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mi Jul 12. 2020

고독한 링 위에서 나의 리듬을 지키는 법

연극 <1인용 식탁> 속 혼밥의 기술과 가드 자세의 의미

<시놉시스>
직장생활 9개월 차, 갓 신입사원 딱지를 뗀 인용은 회사에서 이유 없이 따돌림을 당한다.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어서 나름 노력을 하지만 아무도 인용과 밥을 먹으려 하지 않는다. 의기소침해진 채 매일 꾸역꾸역 혼자 밥을 먹던 인용은 결국 ‘혼자 밥 먹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는 학원에 등록하기에 이른다. 
짜장면, 파스타, 한정식까지는 혼자 먹겠는데… 고깃집에서 고기를 혼자 구워 먹기는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런 인용 앞에 혼자 먹기의 달인이 나타난다.




 연극 <1인용 식탁>은 윤고은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입니다. 2009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혼밥’이라는 말이 생겨나 유행하기 전에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을 수 있는 능력을 다뤘습니다. 시대와 트렌드를 앞서간 작품인거죠. 그랬기에 10년이 지나서도 무대에 위화감 없이 오를 수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따돌림을 당하며 점심시간에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주인공 ‘오인용’. 혼밥을 할 때 쏟아지는 타인들의 시선, 혼밥 능력을 훈련시켜주는 가상의 학원까지. 원작 소설의 구성과 서사를 그대로 가지고 와도 어색하거나 촌스럽지 않았습니다. 이 연극의 흥미로웠던 부분은 무대와 움직임이었습니다. 그곳에서 혼밥 능력의 핵심이 되는 리듬과 그 리듬이 궁극적으로 겨루게 되는 결투가 생생하게 형상화되기 때문입니다. 


 연극의 무대는 사각의 링과 같습니다. 사각형의 무대는 중앙에 불쑥 솟아있고 관객석은 그 무대를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습니다. 특별한 구조물이나 소품이 없는 무대 위 공간은 배우들의 움직임에 따라 사무실로, 식당으로, 학원으로 변형됩니다. 규정되지 않는 무대는 동시에 불특정 다수의 상대(적)를 의미합니다. 혼밥의 난처함은 혼자 먹는 행위 그 자체에서 기인하기보다는 타인들의 시선과 관계되죠. 혼밥이 보편화되었다고 하는 요즘에도 고기집이나 횟집 같은 곳에서 혼자 먹는 사람에게는 기이하게 여기거나 측은하게 보는 눈빛들이 쏟아지니까요. 주인공 ‘오인용’이 싸우는 것도 전방위에서 자신에게 내리꽂히는 시선입니다. 그리고 그 결투에서 중요한 도구는 ‘가드’와 ‘리듬’입니다. 



공연 사진들 (출처: 연합뉴스 및 두산아트센터)



 가드(guard)는 격투기의 기본 자세입니다. 주먹을 쥔 양손을 눈높이로 올려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고 공격의 타이밍을 노리는 자세로 공수의 균형이 잘 잡혀있죠. 연출가 이기쁨은 인생의 링 위에서 벌어지는 복싱이 ‘정면을 보되 힘을 빼고 나의 리듬으로 상대방의 리듬을 끌어’ 온다는 측면에 주목합니다. 작은 체구의 소심한 ‘오인용’이 혼밥 학원에서 중요하게 배우는 것은 이 ‘리듬’입니다. 혼밥의 기술은 메뉴에 따라 3/4박자, 6/8박자 또는 2/4박자에 맞춰 먹는 것이 기본이 됩니다. 박자에 몸이 익을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강사의 모습은 흡사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죠. 오인용은 혼밥을 할 때마다 메트로놈을 맞춰 학원에서 배운 리듬을 잊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리듬에 맞춰 썰고 굽고 씹는 인용의 동작은 가드를 올린 채 자신의 스텝을 밟는 복싱선수와 겹쳐 보입니다. 


 이 연극의 움직임 감독인 권영호는 ‘동작보다 에너지’를 중시했다고 밝힙니다. 텅 빈 무대 공간을 구현해내는 것은 순전히 배우의 신체와 동작입니다. 여기서 ‘세련된 몸’이 아니라 ‘서투른 몸짓’에 깃든 의지의 에너지는 연극 전체의 핵심적인 표현이 되는 것이죠. 박고은 소설가의 소회에서 쓰듯 ‘혼밥’이란 단어는 혼자 밥을 먹는 행위에 연루되는 다양한 상황과 감정들이 ‘간편하게 봉합’해버리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만의 고유한 리듬을 찾고 유지하는 것은 삶의 주체가 되는 문제와 떼어놓고 볼 수 없습니다. 가드를 기본 자세로 삼는 것은 유별나게 보이는 개인적, 독립적 행위를 경계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적 시선에 대항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름을 포용하지 못하고 소수를 배제하는 사회의 보수성때문에 ‘혼자’인 것은 더욱 방어적이면서 전투적인 결투를 요구하곤 합니다. 




연극의 마지막 장면. 구체적인 소품과 장치가 등장하는 유일한 씬인 듯. 배우들은 실제로 고소한 향을 풍기며 고기를 구워 먹습니다. (출처:두산아트센터)



 이러한 차원에서 연극의 마지막 장면은 인상깊습니다. 학원의 마지막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인용과 시험을 통과했지만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 학원에 재등록한 동기, 혼밥의 신화적 존재 선배 등등. 그들은 모두 같은 고기집에서 만나지만 각자 먹는 편을 택합니다. 나란히 앉아 자신들만의 리듬을 유지하며 식사를 하는 이들의 모습은 혼자이면서도 또 같이 살아갈 수 있는 방식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나의 리듬으로 상대방의 리듬을 끌어오는 것’은 모두의 리듬을 하나로 일치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다양한 리듬이 뒤섞이고 변형되기도 하면서 어우러지는 것이 지향해야 할 방향성이겠죠. 이 조화가 ‘혼밥’이 만연해질 수 밖에 없는 오늘날, 외롭고 고독한 개인들이 건강하게 ‘공존’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일 것입니다.      




-연극 <1인용 식탁>은 "두산인문극장 2020: 푸드"의 첫번째 기획 공연입니다. 

-연극 상세 페이지: shorturl.at/ceFPQ

-연출가 노트 등의 인용은 <1인용 식탁>의 프로그램북을 참고하였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01-끝내 들을 수 없던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