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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Sep 02. 2020

취약한 신체들의 정치적 가능성

주디스 버틀러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

출처: (좌) Photograph: Kyle Lam/Bloomberg (우) Anthony Kwan/Getty Images
출처: (좌)www.followcn.com 에디터 기사 (우)Photo: Alex Yun for Lausan




 2019년 법죄인 인도법안(송안법)을 반대하기 위해 시작된 홍콩 시위를 기억하실 겁니다. 3월에 시작된 시위는 6월경 홍콩 인구의 1/7에 육박하는 100만명이 참여했다고 추산될 만큼 대규모의 시위로 확대되었습니다. 최루탄과 고무탄, 물대포를 사용하고 무장하지 않은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경찰의 모습이 미디어로 전파되면서 전세계인들이 함께 분노했죠. 저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한나라-두체제'로 중국과 애매하면서 위태로운 관계를 맺어왔던 홍콩의 현실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시위대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는 정서적 감응을 느끼게 된 계기는 국가에 의해 제압 당하는 괴롭고 고통스러운 현장들을 목도하게 됐을 때였습니다. 그건 시위대의 정치적 메시지를 이해하고 동의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연대의 마음이었습니다.  



 


 주디스 버틀러는 정치철학과 젠더, 퀴어 이론을 촘촘하게 엮어내는 학자입니다. 젠더 수행성 이론을 발전시킨 <젠더 트러블>과 애도라는 행위에서 출발해 취약한 삶과 타자와의 연대를 고민한 <위태로운 삶> 등 오늘날의 젠더와 정치, 윤리를 사유하는데 필독서로 꼽히는 저서들이 많습니다. 최근 번역된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도 그녀가 가진 문제의식의 연장선 상에 있습니다. 제목이 암시하듯 이 책은 21세기 세계 각지에서 벌어진 시위와 집회라는 구체적인 현장에 주목합니다. 그 사례들로 출발하여 거리에 모인 이들의 취약성이 어떻게 정치의 장에서 수행적으로 작동하며, 지구적 연대를 형성하게 되는지를 논하게 됩니다. 



 시위나 집회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출현의 조건들’과 관계되기 때문입니다. 정당한 사회적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한 소외받고 배제된 이들은 공적 영역에서 잘 보이지 않습니다. 비가시적인 존재들은 출현 그 자체 만으로 공적 발언을 시작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버틀러는 시위나 집회를 통해 그들이 출현하는 행위는 ‘사회에서의 인정과 그의 삶이 허락될 권리를 주장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출현은 거리로 나온 참가자 개개인의 신체를 담보로 구현되게 됩니다. 그 공간이 집회가 허락된 광장이거나 금지된 공간이든 간에 특정한 공간을 점유하는 신체와 신체의 활동들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죠.   



 버틀러가 전작과 비교하여 이번 책에서 주요하게 조명하는 것이 바로 ‘신체’입니다. 버틀러는 신체를 어떤 실체라기보다는 ‘살아 있는 관계들의 집합’으로 봅니다. 신체는 순수하게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산물이라는 점은 젠더 문제에서 그녀가 강조해왔던 신체의 측면이었죠. 그러나 이 책에서는 담론적, 구성적 차원의 특성보다 ‘취약성’에 방점을 둡니다. 신체를 가진 인간으로써 가질 수 밖에 없는 기본적인 요구들이 충족되지 못할 때나, 시위를 진압하는 폭력들로 인해 상해를 입고 무너지는 순간들 속에서 신체의 취약성은 ‘목격’되고 ‘공유’되죠. 이 취약성이 보여주는 인간과 삶의 불안정성은 그녀가 정치와 윤리로 나아가게 하는 핵심적 연결고리가 됩니다.   



 신체의 취약성은 ‘나의 삶의 가능성이 필연적으로 우리의 삶과 연루되어 있다’는 삶의 상호의존적인 조건들을 상징합니다. 버틀러는 정치와 윤리의 문제에서 신체적 상호의존성과 관련성을 상정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사유란 무용지물’이 된다고 경고합니다. 신체를 통과해서만 ‘우리의 노출과 우리의 불안정성을, 그리고 우리가 정치적∙사회적 제도들에 의지해 끈질기게 지속하는 방식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는 것이죠. 집회와 시위에서의 신체는 ‘자신들의 취약함을 드러냄과 동시에 무언가를 요구’합니다. ‘기본적인 육체적 필요들에 정치적∙공간적 조직을 내어주는’ 식으로 말이지요.  불안정성이 ‘신체적 욕구의 조직과 보호에 대해 다루고 있는 정치의 차원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 버틀러의 주장입니다. 



