) 서적을 빨간책이라 부르고, 사춘기 시절에 어른들에게 들키지 않으면서 또래들끼리 몰래 돌려보던 경험이 있다. 어느 시대 어느 곳 즉 문자(文字)로 쓰면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빨간책이 없었던 적은 없었을 거다. 동양에서는 중국의 한(漢) 나라 이전에 저술된 것으로 추정되는 <소녀경(素女經)>을 필두로 <옥방비결(玉房秘訣)>, <동현자(洞玄子)>, <현녀경(玄女經)> 등이 있다. 인도는 3~4세기에 바츠샤야나(Vatsyayana)가 쓴 <카마수트라(Kamasutra)>, 12세기경의 코코카(Kokkoka)가 쓴 <라티라하샤(Ratirahasya)>가 있다. 이 책에서 재미있는 표현이 여성을 4등급으로 구분한다. 최고가 연꽃 여인(Padmini), 다음이 예술 여인(Chitrini), 조개 연인(Shankini), 마지막으로 코끼리 여인(Hadtini)이다. 아랍권에서는 16세기 셰이크 네프자위가 지은 <향기로운 정원>이 있다. 이 책에는 “성기(性器)에 축복 내리신 알라는 칭송받아 마땅하리. 알라는 여성의 그곳에 환희를 심어주고, 여성이 남성에 의해 관통되었을 때 그녀들에게 만족과 행복을 주시네. 아울러 어떤 남성도 여성의 그 자연 안으로 들어가기까지 평화를 얻지 못하네.”라고 기술하고 있다. 서구는 기원전 1~2년에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Ovidius)가 쓴 3 연작 시집 <아르스 아마토리아(Ars Amatoria)>가 있는데, 직접적인 성애(性愛)의 기교를 다룬 것이라기보다 남녀 간의 사랑의 기술을 다룬 것이다. 그의 책에는 이런 표현도 있다. “나는 두 연인이 모두 오르가슴에 도달하지 못하는 성관계를 좋아하지 않아. 그래서 나는 남자에 대한 사랑에 덜 관심이 있어.”

위의 적나라(赤裸裸)한 작품을 들여다보면 요즘 인터넷 즉 사이버 세상을 떠도는 야동(野動 : 야한 동영상)을 방불케 한다. 왼쪽 작품은 여성이 너무 힘들어 보이고, 오른쪽 작품은 반대로 남성의 힘이 좋아야 가능한 자세이다. 누구의 솜씨일까? 르네상스 시대를 주름잡던 3대 거장 중 하나인 라파엘로(Laffello)의 수제자 쥘리오 로마노(Giulio Romano : 본명은 Giulio Pippi)의 작품이다. 음화(淫畫)를 작품이라고 표현하는데 동의하지 않은 독자도 있지만, 당시 로마노의 실력과 그가 남긴 성당의 벽화나 작품의 영향력을 생각할 때 이런 부류도 작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림은 당시 로마를 좌지우지하던 대가(大家) 2인의 공동 저작물이고, 책은 3인의 공동 저작물이라서 더욱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작품의 제목은 <I Modi : De Omnibus Veneris Schematibus>으로, 영어로는 <The Ways : The Sixteen Pleasure(방법들 : 16가지의 즐거움)>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 성행위의 체위에 관한 그림과 연작시집이다. 당시 로마에서 가장 악명으로 영향력 있던 극작가, 시인, 풍자 작가였던 피에트로 아렌티노(Pietro Arentino)가 소네트(Sonnet)를 쓰고, 회화로 최고봉인 쥘리오 로마노가 밑그림을 그리고, 동판화의 거장 라이몬디(Marcantonio Raimondi)가 판화를 제작하여 1527년에 재출판(再出版)한 서적의 그림 부분이다.

당시 쥘리오 로마노는 교황청의 모든 의뢰 작품을 끝내고, 만투아에 있는 페데리코 2세 곤자가(Federico II Gonzaga)의 의뢰 작품인 일련의 에로틱한 그림을 주로 제작했는데, 그의 그림을 바탕으로 성적 자세의 16개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알려졌다. 판화가 라이몬디가 로마노의 그림을 동판화로 제작하여 1524년에 이것을 처음 출간되자 교황청이 발칵 뒤집혀서 판화가인 라이몬디가 투옥되었다. 시인인 아렌티노는 펜의 힘이 강해서 글로써 라이몬디를 석방시켰다. 로마노는 자기 그림이 활용되어 출판되는 사실을 모르고 있어서 무사했다. 그리고 출판된 모든 책은 교황청에서 수거하여 폐기 처분되었다. 그러나 당국에서 막는다고 야동이 근절된다면 아프리카 TV가 상장(上場)되지 못했을 것이다. 도리어 혹독한 독설가인 아렌티노의 시를 곁들여서 위와 같이 재출판된 것이다. 이번에도 교황청이 압수하였다. 그래도 교묘하게 살아남아 1550년에 베니스에서 아우구스틴 카라치(Augustin Caracci)가 은밀하게 전해지던 당시의 로마노의 그림을 근간으로하여 자신이 목판화로 더 보강을해서 모음집으로 간행되어서 오늘날까지 전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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