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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클맘 Sep 15. 2021

추석 무렵 시골  방앗간

몇 주전부터 어머니께서 주말에 방앗간에 가자며 시간을 비워두라고 하셨다.

여든이 다 되신 어머니는 여전히 방앗간에서 깨를 볶고, 들기름이며 참기름을 짜다 드신다.


여전 같으면 가까운 동네 방앗간을 이용하면 되련만 요즘 도시에서 기름 짜고 깨를 볶는 방앗간을 찾아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식구들 먹을 음식을 아무데서나 할 수 없다며 기름 짜고 깨를 볶기 위해 어머니는 매번 친정집에서 한참 떨어진 시골 당골 방앗간을 이용하신다.


토요일 오후 어머니를 모시고 시골 방앗간을 찾았다.

어른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탄 곳이라 평소에도 사람이 많긴 했지만 이번엔 그냥 많은 정도가 아니었다.



"번호표 안 받은 분들은 이쪽으로 오시고, 번호표 받은 분들을 저쪽에 가서 줄을 서세요!"

"아저씨, 제가 먼저 왔는데 저는 왜 번호표가 뒷번호예요?"


아뿔싸!

고추 가루를 빻으려는 어르신들이 커다란 고추 포대를 들고 방앗간 앞마당에 줄을 서 계신다.

올해 늦은 장마로 계속 비가 내리다 보니 그동안 날이 개기만 기다리셨나 보다.

비가 그친 오늘  방앗간에 한꺼번에 사람들이 몰렸다.


오랜만에 보는 시골 풍경이다.

한쪽에는 고추를 빻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이 북적대고, 한쪽에선 추석 맞이 기름을 짜고 깨를 볶으러 온 사람들이 순서를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평소에는 이런 광경을 볼 일이 없었다.

방앗간 뒷마당으로 가보니 빻은 고춧가루를 햇볕에 말리느라 하얀 비닐에 널어놓은 고추 가루도 보인다.

무거운 고춧가루를 함께 차에 싣고 온 가족들은 복잡한 차량 정리를 손수 나서 도와준다.


아직 한낮 기온이 29도를 오르내리니 기름을  짜는 아저씨는 연신  흐르는 땀을 닦아낸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고소한 기름 냄새와 매운 고춧가루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어릴 적 추석이 돌아오면 엄마를 따라 방앗간에 가곤 했었다.

송편을 만들기 위해 쌀을 빻으러 갔던 그 방앗간에도 기름을 짜고 깨를 볶느라 고소한 냄새와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그때는 이 풍경들이 이리 정겨운 줄 몰랐다.


이제 나도 이런 풍경이 정겨울 만큼 나이나 들었고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섭섭한 감정이  방앗간 풍경과 함께 아련해졌다.


앞으로 언제까지 이곳에서 기름을 짜고 깨를 볶는 고소한 냄새를 맡을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시 한번 뒤돌아 아직 매콤하고 고소한 냄새 가득한 그곳을 맘속에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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