 그렇다면 신체의 정치적 수행성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버틀러에게 수행성은 ‘수동적으로 영향을 받는 과정과 능동적으로 행동을 취하는 조건 및 가능성 모두’를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신체는 신체의 취약성을 기반으로 설정된 기존 규범에 의지하고 있는 동시에 또 그 규범에 의해 조직되기도 합니다. 규범 또한 실질적인 효력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이 취약성에 의지하게 될 수 밖에 없고요. 정확히 이러한 모순적인 구조로 인해 신체 또한 규범을 수용하는 동시에 그러한 규범들을 위반해낼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신체의 취약성은 그것이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지원에서 배제될 때, 불안정한 상태가 드러나게 되죠. 이때 ‘이 규범들에 기반해야만 거부되거나 개정되는 식으로 새로운 규범이 시작될 가능성’이 발현하게 됩니다. 그리고 취약성이 환기하는 ‘상호의존성’은 다양한 주체들의 정치적 연대가 가능하도록 이끕니다. 



어떤 의미에서 당신이 거리에서 혹은 거리 밖에서 혹은 감옥이나 주변부에서, 아직은 거리가 아닌 길에서, 혹은 당장 있을 수 있는 연합을 수용할 어떤 지하 공간에서 발견하는 인민은 당신이 선택했던 바로 그 인민이 아니다. 내 말은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도착할 때, 또 누가 도착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고, 이는 다른 이들과 연대할 때,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어떤 차원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쩌면 신체는 항상 자신이 할 말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과 영향들에, 자신이 예측하거나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사람들과 영향들에 노출되어 있고, 이런 사회적 체현의 조건들은 우리가 온전히 간여하지 않았던 조건들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나는 연대란 우리의 의지로써 진입하는 의도적인 계약에서보다는 차라리 그와 같이 예측하지 못한 조건들에서 출현한다고 말하고 싶다. 

                            

                 -주디스 버틀러 지음, 김응산&양효실 옮김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 창비(2020), pp.219




 이 책을 통해 2010년 튀니지 재스민 혁명을 비롯해 이집트의 반정부 혁명, 홍콩의 우산혁명과 최근의 중국 본토와의 민감한 갈등에서 야기된 시위까지. 전지구적으로 나타났고 여전히 지속 중인 일련의 흐름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특히 버틀러가 다루고 있듯이, 미디어의 발전을 통해 촬영과 공유는 물론 실시간 중계가 가능해진 현대 사회에서는 시위 현장에 공존하지 않더라도 수많은 이들이 시위의 '목격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 '목격'이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에 어떠한 정동적 영향을 끼쳤고 어떤 식으로 현장에 연루되게 했으며, 정치적인 연대를 형성해내게 됐는지, 동시에 그러한 연대의 한계 또한 되짚어보게 됐고요. 신체는 인간의 육체적인 제약과 동시에 타인과 세계와 만나는 접촉면이자 감각을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의 장인 것은 분명합니다. 혐오와 폭력이 난무하는 세계에서 절대적 타자들의 '애도'를 가능케하는 열린 정치에 대한 열망을 품고 있는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함께 고민을 시작하기 위해서 말이죠. 





누군가가 애도되지 않는다거나 이미 애도될 수 없는 이로 확정되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삶을 지탱할 어떤 구조도 현재로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곧 그 사람의 삶이 지배적인 가치체계에 의해 하나의 온전한 삶으로서 지원받거나 보호받을 가치가 없는 것으로 폄하되고 있다는 뜻이다. 다름 아닌 내 삶의(281)미래는 바로 그런 지원의 조건에 달려 있고, 따라서 내가 지원받지 못한다면 내 삶은 보잘것없고 불안정한 것으로 확립되며, 그런 의미에서 상해나 상실로부터 보호받을 가치가 없게 되는 것이고, 그렇기에 애도 불가능한 것이다. 애도될 수 있는 삶에만 가치가 있을 수 있고, 시간을 거치며 가치가 있을 수 있다면, 오직 애도될 수 있는 삶만이 사회적∙경제적 지원, 주택, 의료보장, 고용, 정치적 표현의 권리, 사회적 인정의 형태들, 그리고 정치적 행위성의 조건들을 가질 자격을 얻게 된다. 말하자면 나는 나 자신이 상실되기 전에, 무시당하고 유기되는 것에 관한 질문을 제기하기에 앞서, 애도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나 자신인 바의 이 삶의 상실이 애도될 것이고 이런 상실을 방지할 모든 조처가 취해질 것이라는 점을 알면서 살 수 있어야 한다.

      

       -주디스 버틀러 지음, 김응산&양효실 옮김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 창비(2020), pp.281-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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