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병을 이겨낸 아내, 프랑스 자수를 통해 다시 삶을 수놓다
바늘 하나, 실 한 줄.
아내는 요즘 매일 하얀 광목천 위에
작은 꽃 한 송이를 수놓는다.
밤을 새워도 피곤하다는 말 한마디 없다.
아니, 오히려 예전보다 더 눈빛이 반짝인다.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오래전 잃었던 풍경 하나가 떠오른다.
암 투병 이전의, 생기 가득하던 아내의 얼굴.
지금 아내는 다시
그때의 눈빛을 되찾고 있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깊고 단단한 눈빛이다.
아내가 8월 중순,
2차 항암 치료까지 마쳤다.
1년에 걸친 긴 투병 끝에
서울에서 정밀 진단을 받던 날,
나는 마음이 이상했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다시 수술?
다시 항암?
다시 그 고통을 견뎌야 한다면…
복잡한 생각들이 마음을 휘감았다.
하지만 의사의 말은 짧고 분명했다.
“괜찮습니다.
3개월마다 추적검사만 하시면 됩니다.”
나는 그제야
무겁던 가슴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아내도 눈빛이 달라졌다.
한결 편안하고,
예전처럼 웃음이 많아졌다.
암투병으로 지난 1년간
아내는 거의 운동을 하지 못했다.
그전엔 나와 함께
괴산의 명산을 오르며
계절마다 산길을 걸었던 사람이다.
하지만 투병 동안
계단 한 칸 오르기도 버거워했다.
기운은 빠지고,
몸은 무거워지고,
한때 밝던 얼굴에도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러던 아내가
어느 날 말했다.
“나 프랑스 자수를 배워볼까 해.”
그 말에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래, 당신이 하고 싶은 건 뭐든 해.”
아내의 말 속에서
나는 오래 묻혀 있던 삶의 의지를 보았다.
처음 수업을 가는 날,
아내는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간단히 화장을 하고,
실과 바늘을 챙기고,
설레는 표정으로 거울을 한참 바라보았다.
나는 그 모습이 참 반가웠다.
암 투병 이전의 아내를 보는 듯했다.
아내는 고등학교까지 미술을 전공했다.
손재주가 좋아
뜨개질도, 그림도, 바느질도 잘했다.
프랑스 자수는 그녀에게
딱 맞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하얀 광목 위에
3센티 작은 바늘이 춤을 추듯
꽃 한 송이가 수놓아지는 걸 보며
나는 생각했다.
“자수는 기술이 아니라 인내다.
그리고, 회복이다.
밤늦게 퇴근한 날,
거실에 불이 켜져 있었다.
아내는 혼자 광목천 위에 앉아
야생화를 수놓고 있었다.
그 눈빛은 맑았고,
손끝은 섬세했다.
어깨에 힘을 주지 못하던 사람이
바늘 하나에 집중해
새벽을 잊고 있었다.
암 투병 중에도
아내는 밤을 새워
수세미 120개를 떠서
활동지원사들에게 선물한 적이 있었다.
고통의 시간을 ‘손’으로 견뎌낸 사람.
이제는 바늘과 실로 인생을 다시 엮는 중이다.
나는 말리지 않았다.
밤을 새워 수를 놓더라도,
그녀가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지금 아내는
시골 면사무소 문화교실에서
1주일에 한 번, 프랑스 자수를 배운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웃고, 배우고, 칭찬해주는 공간.
그 안에서 아내는
몸도 마음도 회복 중이다.
나는 생각한다.
우리 집 2층,
비어 있는 방들 중 하나를
아내의 작은 공방으로 꾸며줄 계획이다.
바느질이 아닌 삶을 짓는 공간.
혼자서도, 함께여도
미소 지을 수 있는 공간.
오늘도 아내는
광목 위에 한 땀, 한 땀
작은 꽃을 수놓는다.
아직 치료는 끝나지 않았다.
정기적인 검사도, 두려움도 남아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작은 바늘 끝에서
지금 그녀는 다시 자신의 삶을 짓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그 모든 시간을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다.
당신의 삶이 다시 피어나길,
오늘도 나는 조용히, 간절히 기도한다.
이따금 밤늦게 불 꺼진 방에서
아내가 혼자 바늘을 들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본다.
나는 조용히 문을 닫고 뒤돌아선다.
그 하얀 천 위에서,
그녀는 지금
자신의 삶을 다시 수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 한 땀 한 땀은
기도이고,
감사이고,
살아 있다는 증거다.
나는 매일 기도한다.
아내가 놓는 수마다
더 건강해지기를.
더 웃기를.
더 오래 내 곁에 머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