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직 아름답다고 믿고 싶은 것들
시골 마을은 어디나 비슷하다.
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고, 그 아래로 작은 실개천이 흐른다.
마을로 들어오는 길목에는 아카시아나무가 늘어서 있고,
실개천 옆 자투리땅에는 고추와 가지, 상추 같은 채소들이 자란다.
내가 사는 신기리 마을도 그렇다.
올해로 이곳에 산 지 10년이 됐다.
12 가구가 모여 사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서 맨 끝집까지는 약 2킬로미터 남짓이다.
이 마을에서는 1년에 네 번,
마을 입구부터 끝집까지 대청소를 한다.
누군가는 엔진톱을 가져오고,
누군가는 제초기와 제초제를 챙긴다.
오전 7시에 모여 일을 시작하면
11시쯤이면 모두 끝난다.
그때는 아내가 아직 건강했을 때다.
우리 집에서는 육개장을 끓이고,
막걸리를 내놓고, 전을 부쳤다.
일을 마친 어르신들이 둘러앉아
한때를 쉬어 가던 시간이었다.
힘든 공동작업, 이른바 부역이지만
나는 그 힘듦이야말로
시골에 아직 남아 있는 공동체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도시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사람 사는 맛이었다.
작년 한 해는 달랐다.
아내의 병간호로 서울을 오가느라
마을 대청소는 물론
모든 마을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런데 동네 어르신들은
아내에게 좋다는 과일을 들고
병문안을 오셨다.
읍내 장날에 나가
수박이며 과일을 골라 사 오셨다.
“아이고, 빨리 나아서
또 우리 같이 점심도 먹고 해야지.”
나는 고개를 숙여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내가 아파서
올해는 참석이 어렵습니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8월, 유난히 더운 여름날이었다.
아침 일찍 병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마을 입구부터 어르신들이 나와
풀을 베고 제초제를 치고 있었다.
더위를 피하려고
서둘러 일을 시작한 듯했다.
그 모습을 보며
마음이 묘했다.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과
말없이 이어지는 마을의 시간 앞에서
잠시 멈춰 서게 됐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다.
카카오톡으로 문자가 왔다.
‘2025년 마지막 반상회.
읍내 음식점에서 진행합니다.’
거의 1년 만에 참석했다.
12가구 중 11명이 모였다.
“최 국장, 아주머니는 요즘 어때?”
“지난 1년 고생했어.”
“그래도 많이 나아지셨지?”
70대부터 90대까지,
모두가 아내의 안부를 먼저 물었다.
그 마음이 고마워서
한동안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아내는 퇴직 전까지
요양원과 노인 건강 관련 기관에서 일했다.
어르신들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그래서인지
동네 어르신들도
아내를 각별히 걱정했다.
심지어 나보다 열 살 위 형님 한 분은
눈시울을 붉히셨다.
그날 반상회 자리에는
겨울 절임배추를 끝내고 온
앙상한 몸의 어르신도 있었고,
아내가 다리 수술로 입원해
혼자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는
90세 어르신도 있었다.
산판에서 벌목을 하던 형님은
이제 산에 오르기가 너무 힘들다고 했다.
술잔이 몇 번 오가자
대화는 자연스럽게 흘렀다.
“이제 나이 드니까
소주 한 잔만 마셔도 취해.”
“예전 같지가 않아.”
66세 한 분을 빼고
모두 70대에서 90대였다.
이야기는 건강으로,
올해 비 때문에 망친 절임배추로,
내년 농사 걱정으로 이어졌다.
평생 농사에 몸을 바친 사람들이
이제는 하루하루를
걱정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날 문득 생각했다.
저 모습이
머지않은 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걸.
시골의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이제는 편히 살아야 할 어르신들이
내일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 자리에는
서로의 삶을 서슴없이 나누는
정이 있었다.
그 모습이 나를 잠시 행복하게 했다.
마을 대청소로,
반상회로,
소소한 안부 인사로 이어지는
이 시골의 공동체를
우리는 언제까지
아름답게 바라보며 살 수 있을까.
다만,
그 끝이 언젠가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
조금 두려울 뿐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이 풍경을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깊이
눈에 담아두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