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작은 생명과의 첫 만남

내 인생에 찾아온 가장 따뜻한 친구들.반려동물이 건네준 사랑의 언어

by 최국만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내 인생엔 항상 개와 고양이가 있었다.

누군가에겐 단지 동물이겠지만 ,내게 그들은 하나의 생명이었고,하나의 위로였으며,때로는 사람보다 더 사람 같았던 존재들이었다.


어린 시절,집 앞 골목에서 만난 강아지는 우리 부모님보다 더 나를 반겨주는 존재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꼬리를 흔들며 달려왔고,때로는 내 울음을 닦아주는 침묻은 혀 하나에 마음이 풀리곤 했다.

그 첫 기억은 어렴풋하지만, 개라는 존재가 나에게 무엇이었는지를 일찍이 심어준 순간이었다.


그리고 지금,나는 두마리의 개와 두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있다.

괴산의 작은 마당을 함께 누비는 이 생명들은 더 이상 ‘반려동물‘이라는 단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들은 가족이고,친구이며,침묵 속에서 나와 늘 대화하는 또 하나의 언어다.


우리 개들은 아침이면 나보다 먼저 일어나 마당을 휘돈다.

별이는 여전히 어린아이 같고,뭉게는 묵묵히 주변을 살핀다.

고양이는 느릿느릿 걸으며 햇살 좋은 자리를 점령하고,가끔은 우리 북카페 앞 마당에 턱을 괴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본다.

그들의 시선엔 비난도 기대도 없다.

다만,함께 있다는 고요한 동의와 신뢰만이 머문다.


삶이 버겁던 날들이 있었다.

방송국 일에 지치고,사회의 부조리 앞에 분노하며

마음의 평정을 잃을 때,나는 이 생명들에게로 도망쳤다.

그들은 아무 말도 묻지 않았고,그저 내 곁에 조용히 누워 주었다.

그 침묵이 나를 살렸다.

때로는 말보다 더 깊은 위로가,그런 침묵에서 흘러나온다.


아내는 길고양이 한 마리를 살리기 위해 병원으로 달려간 적이 있다.

누군가는 “그깟 고양이”라고 말했지만 ,아내는 한 생명 앞에 망설이지 않았다.

치료를 마친 고양이를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그녀의 눈빛 속에,나는 오래전 우리가 사람보다 생명을 먼저 사랑하자고

다짐했던 초심을 떠올렸다.


그러나 이들과의 삶에는 웃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작별의 순간도 있었다.

노견이 된 개,복숭이가 조용히 숨을 거두던 날,나는 마치 오래된 친구를 잃은 것처럼 한참을 마당에 앉아 있었다.

또 하나는 위 표지에 있던 사랑이를 전원주택에서 키울 때 마을에서 개 짓는 소리가 너무 크다고 민원이 들어와,

먼 지역에 계신 분한테 사랑이를 보낼 때,

이 두 사례는 나를 매우 가슴 아프게 했다.


그들이 남긴 발자국은 금세 사라졌지만 , 그들이 내 삶에 남긴 자리는 아직도 따뜻하다.

죽음은 이별이 아니라,

기억으로 옮겨가는 방식임을,그리고 헤어짐은 또 하나의 그리움으로 남는다는 사실을 그때 배웠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이 많은 동물을 어떻게 돌보세요”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다만 웃으며 개 한 마리의 머리를 쓰다듬고,고양이의 등을 살짝 문지른다.

그 순간 그들은 말한다.

“우리를 돌보는 것처럼,당신도 우리에게 돌봄 받고 있어요”라고.


나는 이제 늙었다.

하지만 이 생명들과 함께하는 하루하루는 내 늙음을 환히 밝혀주는 촛불 같다.

그들이 있는 마당은 생명으로 가득하고,그들의 호흡은 내 하루의 심장 박동이 된다.

이 조용한 동행 속에서 나는 더 좋은 사람,더 따뜻한 어른이 되고자 한다.


내 인생의 개와 고양이.

그들은 말 없는 철학자였고,

침묵 속의 위로자였으며,

무엇보다 진실한 친구였다.


나는 그들과 함께 살아가며,

항상 고맙고,감사하게 생각한다.

그것이 이 생명들에 대한 나의 마지막 예의이자,

고백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