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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 머리카락처럼 흩날려도 다시 자란다

아내의 삭발 앞에서 배우는 진짜 사랑의 의미,아름답던 외모가 사라진 자리

by 최국만



6월의 햇살이 창문을 뚫고 들어오던 날이었다.

아내는 아산병원에서‘3중음성유방암’ 최종 진단을 받았다.

우리는 말없이 병원을 나왔다.

한 달 동안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안팎으로 소진된 상태였지만, 그날만큼은 담담한 척 웃으며 서로의 눈을 피했다.


나는 묵직한 현실 앞에서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어떻게 이 고통을 아내는 견딜 수 있을까.”

그 생각뿐이었다.


암 진단을 받고 우리가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항암 치료로 인한 머리카락의 상실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빠지는 대로 두자고 했지만, 아내는 조용히 말했다.

“그럴 바엔 내가 먼저 삭발할래. 준비는 내가 할게.”


그 말이 그렇게 슬프게 들릴 줄 몰랐다.

여성에게 ‘머리카락’은 단순한 신체 일부가 아니다.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고, 자존감의 뿌리며, 정체성과 정서의 상징이기도 하다.


우리는 읍내의 조용한 이발소를 찾았다.

남편 따라나선 길, 말없이 의자에 앉은 아내.

바리캉이 머리 위를 처음 가르며 ‘삭’ 소리를 냈을 때,

나는 숨을 삼켰다.


머리카락이 바닥에 하나둘 떨어질수록,

아내의 눈빛은 단단해졌고,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여성 독자라면 이 순간의 복잡한 감정을 더 잘 아시리라.

머리카락을 잃는다는 건 단지 미용상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껏 살아온 삶의 자취 하나를, 병 앞에 내려놓는 일이기도 하다.

내게 익숙했던 아내의 긴 머리칼이 모두 잘려나간 자리,

그곳엔 여전히 아내가 있었다.

오히려 더 강해진 모습으로.


나는 그 순간, 어떤 위로의 말보다

그저 옆에 있어 주는 것이 사랑임을 알게 되었다.

“여보, 걱정 마요. 우리가 함께하잖아요.”

그 말을 마음속으로 수십 번 외쳤다.

그러나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던 건, 나 역시 눈물을 삼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성 독자라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머리카락이 뭐 그리 중요해? 건강이 먼저지.”

그렇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삶을 함께해온 동반자의 ‘가장 소중했던 부분’이 사라지는 장면을 본다는 건,

단순한 이성적 사고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녀는 말했다.

“괜찮아. 다 지나갈 거야.”

나는 안다.

그 말 뒤에 숨어 있는 두려움, 고통, 상실감을.

나는 매일 아내의 눈을 바라보며 그런 마음을 읽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내의 어깨 위로 흘러내리는 햇살이 유독 눈부셨다.

머리카락은 없었지만,

그녀의 존재는 여전히 가장 빛나는 빛으로 내 옆에 있었다.


나는 다짐했다.

이 긴 여정이 끝나는 날,

다시 머리칼이 자라나는 그날까지,

그녀가 외롭지 않게 곁에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날이 와도,

나는 여전히 그녀 곁에 있을 것이다.

사랑은 ,

머리카락처럼 흩날려도

다시 자라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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